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의 차가 茶라니?!_[티소믈리에가 들려주는 차 이야기]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주전자에 팔팔 끓여놓은 보리차를 기억하시나요? 그리고 한 김 식힌 뒤 델몬트 오렌지 주스 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둔 보리차를 먹어보신 적이 있다면 당신은 저와 동년배 혹은 그 이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델몬트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고요. 보리차 아니, 차 이야기를 할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보리차는 차가 아닙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구요? 말 그대로입니다. 혼란스러울지 모르겠지만 보리차는 보릿물 혹은 보리음료라고 하는 게 어쩌면 더 정확한 표기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비단 보리차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둥글레차, 옥수수수염차, 그리고 유자차, 대추차 등 곡물차나 과일차도 차가 아니고요. 카페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민트나 캐모마일 등 허브류 또한 차가 아닙니다.
왜냐고요?
엄밀히 말해, 차는 카멜리아 시넨시스라는 종의 나뭇잎을 가지고 만든 걸 차(茶)라고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 나뭇잎을 가지고 제조방식과 산화(oxidation)정도를 달리 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녹차를 만들기도 하고 홍차를 만들기도 하는 거예요. 이 찻잎으로 녹차와 홍차를 포함하여 백차부터 황차, 청차(우롱차), 흑차(보이차)까지 크게 여섯 종류의 차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찻잎이 들어가지 않은, 곡물이나 허브류를 우린 것을 ‘차’로 표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허브류인 민트나 캐모마일 등의 제품을 외국에서는 인퓨젼(Infusion:우려낸 즙) 또는 티젠(Tisane:약탕)이라 하여 차와 정확히 구분하여 표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 글의 제목인 보리차도 차가 아닌 겁니다. 대신에 음료라는 큰 범주에서 차라고 통칭해서 쓰는데요. 여기서 조금 재밌는 표현이 나옵니다. 위에서 녹차와 같은 친구들은 ‘차인 차’, 그리고 보리차나 허브차와 같은 것들은 ‘차 아닌 차’로 구분해서 쓰기도 합니다. 차 아닌 차라는 말이 참 웃기죠. 차인데 차가 아닌 건 무슨 말인가도 싶고요.
우리는 그래서 ‘차 아닌 차’를 대용차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차를 대신하는 용도로 마시는 음료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녹차나 홍차 등 ‘차'하면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국가는 정말 유명한데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차문화가 주변국가에 비해 발전하지 못 하고 대용차가 자리잡게 된 걸까요?
역사 속으로 한 번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차는 불교문화와도 굉장히 연관성이 높은데요. 고려시대 우리의 국교는 불교였습니다. 차와 불교의 관련이 깊은 만큼 우리 역사에서 차문화가 가장 부흥했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그러나 조선이 건국되며 차문화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국교가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며 숭유억불 정책이 들어선 것 때문인데요. 숭유억불 정책이란 말 그대로 유교를 숭배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이었습니다.
불교를 억압하면서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차문화마저 억압하기 위해 정부는 차에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펼칩니다. 민간에도 차문화가 이미 널리 퍼져 마냥 금지한다고 될 게 아니었거든요. 그 정책으로 차는 일상다반사라 불리던 생필품에서 졸지에 사치품이 돼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차는 점점 조선에서 구하기 어려운 음료가 됐어요. 그나마 승려들이 도망다니며 곳곳에 차나무를 심고 다닌 게 우리나라 차의 역사가 이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요.
이어서 또 많은 분들이 모르실만한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 더 꺼내드리면요. 추석과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차례를 지내잖아요. 여기서 ‘차례(茶禮)’의 의미가 차를 가지고 조상께 예를 올리는 것입니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차례상에는 차를 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아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차의 수급이 어려워지자 그 자리를 서서히 곡물을 가지고 만든 술, 물이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사대부들만 제사상에 차를 올렸다고 해요.
요즘까지도 제사상에 흔히 올리는 백화수복 술이 청주인 것이 같은 맥락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청주는 쌀(곡물)로 빚어 만든 곡주거든요. 그리고 평상시에도 차를 대신하기 위해 보리, 메밀, 둥글레, 옥수수수염과 같은 곡물을 우려 마시게 된 것이고요.
그래서 언어적으로는 여전히 차례(茶禮)라 부르지만, 지금까지도 차례상에는 술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고 우리가 차를 떠올릴 때면 녹차나 홍차보다도 보리차나 옥수수수염차와 같은 대용차가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별것 아니지만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리며 퍼즐 하나가 절로 맞춰진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제는 보리차를 보면 ‘차 아닌 차!’라고 구분할 수 있으시겠죠? 그렇다면 대단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아는 척을 하며 차와 관련된 썰을 풀어주셔도 됩니다. (제 브런치 주소도 함께ㅎㅎ)
여러분만 알고 계셔도 충분합니다. 발달 시기를 잃어버린 차문화 부흥은 제가 하겠습니다.
델몬트 병은 아니겠지만 냉장고에 보리차나 대용차 담아두셨다면 시원하게 한 컵 벌컥벌컥 들이켜고 고생한 오늘 하루도 마무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잘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