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그래 Oct 25. 2020

Ep.4 우울의 감정 추적하기

버스를 타고 개인 작업을 하러 사무실로 가는 길.


누가 봐도 취준생에 면접을 가는 듯한 정장 차림에 면접 헤어를 하고 가는 학생이 보인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나 따위가 감히 누군가를 동정하거나 하는 의미의 슬픔이 아니다. 나 또한 여전히 직장을 구하고 있지만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정장 입고 여러 곳 면접을 보러 돌아다녔을 때가 생각이 나서 그렇다.






그래도 잘 살고 있습니다. Ep4


그 후 내 생활은 작가가 된 듯했다. 물론 작가의 실제 생활을 들여다본 적은 없다. 그냥 하루 종일 무언가를 쓰고 읽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쓰고 읽는 게 굉장히 거창한 것들이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당시 읽고 쓰던 것들 중에서는 자소서도 포함됐다.


그런 생활을 하다가 대기업 한 곳에 지원했다. 전에도 한 번 지원해봤던 곳이긴 하다. 19년도에 처음 지원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혹시나 서류라도 되지는 않을까?' 하며 쓸 내용도 없는데 굉장히 공들여 쓰고 기대를 했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 당시 서류가 붙었다면 오히려 신기했을 것이다. 이렇게 돌아보니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성장한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이번에는 직접 찾아서 지원했다기보다 지난번에 카카오 플러스친구 등록을 해놨더니 공고가 올라온 게 보여 쓱 써서 휙 하고 제출했다. 물론 시간이 지났음에도 스펙이라 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단 점에서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나이만 한 살 더 먹었다.


그래서 발표일이 언젠지도 몰랐고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문자가 와서 그저 확인했을 뿐이다.


결과는?

역시나 불합격.


기대는 물론 안 했다. 정말이다. 이미 대기업은 내 그릇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 그릇이 그들이 요구하는 것에는 한참 다르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크고 작은 문제는 아니라고 믿으려 했다. 나는 내 그릇을 별 모양으로 빚었을 뿐이고, 대기업에 가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구름 모양으로 빚어나가야 하는 차이 정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류를 지원한 이유는 최종 합격은 죽어도 못 할 걸 알고 있었지만, 면접 기회라도 주어진다면 오랜만에 그저 그 공기를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비즈니스 복장을 입고 치열하게 준비하는 그들 사이에 껴 있는 기분이라도 느껴보기 위함이었다.


안 될 줄 알고 있어서 서류 불합격이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가 어느 순간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쓰리기 시작했다.




19년도 여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두 곳에서 면접을 본 적이 있다.


한 곳은 전력 공기업 인턴과정 면접이었고,

또 한 곳은 금융권 정규직 최종면접이었다.


  말아먹었다. 준비 부족에 경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는 면접이었다. 그간 말을 나름 잘한다고 믿어왔던 것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말을 그리 잘하지도 한다. 말을 잘하는 척만 해왔던 것이다. 다른 것도 비슷했다. 언제나 뛰어나게 잘하는 것은 없었고 관심사만 많아 수박 겉핧기식으로 배우고 그것들을 잘하는  포장하는 데에만 도가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배신이  발등을 찍었다. 면접은 말을 잘하는 것과는 사실  다른,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도  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어버버하며  더듬은 것들뿐이다. 이런 것들이 한순간 기억 속에서 페이드인-아웃되어 금세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지내다가 우울의 구렁텅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순간이다. 다행인  연재하는 글을 쓰는 모든 순간이 아닌 지금  순간(20 9 24 17:50분 경) 그렇다는 말이다. 글을 올리기도 부끄러워  달이 지나 글을 업로드했다. 깊은 우울에 빠지지는 않는다. 다만 이러한 빈도가 잦은  맞다. 그리고 금세  좋아진다. 마치 조울에 가까운 듯하다.


다이어트를 할 때 자신이 그날 먹을 것들을 추적해볼 수 있다면 그 다이어트는 성공한 거라고 한다. 그러면 이 우울도 지금 감정의 원인을 추적 가능하다면 없앨 수 있는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지금뿐만이 아니라 어릴 적에도 나는 내가 우울한 기분이 들 때면 줄곧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안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실 그 이유도 모르는 상태이긴 하다. 배가 고픈 게 1순위인 것 같으나 평소에도 잘 먹는 밥을 혼자 먹기 싫은 이유도 조금은 있으리라. 일단 가능한 한 빨리 회사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최근에 몸담았던 회사처럼 욕을 같이 할 직장동료도 없는 회사가 아닌 밥 혹은 술이라도 가끔은 함께 할 동료가 있는 회사에 들어가야겠다 생각했다. 지금으로선 사람에게 상처 받더라도 그 사이에서 정신없이 부대끼는 게 나에게 조금이나마 더 나은 방향인 것 같으니 말이다.


.

.

[5화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