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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양 Oct 24. 2024

공황장애, 그게 뭐 대숩니까?



공황장애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마치 연락이 끊겼던 손님처럼, 언젠가 다시 마주할 거라 생각했지만 결코 반갑지 않은 그런 손님. 오늘 아침도 그랬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며 평화로운 순간을 잠시 만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유는 없다. 공황이란 원래 이유가 없어서 더 괴롭다.



처음 약을 먹기 시작한 건 7년 전이었다. 그때는 혼란스러웠다. 약을 먹는다는 사실이 나를 무너뜨리는 것 같았으니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약을 먹어야만 버틸 수 있다는 게 왜 그렇게 두렵게 느껴졌을까? 아마 그때의 나는 약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실망했던 것 같다. 나 자신이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으니까.



그런데 7년이 지나니 조금 달라졌다. 약을 먹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오히려 내가 그날을 버티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증명하는 일상이 되었다. 특별할 것 없는 루틴처럼, 치약을 짜서 양치질을 하듯 나는 약을 먹는다. 여전히 불청객은 나를 찾아오지만, 나는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을 때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제는 조금 익숙하다. 숨을 고르는 게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된 건 시간이 꽤 지난 후였다.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괜찮아, 두려울 거 없어." 예전엔 이런 말들이 나 자신에게 공허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믿으려고 노력한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가 가끔은 큰 힘이 된다.



계단을 다 내려왔을 즈음, 비로소 심장이 진정되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스쳐간다.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유심히 보고 있는 것 같고, 혹시 누군가가 나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불안감. 어떤 날은 휴대폰에 갑자기 비보가 날아올 것만 같아 두려워지기도 한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황은 그런 것이다.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불안이 나를 지배하는 것.



그래도 이제는 그런 불안도 어느 정도 익숙하다. 처음엔 그 감정들이 나를 완전히 집어삼킬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것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다. 공황은 공황일 뿐이다. 그 불청객이 나를 덮쳐도 나는 또 하루를 살아간다.



사람들은 공황장애를 겪지 않으면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을 견뎌내고 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7년 동안 그런 두려움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까?" 내 대답은 간단하다. 그냥 그렇게 살아왔을 뿐이다. 살기 위해, 버텨야만 했으니까.



오늘도 나는 그 불청객을 보내고 다시 내 하루를 살아간다. 약을 먹고, 숨을 고르고, 그렇게 평범한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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