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려는 게 아니었다
다만, 더 넓어지고 싶었다
형태는 무너지되
존재는 확장되는 방식으로
그래서 바람이 되어 본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아도
나는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뺨을 스치고 있을 테니까
이름도 없이,
소리도 없이
다만
그 순간,
존재감 하나로 깃드는
그런 바람이 되어
유리창에 맺힌 숨결 사이로 스며들고
굳게 다문 마음의 틈을 열고
지나가며
그저, 살며시 다녀간다
그리고 그 누구도 모르는 채
내가 다녀간 자리마다는
조금씩
숨구멍이 자리 잡는 다
나는 내 중심이 없다
그러니 세상 어디든 중심이 되고
나는 내 외곽이 없다
그러니 경계 없이 모든 감정에 닿을 수 있다
나는 흐른다
결코 쥘 수 없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방식으로
오늘의 나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고
어느 고요한 오후의 커튼 한 자락을 흔드는 것으로
나를 증명한다
나는 줄 수 있는 게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내가 있는 그대로 있을 때
누군가의 마음이,
숨이,
조금은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바람이 되어 본다
머물기보다는
깊이 스며들고
말하진 않지만
모든 걸 안고 있는 것처럼
존재의 결로,
사랑의 결로
이 세상에 다시, 퍼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