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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 Aug 22. 2024

내가 달리는 시간 오전 6시 30분

모닝런에 코 껴놨습니다만 

 대충 작년 8월 말쯤 소모임이라는 앱에서 찾아 지금 소속되어 있는 러닝크루에 가입을 했다는 것 정도만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방금 궁금해서 정확한 날짜를 확인해 보니 23년 8월 3일 가입을 했다. 가입하고 일주일 안에 첫 정기련 참석을 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제 곧 러닝크루 러닝도 1년이구나'가 아닌 '이미 1년이 지났다'는 의미다. 작년 이맘때쯤 러닝 크루를 시작하게 된 건 아마 기안 84 님의 러닝 기행이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하기도 한 달 전쯤인 뜨거운 여름이었을 것이다. 한참 에너지 소모량도 많고 회사까지 그만두질 못하고 이일 저 일을 병행하고 있어 아파서도 안되고 지쳐서도 안되고 체력이 고갈되어서는 절대 안 되는 스케줄을 주 7일 살고 있던 시기라 심心적으로도 신身적으로도 분출하고 채워야 할 타이밍이었다. 남들과 함께 하는 경쟁을 하는 스포츠, 장비가 많이 필요한 스포츠를 선호하지 않아 혼자 하는 요가, 홀로 서는 서핑, 그리고 가끔 헬스장 러닝머신 달리기, 소소한 따릉이 자전거 기행 정도만 늘 혼자를 즐기면서 했었는데 헬스장도 부담스럽고 러닝 크루라는 곳은 가도 뭐 운동화만 있다면 줄 서서 말없이 냅다 뛰면 되겠지 싶어 체력증진엔 와따인 달리기를 시작해 보기로 다짐했다. 일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된 소모임이라는 크루원 모집 앱, 러닝크루엔 관심도 없었으나 내가 사는 곳 주위를 검색해 보니 인원수가 제일 많은 곳이 눈에 뜨였고 꽤나 체계적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해서 가입하기로 마음을 먹고 가입 조건을 읽어 내려갔는데 아니 나이 제한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88년 용띠인 내가 지금 가입해도 정말 막차다. 아 내가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이렇게 운동크루의 끝다리가 될 나이인가 싶어 조금 속상? 불편하기도 했지만 뭐 가입 조건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고 가입만 하고 나면 모자 쓰고 다닐 텐데 몇 살인지가 뭐가 중요하겠어 싶어 그냥 가입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가입조건 캡쳐본을 떠서 푸념을 했다. 이 것 좀 보라고, 우리가 이런 나이라고 이제...!! 친구는 진짜 대박이라고 같이 썽을 한바탕 내주며 정기런에 가서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낙오되지 말아라고 신신당부를 거듭했다. 


 그래서 8월 3일 이후 어느 날 첫 번째 정기런 참석했다. 

 저녁 9시에 매일 집 옆 식물원 공원에서 뛴다. 다 같이 몸을 적당히 풀고 뛰기 시작해서 작게 뛰면 한 1.6km? 크게 한 바퀴 돌면 2.5km 정도인데 작은 바퀴로 다 같이 한 바퀴를 천천히 돌고 그 뒤로는 속도 내고 싶은 사람, 천천히 뛸 사람, 좀 걸어도 될 사람 등등 제각기 나뉘어 자유롭게 뛰고 9시 50분 다시 처음 장소에서 만나 다 같이 인증하고 인사하고 끝내는 시스템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때 작게 한... 세 바퀴 정도 따라 뛰었던 것 같다. 어떻게 뛰는지 이게 무슨 속도인지도 모르고 그냥 낙오되지 말아라 이 한 생각만 가지고 냅다 달렸다. 숨도 차고 다리도 아팠지만 사실 죽을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 정기런이 끝나고 뻘쭘하게 대충 어딘가 끼어서 인증사진도 한 판 찍고 집에 가려는데 오늘 새로 온 분들은 오픈채팅에 들어와야 한다고 운영진으로 추정되는 분이 오셔서 안내해 주셨다. 아 네네, 그런데 충격, 오픈채팅에 입장하는 아이디가 '실명 석자 슬래쉬 출생 연도 끝두자리' 허허 꼭 이래야 합니까!  그래서 그냥 썩 낵히지도 않고 해서 주춤하고 있는데 운영진님이 오시더니 본인이 도와주시겠다고 폰을 가져가서 몇 년 생이시냐고 물었다. 그렇게 나는 그 큰 크루에 몇 명 있지도 않은 최고령자 회원으로 떡하니 첫 러닝을 마치고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도 별 신경도 쓰지 않았을 일이다. 내가 누구 건 몇 살이건 관심 가질 겨를도 없었을 텐데 혼자 괜히 나이게 꽂혀서 별별 불편함과 긴장을 느꼈던 것 같다. 사람이란 하하


