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_겨울 : 몸을 덥혀주는 묵직한,
담배맛이나 향때문이라기보다는 작은 사이즈의 하얀 막대과자와 같은 어떤 물체를 깊숙이 빨았다가 내뱉는 그 행위 자체가 다시 해보고 싶다는 어떤 느낌에서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한 갑만 사서 다시 피워볼까?’
담배에 대한 제 첫 경험은 대학교 2학년 때입니다. 이때 피웠다고 해서 이후로 담배를 쭉 피워왔다는 건 아니에요. 학창 시절에도 호기심조차 가지지 않았고, 군대에서조차 한 번도 피우지 않았거든요. 담배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없어 제게는 평생 한 번쯤 피워볼까 말까 하는 그런 기호식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피워보게 됐느냐? 사실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나 범법행위가 아니라면 그런 경험 정도는 더 늦기 전에 한 번쯤 해봐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컸고요. 굳이 다른 이유를 만들어본다면 당시 저 혼자 애태우며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마음을 얻는 게 너무 힘들었다는 것 정도? 그래서 다들 힘들 때 태운다는 이 담배가 어떤 효과(?)를 줄지도 궁금했고요. 굳이 이걸 호기심이라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걸 꼭 해보고 싶은 정도까진 아니었기 때문에 다 피우지도 않을 담배를 굳이 한 갑을 사서 한 대 피우고 나머지 열아홉 개비를 버리기는 아까웠고, 그게 아깝다고 한 갑을 다 피울 수도 없는 딱 그 정도의 것이었죠. 더군다나 금기랄 건 없었지만 나름은 금기처럼 지켜오던 그런 것을 아무렇지 않게 깨고 싶지는 않아 나름 의미를 부여해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요.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한다는 그런 말처럼 이왕 담배를 배운다면 ‘믿을만한 사람한테 배우자’와 같은 요상한 생각이 한켠에 있었어요. 참 까다롭죠?
대학교 2학년을 마무리하는 학술제 뒤풀이가 있던 날, 술을 마시다가 모두가 담배타임을 하기 위해 일어나 우르르 빠져나갈 때 저도 함께 나갔어요. 그리고는 제가 가장 따르던 학과 형에게 담배를 처음 받아 경험했어요. 담배를 피운다는 게 이리 피우나 저리 피우나 사실 똑같은 행위이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 형에게 배운다는 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요. 그런데 그 형도 나중에 말하길 ‘제가 그날이 지나고 나면 다시 피우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권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거나 그렇게 저의 첫 담배 경험은 그렇게 시작됐었는데요. 그때의 첫 느낌을 간단히 묘사해본다면 한 마디로 별로였어요. 저야 사실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이게 대체 뭐라고 사람들이 죽고 못 사는걸까라는 궁금증은 있었거든요. 그러한 큰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막상 경험해본 느낌은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어요. 흡연을 하는 친구들이 말하는 첫 모금에 띵-하는 그런 느낌이나 ‘와..! 좋다’라는 느낌을 못 받았어요. 흔히 말하는 겉담이 아니라 속담을 완벽히 했는데도 불구하고요. 오히려 간접흡연을 할 때보다도 더 훅 치고 들어오는 역한 냄새와 담배를 피운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들숨날숨을 할 때에 저에게 담배의 그 잔향들이 남아있다는 게 상당히 별로였어요. 그래서 정말 다행히도 ‘아 나는 담배와는 맞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런데 제가 담배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했던 것이 휴일이었던 다음날 기숙사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두고 혼자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날 피웠던 담배 생각이 났다는 것이었어요. 분명히 좋은 기억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났어요. 이 생각이 났다라고 하는 표현은 ‘다시 한 번만 피워볼까?’하는 생각이었고, 담배맛이나 향때문이라기보다는 작은 사이즈의 하얀 막대과자와 같은 어떤 물체를 깊숙이 빨았다가 내뱉는 그 행위 자체가 다시 해보고싶다는 어떤 느낌에서였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아, 한 갑만 사서 다시 피워볼까?’
기숙사 2층에 위치해있던 제 방에서 한 층만 내려가면 바로 기숙사 1층에 GS24 편의점이 있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약 1분 정도의 시간 내에 담배를 구입할 수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담배를 사러 갔을까요?
