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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엽시계 Mar 21. 2022

왜냐고 묻지 마세요

그냥 좋은 것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존경하는 인물 몇 명은 있게 마련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는 예나 지금이나 세종대왕님과 이순신 장군님이 꼽힌다.     

해마다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 신다.

그래서인가? 이 두 분은 서울의 심장부 광화문 광장에 나란히 서 계시고 있다.     


두 분 중 누구를 더 존경하냐는 질문이라도 받으면,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라는 물음에 대답을 강요받는 아이의 난처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종종 보기도 한다.     


입사 시험 면접 때 자주 나오는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존경하는 인물과 그 이유를 이야기해 보세요.”라는 주문이다.     


면접의 예상 문제 중에 거의 빠지지 않는 문항이라 미리 준비해둔 모범 답변을 하고 나오지만  어딘가 내가 생각했던 존경의 이유는 아닌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존경하는 인물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도 조금 나은 편.

세종대왕님이야 자랑스러운 한글을 창제하신 분이고 이순신 장군님이야 나라를 구한 영웅이시니 존경의 이유야 무궁무진할 테니까.     




20대 시절에 나는 빨간색을 좋아했다.     


그런 나에게 한 친구가 묻는다.

“왜 빨간색을 좋아해? 이유가 뭐야? 라면서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최불암 아저씨처럼 “나이가 들수록 빨간색이 좋아져서”라고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빨간색이 좋아서”라고 대답하는 나에게

“야! 그런 게 어딨어?”라고 한 친구가 핀잔을 준다.

한 친구는 나를 빨갱이가 아니냐며 사상 검증(?)을 하기도 한다.     




20대 청년 시절 한 여자를 좋아했다.


한 친구가 묻는다.

“그 여자 어디가 그렇게 좋아?”     

빨간색처럼 나는 또 선 듯 대답을 못한다.     


“얼굴이 예쁘잖아라고 답하면 속물 같고,

“몸매가 죽이잖아라고 답하면 짐승 같고,

“머리가 똑똑해서”라고 답하면 내가 무식한 놈처럼 느껴져서다.         

 

“그냥 다 좋아”가 정답이었는데 왜 대답을 쉽게 못 했을까     

생각해 보니 빨간색과 그 여자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냥 좋아서”였다.     

그 이유의 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왜 대답을 하는데 고민을 했을까.     


나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에 그 이유를 논리 있게 설명해야 하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살아온 것은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다른 친구한테 그런 질문을 참 많이 했었다.         

 

“너 그 정치인이 왜 좋냐?”

“너 그 가수가 뭐라고 그렇게 좋아서 난리를 치냐?”

“그 회사가 뭐 그리 대단한 회사라고 입사하고 싶어 안달복달이야?”         

 

왜 나는 그 친구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었을까?     

설령 그 이유를 안다고 해도 나한테 뭐가 득이 된다고...     


어쩌면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내 곁에 있는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고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궁금해하고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일지 모른다.     


이유 없는 결과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유 같지 이유로 나를 설득하려고 하지 말라는 노래 가사도 있듯이 정말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자신의 인생관을 정립해 준 인물을 존경하는 사람도 일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은 내 친구가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할 때  그 이유를 묻지 않기도 다짐한다.     


그 친구에게 그걸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내가 얘 하고 친구로 지내는 이유가 뭐지라고 나 자신에게 묻는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     


오늘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의 답은 딱 하나.          

“그냥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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