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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그래 Oct 16. 2020

Ep.3 3년의 연애



회사에서 나오게 된 후, 한 이주쯤 흘렀을 때 3년 사귄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우리의 20대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첫 만남이 생각난다. 음료에 관심이 많아 학교 차(茶) 동아리에 들어갔었다. 동아리에 들어간 첫날, 참 예뻤던 너에게 반해 열심히 꼬시기 시작했다.

학기 중에 항상 최소 두 개에서 많게는 네 개까지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었는데도 짬짬이 연락을 하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도 꼬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만나는 동안은 피곤하지 않았다.


학교 기숙사와 내 자취방의 거리가 걸어서 무려 25분이었다. 학교를 사이에 두고 정반대 방향으로 끝과 끝이었다. 사귀기 전, 풀이 없다는 너의 말에 풀 하나를 들고 빌려주겠다고 25분을 걸어 기숙사를 갔다. 물론 풀이 없는 채로 갔다. 나도 풀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숙사에 사는 같은 과 가장 친한 형에게 풀을 빌려서 빌려주었다. 이미 형에게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출발한 상태였다. 빌려주는 건데 새 걸 사서 주기엔 너무 허술하니 말이다.


그렇게라도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한 번이라도 더 보면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반대로 그렇게까지 안 하면 따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아서 평소에 안 하던 짓들을 했다.

그렇게 풀을 빌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며 달밤에 왕복 한 시간 거리를 그렇게 걷기도 했다.

아직 많은 삶을 살지도, 그리 많은 연애를 해보지도 못했지만 내 연애사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던 때였던 듯하다.


이 사실을 사귄 지 1년이 지나고 알게 된 너는 깜짝 놀라 펑펑 울었다. 전화상이었지만 펑펑 울던 네 모습이 생각났다. 그때는 기쁨의 눈물이었으나, 마음에 상처를 줘 울게 한 적도 많았다.

가수 자우림의 노랫말처럼 우리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만났다. 그리고 9월부터 9월까지 달력이   번이 바뀌는 동안 3년이란 시간을 함께했다. 남들처럼 수도 없이 싸우고 화해를 반복하면서 덕분에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게 됐고, 시간이 지나 널 만나기 전보다  괜찮은 사람으로 많이 성장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인해 우린 서로가 지쳐 우리의 마음이 전과 같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대략 두세 달 전부터는 헤어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준비기간이 있어서일까, 헤어지고 나서 생각보다 덤덤하면 어떡하지? 라는 참 쓸데없는 걱정도 했다. 물론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눈물이 정말로 없기 때문이다. 슬프다고 모두 우는 것은 아니나 슬퍼도 눈물이 정말  난다. 그런데 다행히도 눈물이 났다. 아니  펑펑 울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괜찮아졌다. 벌써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글을  정도로 괜찮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가끔씩 감정을  치고  것들이 아직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눈물이 났던 것도 헤어졌다는 사실보다는 무려 연초 네가 카톡 공지로 남겨뒀던,

-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손 씻기 전에 눈 만지지 말기. 와 같은 별것 아닌 것에 감정이 올라왔던 걸 보면 말이다.

이런 일상에 녹아내린 사소한 것들이 한동안은 앞으로도 날 먹먹하게 만들 것을 잘 알고 있다.


함께했던 시간만큼 아직도 곳곳에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언제  생각지 못한 것이  울컥하게   모르겠지만 이제는 정말 괜찮다.   


난 사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기분이 싫어 누군가와 관계 맺는 걸 한동안 꺼리기도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깊이 좋아해 버린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너에게 참 가난한 사랑을 주었다. 헤어지고 나니 못 해준 것만 생각이 난다.

사실 이별이 다가옴을 서로 느끼는 약 두세 달간의 과정에서도 잘해주지 못해 선뜻 헤어지지 못한 것도 있다.


라면을 더 꼬들하게 끓여주지 못한 것부터 비싸고 좋은,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사주지 못한 것들까지.

꽃 한 송이라도 더 많이 사줄 걸 그랬다.

조금 더 잘해주고 조금 더 풍족하게 해 줬다면 덜 미안하지 않을까 싶다.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다. 그저 미안해서 그렇다.

다 지나고 나서 하는 후회라기보다 내 자체가 이 정도밖에 못 해주는 사람이라 그렇다.   


가난한 사랑만 해줘서 너무 미안하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그저 미안하다.

지금은 덤덤해서 별생각은 없다. 마지막에 서로 했던 말처럼 그냥 항상 잘 지냈으면 한다.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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