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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엽시계 Apr 19. 2022

다문화가정에 대한 우리의 시선

다문화가정은 불우이웃인가?

2022년이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4월 중순이고 곧 결혼의 달인 5월이 다가오고 있다.     


5월은 “5월의 신부”라는 말이 있어서 인지 유독 결혼식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약 십여 년 전부터 국제결혼 가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영향인지 그 뒤로 국제결혼 열풍이 잠시 불기도 했다.    

 

이제 우리 주위에서 국제결혼 가정을 쉽게 보게 되고 보통 한국 아이와 피부색이 다른 아이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한 때 결혼이 힘든 농촌의 노총각 위주로 진행되었던 국제결혼은 그 뒤 도시에도 유행이 불어 국제결혼 주선 업체가 우후죽순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 과정에 일부 돈만을 벌기 위해 무책임하게 신붓감을 연결해주고 사기를 치는 작자들까지 넘쳐 났지요.     

또 외국인 신부를 마치 물건처럼 취급하는 광고를 버젓이 일삼아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다.     




바로 그 국제결혼 가정을 언제부터인가 각 언론에서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국제결혼으로 이어지 이 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고 칭하면서 이 가정이 방송에 나오는 모습은 좋지 않은 모습으로 방영되기 시작한다.    

      

방송과 언론에 비친 다문화 가정의 모습은,        

  

1.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가 도와야 할 불우이웃.


2. 피부색이 다른 자녀가 놀림을 받기에 우리의 아이를 교육시켜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이웃.


3. 남편의 폭행으로 피해 입는 여성이 많은 가정.     


언론이 보여주는 다문화 가정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웃이 아니라 우리가 도와주어야 이 사회에 살 수 있는 모자란 가정의 모습이다.     

여성가족부 내에는 '다문화가정 지원부서" 있다.

    

왜 다문화 가정의 모습을 이토록 부정적이고 어려운 모습으로 보여 주는 것일까?


왜 다문화 가정은 우리가 도와주어야만 하는 가정으로 묘사하는 것일까?     




나는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고  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냥 국제결혼가정이라고 표현하면 되는 것을 굳이 "다문화가정"이라는 마치 우리와 다른 별도의 불우한 집단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인가?       

   

남편의 폭력으로 피해를 입는 여성은 한국인 결혼가정에서 더 많음에도 다문화 가정에서 가정 폭력이 일어나면 꼭 "다문화 가정 폭력" 이런 식으로 제목을 달아 기사를 작성한다.

     

또 다른 문제는 다문화가정이란 말이 한국보다 어렵게 살고 있는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몽골 등 주로 동남아 국가의 사람들과 결혼한 가정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인, 영국인, 프랑스 등 서구 국가 사람과 국제결혼을 한 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는 말로 부르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부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정부와 언론은 우리에게 다문화가정을 차별하지 말고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마치 가르치듯이 캠페인을 하고 있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 노릇이다.     

국어사전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다문화가정' 이란 용어를 자신들이 만들어 놓고 그들은 어려운 우리의 이웃이고 우리와 다른 존재이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국민을 가르치고 있다.     

     



국제결혼 가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가족의 집단이다.     

단 그 가족의 구성원이 한국인과 외국인의 결합이라는 것 만이 다를 뿐인데     

그들을 '다문화가정'이라는 말로 지칭하고 우리와는 다른 불우한 가족의 형태이니     

국가가 나서서 지원해 주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불편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당장의 생계가 힘들다면.

우리 아이가 왕따 등으로 급우들한테 괴롭힘을 당한다면,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힘들어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들이 누구이든지 그들을 돕고 보호해야 함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고 그러한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름다운 인간다.     

     

'다문화가정'이라는 억지 단어를 만들어 그들을 규정하지 말고      


늘 우리 곁에 존재하는 이웃,

고향이 지방인 것처럼 고향이 외국인 이웃,

한국말을 배우는 게 조금 느린 나의 친구,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그들정한 이웃이 되우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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