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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양 Oct 09. 2024

아차, 네가 그리워질 줄 알았는데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그토록 오래 함께했던 너였는데,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이름조차. 내가 네 이름을 불렀던 기억이 있었던가. 늘 뻔한 애칭으로만 불렀던 내가 원망스럽다.



소식을 들었다. 나뭇잎을 정류장 삼아 돌아온 바람 같은 네 소식을. 들리는 말로는 축하할 일도 많고, 무엇보다 건강하다고 했다. 그건 곧 내가 없는 삶을 너 스스로 잘 지탱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꽤 쌀쌀해졌고, 우리가 자주 갔던 음식점 앞엔 여전히 주황빛 전구들이 길게 늘어섰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고기를 굽고, 피자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마도 사랑이나 사람, 직장에서 있었던 소소한 일들, 유행하는 영화 이야기를 나누겠지. 우리가 나눴던 특별했던 그 모든 것이 이제 와 보니 모든 사람이 나누는 그저 그런 대화였던 걸까.



너와 함께 걸었던 거리, 함께 본 영화, 함께 들었던 음악... 모든 '함께'였던 순간들이 긴 겨울잠을 자다 깨어난 것처럼 문득, 불쑥 찾아왔다. 네 생각이.



가장 미안한 것은 네 곁에서 한 번도 네 편이 되어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웠다. 네가 글만 쓰게 해주겠다고 큰소리쳤던 날, 그 말에 자존심이 상해 막걸리를 사 들고 나섰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아는 후배들과, 친했던 가수나 연습생들과, 글을 쓰던 동아리 사람들과... 너무 많은 시간을, 그리고 너무 많은 술을 소비했다. 강남역 퇴근길, 매달 한 번씩 뻗어 잠든 나를 데리러 오던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때 나는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미안함보다 더 깊이, 가슴 한구석에 단단히 자리 잡은 마음은 '고마움'이다. 너와 함께하며 나는 무책임하게도 삶을 몇 번이나 포기하려 했었다. 이건 비유가 아니다. 네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지, 그리고 그때 얼마나 두려웠을지를 이제야 조금이나마 짐작한다. 곁에 남은 유일한 사람인 너마저 떠나 혼자가 되길 바랐던 내게 네가 얼마나 많은 걸 견뎠는지...



공원에서 시 같은 글을 쓰다 잠들고, 돈이 떨어지면 휴게소나 공장처럼 숙식을 제공해 주는 곳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것도, 그들이 내 곁을 떠나는 것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나 자신에게 조금은 자신감이 있다. 적어도 너에게 진심으로 “미안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충분히 너를 그리워하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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