사람들에게 담배이야기를 할 때마다 말하곤 해요. 그날 편의점에 내려가 제 돈을 주고 직접 한 갑을 샀었더라면 그 이후로 쭉 피웠을 것이라고요. 그러나 다행히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때의 기억을 무서운 담배의 매력(?) 혹은 중독성이라고 생각하며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왜 담배 경험 이야기를 하며 보이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제가 말하는 이 묘한 매력이라고 해야 할지 중독성이라고 해야 할지 하는 느낌이 마치 보이차와도 같았거든요. 보이차에서 담배맛이 난다거나 향에 관한 비유는 아니에요.
차의 매력에 알게 됐을 무렵, 여기저기 ‘나는 차를 좋아해요'라고 다녔던 적이 있어요. 차마 차에 대해 ‘잘 알아요’라는 말은 못 하던 때이지만 좋아하는 것에 진심인 제 성격은 저와 비슷하게 차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시골에 몇 없는 고향 사람을 만난 것만큼이나 신기해하고 반가워했거든요. 우연히 알게 된 한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차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자 작가님은 자신도 차를 좋아하여 몇 백만원짜리 보이차를 마신다고 하시며 나중에 함께 차를 마시는 모임에 초대해줄 테니 오라고 했어요.
일단 몇백만 원짜리 차를 마신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건 잠시,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저는 초대에 응하여 처음으로 보이차를 경험하게 됐습니다. 사실 그때 마신 게 얼마짜리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보이차를 처음 제대로 접하다 보니 기준점이 없어 비싼 차를 마셔봤자 그게 좋은지도 몰랐던 때였어요. 차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당시 제가 자주 접하고 좋아하는 차는 기껏 해봐야 녹차와 홍차류였거든요.
그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첫 보이차 시음을 기다리는데 차 매니아들만 있는 모임이었어서 그런지 작은 다구에 찻잎을 정량보다 훨씬 더 많이 넣어 정말 진하게 내려 마시더라고요. 우려낸 수색이 찻물이라 부르기 애매할 정도로 검고도 진한 나무색을 띠어, 마치 한약과도 같았어요. 맛 또한 진한 땅의 맛, 흙맛이 났고요. 흔히 마시던 녹차와 홍차에서 느껴지는 찻잎의 맛이라기보다 차나무가 심어진 땅의 흙과 나무뿌리부터 가지, 잎을 모두 갈아넣어 한데 끓인 듯한 맛이었어요.
첫 느낌이 굉장히 묵직하게 다가왔어요. 녹차나 청차를 더 선호하는 저에게는 이 보이차의 진하고 깊이있는 무게감은 처음에는 불호에 가까웠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차의 기준은 비싸고 말고를 떠나 깔끔해서 입안에 침이 절로 고이는 느낌이거든요. 그날은 초대받은 자리이고 다들 좋다고하시니 좋은건가보다 하면서 열심히 받아 마셨지만요.
그러나 그 이후 어떤 매력에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이차가 자꾸 생각이 난다는 것이었어요. 마치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처음 경험한 이후로 다시 한번 해 보고싶다라는 그런 느낌으로요. 그런데 보이차는 담배처럼 몸에 해롭다거나 향이 고약하게 남는다거나 하는 좋지 않은 이유가 없으니 다시 경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오히려 건강에는 더 좋으니 말이에요.
두 번째 경험에서는 여전히 묵직했지만, 그 묵직함이 싫지 않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물고문을 하는 것처럼 따라주는 족족 마시게 되는데 무한리필하여 한참을 마셔도 술을 마시는 것처럼 쭉쭉 들어가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물을 그렇게 마셨으면 물배 차서 더 이상 못 마셨을 양이었는데도요.
마시다 보니 처음에 묵직해서 좋지 않았던 느낌이 유독 겨울이 될 때마다 생각이 나는 거 있죠? 향수도 계절에 따라 보통 겨울에는 묵직한 향을 쓰듯, 이제는 추운 겨울마다 몸을 덥혀주는 묵직한 보이차가 생각납니다. 보이차를 주는 대로 호록-하며 한 두 잔씩 비우다보면 추운 겨울에도 몸이 어느새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거든요.
여전히 제 원픽이라고 할 수 있는 차는 아니지만 추운 겨울이 되면 생각이 나 겨울이 가기 전 무조건 한 번은 마셔줘야 하는 제게는 붕어빵과도 같은 그런 차입니다. 여러분께 담배는 차마 권하지 못하겠지만, 추운 겨울 몸을 훈훈하게 덥혀주는 이 보이차의 묵직한 매력은 여러분도 함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