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_[가을] 펜과 카메라의 힘, 그리고 올곧은 모첨
신문방송학과 계열을 전공해 카메라와 펜이 가진 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힘은 항상 바른 곳에 사용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도요.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크게 다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예민하고 다루기 힘든 것이 펜과 카메라라고 생각합니다.
학과 외적으로 대학교에서 홍보대사 영상팀으로 일한 적도 있는데요. 영상팀이다보니 주로 학교 행사가 있을 때면 내외 귀빈이라 불리는 높으신 자들의 인터뷰 영상같은 걸 촬영, 편집을 했습니다. 재밌던 건 카메라가 돌아가기 전에는 지나치게 무게를 잡던 사람도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인상이 달라진다는 거였어요. 다시 카메라의 불이 꺼지는 순간 한낱 쇼에 불과한 것들이 정말 많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카메라의 힘은 대단하구나. 엄청난 힘을 내포하고 있지만, 여기에 비롯된 힘은 많은 사실을 숨기게 하고 오히려 거짓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카메라를 든 우리가 두려운 게 아니라 고작 몇 인치의 앵글을 통해 퍼져나갈 자신들의 모습이 두려운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최대한 잘 보이려 언행을 조심하는 모습에서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그때부터였는지 저는 카메라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가장 자연스러운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조차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한 사람이기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요.
카메라는 영상편집이라는 기술을 활용하면 몇 배는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요. 같은 내용의 영상이라도 완전히 다른 내용을 만들어낼 수가 있거든요.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정도로요. 그런데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건 정작 악마를 천사처럼 포장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영상편집을 처음 배울 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부분이기도 했어요.
이는 사람 한 명을 스타로 만들 수도, 죽게 만들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힘이니까요.
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논조라는 것을 통해 같은 한 사건을 가지고 전혀 다르게 읽히도록 글을 씁니다. 쉽게 말해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르게 읽히도록 하는겁니다. 마치 “와! 컵에 물이 아직 절반이나 남았네!”와 “헐, 컵에 물이 절반밖에 안 남았어..”와 같은 건데요. 이걸 ‘네 편 내 편’으로 철저히 나눠 네 편에 불리하고 내 편에 유리하도록 글을 쓰는 거죠.
그래서 저는 지금도 글을 쓸 때 퇴고에 약 80퍼센트를 투자합니다. 글인가 싶은 정도의 비문 덩어리를 최소 열 차례 넘게 퇴고하여 발행해요. 그래서 제가 발행하는 글들은 최소 한 달 전에는 초안을 냈던 글이 대부분인데요. 그건 제 부족한 글을 조금이라도 고쳐 볼 만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지만, 방향에 상관없이 혹시나 어느 한 편으로 치우쳐진 글을 쓰지 않을까 하는 철저한 자가 검열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글과 영상은 편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굉장히 무서운 매개입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펜과 카메라 또한 칼과 총만큼 위험한 도구이고요. 그걸 다루는 사람이 가장 무섭습니다.
일을 하기도 전에 그런 회의감이 들어서였을까요? 저는 정의감 같은 게 없는 사람이라 밤을 새워가며 언론보도를 하는 기자나 PD와 같은 일은 못 하겠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건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말이에요.
그래서 제 꿈은 거창한 사회의 변화, 이런 것보다는 솔직하게 그냥 저의 행복이고요. 조금 더 나아가 제 가족, 그리고 저와 관련된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정도의 욕심으로 굳어졌습니다. 생각이 이렇게 굳어진 이유는 펜이나 카메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요즘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본인들의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더 멋지다고 느껴진 이유도 있습니다.
차보다 노래를 먼저 한 곡 소개해드릴 텐데요.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노래입니다. 힙합 자체는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넉살이라는 래퍼를 좋아하고요. 그 중 이 노래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 노래는 본인을 포함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의 노래라고 해요. 자기 자신이 아무리 작아 보여도 그 자리에서 기운차게 굳건히 신처럼 살아가길 바란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곡이래요.
내 자리는 하수구 냄샐 맡으며 아주 작은 모니터 앞에서 그저 화면이 꺼지지 않게 마우스를 건드는 일이지. 누군 사회라는 싸움에 마우스피스를 찾는데 말이지.’
넉살 - '작은 것들의 신' 가사 중
‘살기 위해 살아가는 모든 이들, 작은 배역들이 주연으로 살아가는 이곳’ 이라는 가사처럼 세상은 저처럼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 하나씩 모여 구성된 곳이더라고요. 그러니 반드시 세상이나 사회의 변화를 위해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
사회와 맞서 싸울 준비를 하는 사람도, 모니터가 꺼지지 않게 마우스를 건드리는 일을 하는 누군가도 모두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가사가 참 좋더라고요. 전체 가사를 찾아 한 번 쓱- 읽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이어서 오늘의 차를 함께 소개해드릴게요. 오늘 소개해드릴 차는 '신양모첨'이라는, 중국 10대 명차 중 하나로 불리는 녹차인데요. 이름에서부터 모첨(毛尖)이라는 뜻이 솜털이 있고 뾰족하다는 걸 의미합니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차 건엽(마른 잎)의 모양이 올곧게 뻗어 있는 게 특징입니다. 올곧다는 단어가 참 좋게 다가왔어요. 이 ‘올곧다'는 의미에 꽂혀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티를 공부했던 연구원에서는 이 건엽을 기억할 때 길고 쭉 뻗은 외형을 보고 연예인을 떠올리라 하셨지만, 저는 그 올곧은 모양에서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펜이나 카메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그 대상이 되는 정치인 혹은 연예인도 아니고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저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미생들인데요. 그 모습이 참 올곧다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평범한 그 모습이 참 멋져 보여서, 저 또한 제 자리를 지키며 저와 제 주변에 있는 작고도 연약한 사람들의 소중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도록 노력해보려 합니다. 그렇게 수년간 발전해 온 제 꿈은 작은 것들의 신입니다. 올곧은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시는 분들을 항상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