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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양 Oct 17. 2024

신의 계획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운명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물론, 비 오는 날 우산을 피해 내 머리 위로 떨어진 물방울의 개수를 세거나, 다이소에서 산 와인잔이 쉽게 깨지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그러나, 성격이 못 된 여자를 만나거나 본의 아니게 여러 관계에서 악역으로 지목될 때, 그런 것들을 운명이라 생각하게 된다.



상상해본다. 신이 나를 만들 때 어떻게 만들었을까? 엉뚱함 한 스푼, 상냥함 한 스푼, 외로움 두 스푼,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허함’을 한 통 부었을 것이다. 만약 백종원이 내 영혼을 맛본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이고, 이게 뭐유. 아무 맛도 나지 않네. 더 허기져.”



지금 내 앞에는 머리를 묶은 20대 여성, 물을 마시는 아주머니, 이어폰을 낀 채 무언가 재미있는 영상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청년, 그리고 자기 얼굴만큼이나 큰 둥근 안경을 쓴 소녀가 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 한 아주머니가 달려와 아슬아슬하게 전철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 혼잣말을 잘하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나는 “오!”를 외쳤고, 옆에 있는 학생 두 명이 말했다. “세이프.”



나는 목동역 근처에 살고 있지만, 최근에는 까치산역에서 내리는 걸 좋아한다. 그 이유는 차마 최근에 다시 생긴 길거리 호떡 아줌마 때문이라 말은 못 하겠다. 매일 호떡을 먹으러 가는 건 아니더라도, 그곳에서 내 고향의 길거리 호떡집, 정확히 그 호떡집 아주머니의 닳고 닳은 앞치마를 보는 일이 좋다.



길가에 꽃을 파는 곳이 많이 보인다. 언젠가, 습관처럼 사던 꽃이 돈 낭비 같았던 시기가 있었다. 중요한 건 그때 아마 스스로 알았으리라. 나는 결코 시인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요즘 내 주변에는 까탈스럽지만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 많다. 이 문장을 쓰는 지금, 마침 달이 완전한 보름달이다. 붉은 벽돌 하나 좋고, 부모와 친구, 연인과 함께 걷는 사람들이 좋다. 인생은 결국 함께 걷는 것일까.



내가 퇴근 길에 적은 글만 보아도 알겠지만, 나를 향한 신의 계획은 이렇게 오밀조밀하다. 운명을 믿지 않는다면, 당신은 비관론자도 현실주의자도 아닌 그저 상처받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마주하자.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분명한 신의 계획이 있으며, 그것은 신의 존재만큼이나 확실하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이 소소한 일상 속에서 운명의 파편을 발견한다. 꽃가게 앞에서, 호떡집 앞에서, 혹은 전철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은 나를 향한 신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이 순간, 삶의 의미는 더없이 깊어지고, 함께 걸어가는 이들 속에 진정한 운명을 찾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인생은 결국,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걷는 길이다. 그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운명의 한 조각,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니.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이 길 위에서 함께 만들어갈 이야기들을 품고 살아간다. 운명이란 바로 이처럼, 매일매일 우리 곁에서 흐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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