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는 잘하는데, 항상 느려. 조금만 더 빠르면 좋을 텐데
재취업을 바로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의 시간이 주어진 이 기회에 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건 전자책 출간이었다. 사실 퇴사하기 전부터 하고 싶어 계획했고 어느 정도 진행을 했던 것이지만 항상 주말에 쉬면서도 이런저런 핑계 대며 책 쓰기를 미뤄왔었다. 그렇게 결국 발등에 불똥이 떨어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실행을 하게 됐다.
전자책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이유는 전자책을 완성한다면, 그리고 판매가 이뤄진다면 그간 쉬면서 까먹은 생활비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지만 엄청나게 큰 꿈과 원하는 직무와 연관 지어 재취업을 할 때 포트폴리오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는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퇴사로 인해 브런치 작가가 됐다. 그러고 나니 마음은 이미 책 출간을 앞둔 작가였다. 현실은 꼴랑 글은 하나밖에 없고 앞으로의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몰랐던 상태였지만 왠지 하나의 버킷리스트에 한 발 더 다가간 듯이 굉장히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마시멜로를 입에 머금은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았다. 퇴사를 안 했으면 브런치에 글 쓸 일이 없었을 테니 이런 걸 전 대표에게 감사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과 다시 취업 준비도 해야 하는데 이 상황에 이런 걸 하고 있는 게 맞나 싶은 생각들이 공존했다. 하지만 당장 재취업을 할 생각은 없었으니 굳이 좋은 쪽으로 포장해서 말하자면 딱히 할 것도 없었다. 나도 그때의 내가 정확히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냥 다시 취업준비가 하기 싫은 거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취업이란 것으로부터 혹은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그리고는 최대한 희망적인 것들로 행복회로를 돌렸었다. 그렇게 모든 건 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이라고 믿었고, 믿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전자책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투자되었고, 어찌어찌 완성하여 승인심사를 기다리는데 하필 심사 기간이 명절 연휴와 겹치며 한 주를 더 보내고 승인이 나게 됐다. 그리고 책이 승인되고 온라인 매대라 할 수 있는 전자책 플랫폼에 진열이 된 후에도 역시나 판매의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처음에 상품을 기획할 때는 광고만 돌리면 구매효율이 조금 나오지 않을까라는 태평한 생각으로 상품 퀄리티를 올리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고치고 고쳐 내놓은 책이건만, 데이터가 어느 정도 쌓여야 광고도 돌리고 광고 효율도 분석을 해볼 텐데 이건 뭐 분석할 데이터도 쌓이지가 않았다. 그 핑계로 원래 책이 나오면 돌릴 계획이었던 광고 집행은 시작도 못 했다. 그리고 또 자책하기를 반복했다. 할 일은 많은데 왜 이리 실행력도 떨어지고 속도도 더딘지.
예전부터 무언가를 할 때면 항상 느렸다.
어렸을 때는 항상 그 말이 듣기 싫었는데,
갈수록 그런 내가 싫어지는 듯했다.
기억도 잘 안 나지만 약 20여 년 전으로 기억을 거슬러 초등학교 때, 그것도 특히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지 저학년 때는 특히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 위주의 활동이 많았었다. 내가 그리거나 만드는 게 완성되면 줄곧 칭찬 받곤 했다. 그런데 항상 뒤따라 붙는 말이 있었다.
"그래는 잘하는데 항상 느려. 조금만 더 빨리하면 좋을 텐데."
어린 시절 담임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말을 들었고, 이건 부모님 귀에도 들어갔는데 나중에는 부모님마저 자주 하는 말이 되었다.
그 사실은 나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빨리하면 내가 원하는 만큼의 완성도로 만들질 못해요.'라고 외치곤 했다.
지금이야 누가 느리다고 하면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어릴 땐 왜 그렇게 마음속으로만 삭이며 느린 게 잘못인 듯 생각했는지 싶다.
정말 빨리 끝내는 건 문제가 되질 않았다. 빨리 끝내면서도 남들보다 아주 약간 더 높은 퀄리티로 뽑아내는 것도 문제는 없었다. 어른들이 원하는 건 아마 그 정도였을 것이다. 퀄리티를 조금 더 낮추되 남들과 비슷한 시간을 들여 남들보다는 약간 더 높은 퀄리티를 뽑아내는 것.
그렇게 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 시간에 맞추려 퀄리티를 낮춰가면서 작품을 완성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냥 성격이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그런 탓인지 무언가를 시작하고 마침표를 찍으면 칭찬은 자주 들었다. 그래서 보통 숙제로 집에 가져가 내 시간을 마음껏 온전히 쓰면서 완성할 수 있는 것들은 미술 과목을 제외하고도 최고점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중학교 때까지도 그림이나 시, 글쓰기 등 백일장 같은 게 있으면 수업 빼먹는 게 재밌어서 놀러 가듯 자주 나갔다. 그러나 위에서처럼 백일장은 한정된 시간 동안 작품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 내에 제출한 것들은 상을 받기도 했지만, 시간이 없어 아예 미완성인 채로 제출한 적도 꽤 많았다.
