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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by 태연

소나기는 언제나

예고 없이 내 마음의 유리창을 두드렸다

비가 아니라

내가 잊고 있던 나를 깨우는 손가락 끝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물이었지만,

내 안에서 부서지는 건 오래 묵힌 생각들이었다

소나기는 종종

시간의 먼지를 털어내려고

지구가 잠시 세상을 흔들어놓는 방식 같았다


한순간 주변이 모두 젖어들면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기억의 비틀린 모서리들이

물에 젖어 풀리는 사이,

숨겨두었던 감정이

흙 위로 차분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나는 소나기를 두려워하면서도

기꺼이 맞는다

내 안의 오래된 그림자들이

잠깐이라도 투명해지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소나기는 결국

잠깐 내렸다 사라지는 비가 아니다

어디선가 길을 잃고 있던

나를 돌려놓기 위해

하늘이 잠시 내려앉는 손길이다


빗줄기가 그치면

나는 조금 달라진 나를 주워든다

물방울처럼 흔들리지만

이전보다 선명해진 얼굴로


소나기는 비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잃어버린 나를 되찾으라고

하늘이 단숨에 쏟아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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