 아무튼 나는 그렇게 뜀박질에 첫 발을 디뎠다. 그때는 괜스레 이것도 러닝이라고 할 수 있나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냅다 뛰는 이 뜀박질은 아직 달리기라고 하기도 뭣 할 정도로 두서없고 근본도 없고 투박한 뜀박질이었다. 그리고 육공공, 육삼공, 오삼공 어쩌고 이 암호 같은 속도를 의미하는 단어? 들을 배워가면서 그리고 고수들로부터 어깨 너머로 자세, 호흡법, 러닝장비 등등을 배워가면서 나의 이 투박한 '뜀박질'은 '달리기' 정도의 구색을 갖춰가는 듯했다. 그냥 아무렇게나 신던 운동화 중 그나마 가장 편하게 느껴졌던 운동화를 발목 양말과 함께 아무렇게나 신고 가서 뛰었는데 러닝화와 빵빵한 쿠션이 있는 달리기 양말을 신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느끼고 나서 제일 만만한 나이키에 가서 '러닝화로 제일 흔히 나가는 친구는 누구인가요' 단순한 질문 한 마디로 생에 첫 러닝화도 하나 사 보고 쿠팡으로 5족에 가격도 괜찮아 보이고 리뷰도 꽤나 있는 양말도 한번 사 보고 그렇게 '달리는'사람이 되었다. 


 발리 이야기를 쓰면서 아주 잠깐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어려서부터 나는 아빠한테 '여자가 10km를 한 번에 거뜬하게 뛸 수 있는 체력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한다'라는 말을 늘 듣고 자라서 '장거리 달리기'에 대한 알 수 없는 집착이 항상 어딘가에 있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 무엇인가 간절한 것이 있을 때,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어디서든 그저 무장정 뛰었었던 기억이 꽤나 있다. 이번엔 체력이었다. 이제 자꾸만 채워지는 나이의 순리를 피해 갈 순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올라가는 내 나잇수만큼 인생의 재미를 보기 위해 벌이는 일들이 더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편에 속하는 체력이지만 그 이상 더블 아닌 트리플 이상의 체력이 간절히 필요했다. 그래서 하루의 모든 스케줄을 소화하고 시간이 되면 지쳐도 힘들어도 이 러닝크루 정기련 이라는 곳에 꾸준히 뛰러 나갔다. 키로수도 모른 채 세 바퀴, 네 바퀴, 어떤 날은 여섯 바퀴, 그렇게 몇 바퀴 뛰었는지 정도만 겨우 알고 그 정도만 겨우 내 척도를 가지면서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며 뛰었다. 


 서두가 길었다. 

결론은 아니지만 어쨌든 오늘 글의 타이틀을 결론으로 짓자면 1년이 지난 오늘 나는 러닝크루의 운영진 중 한 명이 되었고 3-4개월 전부터는 어떻게 모닝런을 매일 같은 시간 열고 있다. 처음엔 운영진으로서 딱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내가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 위해 되는 날만 해보겠다였는데 하다가 보니 내가 오히려 얻고 있는 게 많은 것 같아 모닝런 중독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으로 모닝런 정기벙에 내 코를 아주 세게 끼워두고 매일 아침 6시 반 뛰러 나간다. 여전히 삼성 헬스 앱 말고는 딱히 기록을 남겨 둔 게 없어 정확하게 며칠을 나갔는진 모르겠지만 내가 모닝런을 연 기간 동안은 거의 주 5-6일은 꼭 뛰었던 것 같다. 중간중간 외국에 있을 때도, 부산 본가에 가 있을 때도, 그 시간만큼은 러닝화를 챙겨가서 같이 뛰었다. 자의던 타의던 차곡차곡 쌓인 작은 내 습관이 며칠의 부재로 사라지는 게 싫기도 했고 겨우 늘린 호흡이 많이 아깝기도 해서 인 것 같다. 아침에 뛰고 나면 기분이 좋다. 도파민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투박한 뜀박질에 첫 발을 디뎠던 내가 1년 만에 아침 달리기를 꽤나 열심히 하고 있다. 아 그리고 체력이 아주 많이 좋아졌다. 

원래도 나쁘지 않았던 체력이 지금은 정말 거뜬함을 자주 느낄 만큼 많이 좋아졌다. 기록으론 말할 수 없겠지만 큰 무리 없이 10km를 한 번에 뛸 수 있는 여성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기쁨으로 오늘도 내일도 

매일 아침 6시 30분 달리기를 한다. 




오늘 아침 식물원 햇살, 비가 오기 전이라 유난히 더 밝아 보였다. 


아침 햇살도 꽤나 강해서 어깨가 후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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