자랑이라 해야 할지 창피한 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고등학교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많이들 그렇듯 고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예체능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이상, 국영수가 아닌 과목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다. 나 또한 다른 과목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졌다. (문제는 그 시간을 국영수에 투자한다고 해서 국영수가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에서도 예체능 수업시수를 줄이다 보니 그 시간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귀여운 정도의 시간이었다.
미술 수업 중 풍경화를 그려 수행평가로 제출해야 했었다. 몇 주간에 걸쳐서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작 50분씩하는 수업시간에(이동 시간부터 그림을 그리는 준비시간까지 합치면 막상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약 30분 정도였을 것이다) 몇 차례의 시간을 가지고 풍경화를 완성해서 제출하란 건 나에게는 더욱더 힘든 미션이었다. 그래서 그때도 풍경화를 미완성으로 제출했다. 더 시간을 들여 내 마음에 들 때까지 할 수 없는 거면 그 상태로 제출해버리는 성질머리가 그때까지도 여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웃긴 건 선생님께서 점수를 매길 때였다. 모든 학생이 보는 가운데 반 전체 학생의 그림을 바닥에 깔아 두고 맨 윗줄은 A, 그다음 줄은 B, C, D, E, F 순서로 점수를 매겼었는데 모두 화려하고 빽빽하게 색칠 돼 있는 완성작들 가운데 배경마저 칠하지 않아 그 중에서 유난히 더 허여멀건해 보이는 완성되지 않은 내 그림이 두 번째 줄(B)에 당당히 위치해 있었다. 그걸 보고 일부 친구들은 현타가 C게 왔는지 미완성된 그림이 자기 것보다 점수가 높다며 볼멘소리와 우스갯소리를 동시에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고등학교 클럽활동에서 미술부를 한 학기 들어갔을 때는 소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해봤자 오르지도 않던 국영수 친구들에게 잠시나마 자유를 주고 그 취미활동에 약간의 시간을 더 투자해 완성하기도 했다.
그때도 사실 그림을 완성해야겠다거나 하는 그런 욕심이나 별다른 생각이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작품을 축제 때 전시한다는 말을 듣고 시간에 쫓겨 대충 마무리하여 마음에도 들지 않는 그림을 걸게 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 축제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2절지의 큰 도화지를 기숙사로 가져와 야자를 끝내고 기숙사 빈 자습실에 들어가 혼자서 이젤*도 없이 일반 책상에 2절지를 엎어두고 몇 시간씩 그림을 그려 완성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기억이 3년간 야간 자율 학습했던 것보다 머릿속에 더 강하게 남아있다.
(이젤*: 캔버스나 큰 화판을 안정시키기 위한 받침대로 학교 미술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건가 싶은 게 맞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내 생각들이 내 것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기 시작한 어느 순간부터 (아마 대학생 때인 듯하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것들에도 대충 하는 것도 많아졌다. 그래서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속도가 빨라졌다기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냥 퀄리티를 낮추고 내 성에 차지 않아도 적당히 끝내는 법을 택하는 걸 알아갔다. 커오면서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전까지 내가 한 것들이 완벽할 순 없지만 어렸던 나는,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에너지를 모두 쓰더라도 완벽하게 하길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 이상과 내 실력 차이의 괴리감이 큰 일에는 감히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미완성인 채로 끝내버린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물론 성인이 돼서도 이 성격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블로그에 글을 하나 쓰는 것도 남들보다 굉장히 더 많은 시간을 들였었고, 작은 무언가 하나를 준비하는데도 여전히 남들보다 더 오래 걸리는 듯하다. 그래서 지레 겁먹고 포기한 것들도 많다. 대학교 시절 전공과목으로 배운 영상편집에서도 재미는 느꼈지만 여러 편집 실습 과제들과 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하며 나는 이 일을 업으로 삼는다면 퇴근이란 건 없겠다고 느껴 방송 편집일은 절대 안 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일은 원래 퇴근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서 언젠가부터 내가 잘하거나 잘할 수 있는 것보다 속도에 조금 중점을 맞추기 시작했던 것 같다. 모든 걸 항상 적당히 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은 적당히 할 줄 아는 취미들만 수두룩하다. 그렇게 실력이 늘기도 전에 그 무언가가 두려워 지레 겁먹고 포기한 것들이 뒤를 이었고, 시간의 중요성을 스스로 느낄수록 속도의 차이가 실력 탓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정말 잘하는 사람들은 속도도 빠르면서 좋은 퀄리티로 뽑아내겠지하는 그런 생각.
그렇게 생각이 닿은 곳에는
'내가 빨리 잘하면서 남들에게 인정도 받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런 게 있나.
나는 뭘 잘하나.'
라는 고민이 뒤를 이었으나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이럴 때면 많이들 하는 말이 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 말은 나처럼 느려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위로 겸 듣기 좋으라고 생긴 말 같아 보였다. 물론 방향이 중요하다는 의미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와 함께 비교 대상으로 나오는 속도라는 것도 한정된 자원 내에서 즉, 현실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임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한 거라면 다행일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와 함께 여전히 불안한 사실은 한 가지 있다.
'방향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그럼 지금 나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긴 한 거야? 속도도 느린데 방향마저 틀린 거면 언제 또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