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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그래 Nov 01. 2020

Ep.6 판을 흔드는 바둑


어느덧 뚝 떨어진 기온과 찬바람에 볼기짝이 팽팽해지며, 계절이 바뀐지 한참이 흘렀음을 알려주는 듯 했다.





그래도 잘 살고 있습니다. Ep6



"아 회사 다니고 싶은데 회사 다니기 싫어."


가장 친한 친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런 말을 했다.

회사에 다니는 내 친구는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공감해줬다.

 

퇴사    달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구직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달 정도는 내가 하고 싶었던  했고, 그것도 노는  아닌 나름 나를 위한 일을 했다. 그렇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남은  커리어와  관련도 없고 추후 이직에는 도움도  되는  개월짜리 경력 같지 않은 경력   뿐이었고, 그렇게 스물여덟이라는 나이 지나가고 었다. 그리고 스물여덟이 지나가는 해의 끝자락에서 나는 여전히  해야 할 몰라 방황하고 었다.

 

아무리 회사에서 갑자기 잘렸다지만, 이렇게까지 별 생각 없이 이직 걱정을 안 해도 되나 싶은 정도였다. 퇴사 후 한달은 해보고 싶은 걸 해서 이해를 한다지만, 나머지 두 달이 넘는 시간까지 이직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건 그러고 있는 나조차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스물아홉이 되면 이제는 취업시장에서 거의 마지노선이 되어간다는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년 2월이 되면 그나마 하나 가지고 있는 유일한 영어 공인점수인 오픽 점수도 사라지는 상황이었다. 그걸 아는데도 재취업 활동을 안 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곧 서른이 다 돼가는 마당에 아직 뭐가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면 너무 부끄러운 건가도 싶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서른이 다 돼가는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아직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겠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기도 했다.

 

사실은 하고 싶은 직무를 선택한다고 해서 온전히 선택한 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아픔임과 동시에 괴리감이기도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지 그것 말고는 어찌할 다른 방법이 . '성공궤도를 달리는 사람들 놀고 싶은   놀고 하고 싶은   하면서 저렇게 성공을 일궈내진 않겠지, 나도 그렇게 되려면 행복을 한  양보하고 나를 갈아 넣는  맞는 거겠지.' 이렇게 믿고, 믿어야만 . 그래야만 버틸 수가 .

 

올라서고 싶은  자리가 아무 노력 없이, 자신의 삶에서 양보하는 것도 하나 없이 마음대로 살면서 누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힘들. 삶이 불공평하다는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노력한 사람은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받을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허지웅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대학교 시절 읽었던 그의 에세이 ‘나의 친애하는 적’이라는 책을 읽고 학교 홍보대사 이름으로 학교 SNS 페이지에 칼럼을 하나 쓴 적이 있다.



                                                                                    "
이번 방학 때 참 많은 걸 했다. 그렇게도 하기 싫어했던 스펙을 쌓기 시작했다. 여러 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위한 준비과정이라 말하는 스펙을 쌓는다는 일은 원래 꿈꾸던 생각과 달리 현실과 타협하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철없이, 그리고 대책 없이 이상만을 좇을 수 있는 나이는 지났고, 그럴만한 상황이나 나를 받쳐주는 뒷배경이 든든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현실과 타협이라고 하기엔 조금 슬픈 이야기고, 현실 속에서 이상을 바라보는 단계로 조금 노선을 변경했다고 합리화를 해 보고 있다.
                                                                                  (중략)
내 이상에 비해 지나가는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고, 나는 크게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어른의 위치가 되어간다. 이 시점에서 더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 그리고 예전에 이상을 꿈꾸던 어렸을 적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런 어른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지 말이다.

                                                                                  (중략)

  그런데 슬픈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 순전히 모두 내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지금 우리 세대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또는 원하는 대로 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요즘 말로 소위 금수저, 은수저라 부르는, 이 책에서 말하는 처음 태어날 때부터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닌 이상 말이다. 나는 3루에서 태어난 주자가 아닌 유명세도 없는 무명의 타자이기 때문에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와 같이 홈에서 시작하는 주자들은 자연스레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 많다. 그나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립했다는 것을 자신감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는 조금 슬퍼졌다. 나를 보고 몰래 써 놓은 것 같아 안절부절못했다.


