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가지 설득 실패 에피소드
설득이나 협상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을’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그동안 설득과 협상을 꽤나 잘하는 편이라고 자만했던 이유는 큰 회사 뒤에 숨었기 때문이었다. 창업하고 나서 슈퍼 을로 지내다 보니, 설득과 협상의 자리에서 늘 실패를 맛본다.
오늘은 내 창업과 관계된 일은 아니다. 아주 지극한 좋은 일을 하려다 여기마저도 설득에 실패했다. 역시 목적에 선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같은 결론과 답을 내리는 것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결국 ‘이권’의 문제다.
나는 자폐장애인들이 만드는 베이커리 브랜드 홍보를 맡고 있다. 설날 전에 브랜드에서 준비한 설 준비 상품에 대한 정보를 미리 받았으면 좋았을 테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어, 오늘은 직원분과 연락처를 교환해서 좀 더 자주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찾아갔다.
자폐장애인 보호 작업장을 운영하는 대표님께서는 다른 사업체에서 돈을 벌어 이 곳에 자본을 수혈하는 비즈니스 구조다. 대표님께서는 이번 설 명절에는 예전 대비 6~7배 물량이 줄어서 힘들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런 배경을 듣고 담당자를 만났다 보니, 내 프레임에는 ‘어떻게 하면 매출을 더 내도록 홍보와 마케팅을 할 수 있을까?’였다. 그런데 담당자의 입장은 달랐다. 일단 기존에 일하던 분은 그만두기로 한 상태였고, 그분의 일까지 도맡아 하다 보니 일이 많았다. 매출과 관계없이 업무량이 많아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일단 후퇴하기로 했다. 나는 실무 현장 속에 계속 있는 것은 아니고, 어쩌다 한 두 번 방문하는 게스트니까. 다만, 함께하는 크루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당신의 업무가 너무 많아서 지금은 힘들겠군요. 이해합니다. 이번 시즌이 지나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 다시 이야기를 나눠봐요.라고. 우리가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협력하면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거예요라고. 늘 그렇듯 단번에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면서도 어쩐지 아쉽기도 하다.
두 번째는 유기동물 보호자들 6명이 모여 책 출간을 준비 중이다. 아는 분은 하나도 없고, 친한 친구가 소개해줘서 같이 시작하게 되었다. 일단 각자 반려동물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10페이지 분량으로 작성하고, 작성한 내용을 첨삭, 수정한 뒤 디자인하고 편집본을 넘기는 프로세스인 듯했다.
문제는 작성한 합본을 읽었는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유기동물 보호자들의 에세이를 판매한 수익금 전부를 유기동물 보호소에 기부하는 것이 목적인데, 그렇다면 많이 판매돼야 하지 않을까? 지금 글은 보호자 중심의 감상 글이 대부분인데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얻는 효용은 뭐지?
기획자에게 이런 나의 생각을 전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거절했는데, 그녀의 입장은 아래와 같다. 첫 거절의 프레임은 ‘현재 작성된 글의 분량보다 늘어날 경우, 인쇄 제작비가 늘어나는 부담이 있어서 어렵다.’였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면, 공식적으로 논의해서 각자 작성한 분량에서 독자에게 필요한 ’ 정보‘를 담는 것으로 수정하는 것은 어떤지 그것도 어렵다면 내가 맡은 부분을 수정해서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두 번째 거절의 프레임은 ‘편집 디자이너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고, 이제 출간 막바지 상태라 어렵다’였다. 또, ‘진짜 책을 내는 목적은 판매 수익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동물 보호자의 추억을 담는 것’이라고 답했다. 목적에 대해 이해하는 정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다. 책을 기획하고 출간하는 기획자의 목적이 그러하다는데 참여자로서 계속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옳은 방향은 아니라는 생각에 의견을 거두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유기동물 보호자의 추억을 예쁘게 담는 책이 왜 필요한지 논의를 더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함께 책을 만들기 위해 애쓴 작가님들의 이야기가 재미없거나 정보가 없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서로 목적에 대한 이해가 처음부터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고 진행한 결과라 아쉬움이 많이 남을 뿐이다. 그럼에도 기획자에게는 책 출간까지 필요한 일을 돕겠다고 이야기했다.
설득 실패를 연속적으로 경험하면서 배운 것이 많다. 나와 입장이 다른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 본래의 목적을 상기시키고 상대방의 신념과 가치에 맞춰 설득할 것, 조력 의지를 보여주고, 상대방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