3포 세대, 5포 세대를 넘어 N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온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게 당연시돼버리고 결국은 가장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이 돼버렸다. 사랑만 해도 부족할 시간에 사랑은커녕 거기에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이 낭비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싶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은 포기를 하고 살아간다. 낭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져 버렸다. 단어 자체만 들어도 가슴 뛰는 청춘이란 단어가 언젠가부터 슬프게 다가온 것도 이 탓이라 생각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을 넘어서 ‘청춘은 무조건 아파야 한다’라는 식의 구조적인 폭력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원하는 대로 그렇게 청춘을 아프게 보냈는데 정작 얻은 건 없다. 아팠던 곳에는 오히려 흉터만 그대로 남았다. 방향성도 없다. 청춘들에게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가치들이 사치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



다시 생각해봐도 평범하게 사는 것도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위에 내가 썼던 글처럼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다. 일일드라마에 나오는 보통의 등장인물들처럼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적당한 회사에 다니고, 외제차는 아니라도 괜찮은 국산 중형 승용차를 몰고 수도권 어느 곳에 자가의 집도 있고, 가족들은 화목한, 이런 평범함.

사실은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도 내 상황에서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항상 느껴왔다. 그래서 대학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냐는 말을 듣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평범한 삶을 살 자격을 갖춘 예비 주인공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기본은 갖춰진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이 비슷한 코스를 밟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자라고 남들처럼 수많은 학원에 다니면서 입시 과정을 거쳐 명문대까진 아닐지라도 서울에 있는 학교를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는 그런 코스 말이다. 그렇기에 이 코스를 밟는 친구들을, 그들과 다른 시간을 보내며 ‘같지만 다른 세상’에서 살았던 내가 같은 코스로 그들을 따라가기에는 지금이라도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들이 지금까지 했던 노력을 가늠이나마 할 수 있기에, 그들과 같은 선상에 위치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내가 쉬지 않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안주하고 있는 시기에 내가 몇 배의 노력을 해야 운이 좋다면 나도 그나마 그들과 같이 평범한 삶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보다   꿈이라고 해야 할지 욕심이라고 해야 할지 정의하기 힘들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안정되게 평탄한 삶을 살아와서  평범하게 좋은 길을 걷는 사람들보다 아예   살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열심히만 살아서는 평생 꽁무니만 쫓  것이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예전부터 생각해오고 있었다. 요행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노력은 유지하되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바둑이나 장기에서는 '판을 흔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의 바둑이 불리한 상황에서 현재의 흐름대로 바둑을 계속 이어 나가면 질 것이 뻔하니, 승부수를 띄워 유리한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을 말한다.

바둑은 잘 모르나 장기는 둘 줄 안다. 그리고 예전에 선수가 되고 싶어 내 어린 시절을 내바쳤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도 이 말은 통한다. 불리해진 상황에서 무난하게 경기를 이끌어가서는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무언가를 통해 경기 흐름을 다시 내 것으로 가져와야 한다. 아직 삶을 논하기엔 어리다고 할 나이지만 지내보니 사는 것도 큰 맥락에서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내가 이대로 살아가서는 같은 삶만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 결혼을 하고 자녀를 얻게 된다면 자녀에게도 똑같이 이 좁은 세상만을 보게 해줘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느꼈다. 성인이 되어 태어나고 교육받아온 환경에서 벗어나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 온 같은 또래 친구들을 보니 내가 가진 속도를 유지해서는 따라잡을 수가 없다는 것을 느꼈고, 이 굉장히 유쾌하지 못한 느낌을 내 자식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은 것은 너무도 자명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이렇게 누군가가 정해놓은 것처럼 고요하게 흘러가는 흐름을 끊고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평범하게 살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처음부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저 안주하며 받아들이고 노력 없이 가난하게 살거나, 남들이 밟아놓은 수순대로 평범하게라도 살기 위해 언제까지 허덕이며 열심히만 살거나, 역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거나. 이 정도였다.


그래서 내가 고른 방법은 판을 흔들어 흐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나는 판을 흔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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