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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 Oct 16. 2024

생각과 마음 태도의 유연함

에너지젤을 꼭 먹어야 하나요? 난 좀 무서운데 

체력단련과 재미있는 러닝이 목표였는데 꾸준히 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조금씩 욕심이라는 게 생겼다. 

하루에 같은 시간에 일어나 5km 면 돼, 그 이상 조금만 더 뛰면 돼, 했던 거리와 시간도 10km를 여러 번 뛰어보고 나니 괜찮은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어제는 열을 뛰었는데 오늘은 다섯 또는 여섯만 뛰기엔 왠지 아쉽지 않은가 하는 기분이 있어 또 더 뛰게 되고 그렇게 계속 쌓아가다 보니 마음에 작지만 욕심 같은 집착이 분명 생긴 것 같다. 물론 나쁜 집착은 아니다. 조금 더 잘 뛰어 보고 싶고 거뜬한 숨으로 조금 더 긴 거리를 뛰어보고 싶은 마음이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만 뛰고 숨을 고르고 생각 정리도 하면서 한두 바퀴 정도 혼자 더 걸어보고 가던 쿨다운 시간이 최근 들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장거리를 뛰고 나면 얼른 집에 가서 일과를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평생 처음 신청해 본 하프 대회를 앞두고 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20킬로 이상은 뛰어본 적이 없을뿐더러 다리나 발목 상황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라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슬슬 되기 시작했다. 사실 겁도 나기 시작했다. 다치진 않을까, 최근에 뛰어보다가 엄청난 고통에 고생했던 것처럼 옆구리 경련이 갑자기 생기진 않을까, 무릎과 발목 통증으로 중간에 멈춰야 하진 않을까, 끝나고 나서 일상생활은 할 수 있을까 등등..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두려움이란.. 갑자기 몰려온 걱정과 막연한 두려움은 뭘까 하고 이렇게 글자로 하나하나 써보다 보니 왜 두려운지 뭐가 걱정인지를 직면해 볼 수 있게 되는구나. 

글로 시각화 하는 것은 두려움을 직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무튼 그래서 최근 몇 주, 며칠은 걱정과 두려움과 함께 집착을 가지기 시작한 거다. 이제 가까워지니 무조건 펀런만 하다가는 우습게 볼 수 있는 하프 거리를 완주도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 각종 마라톤 준비를 하는 크루원들과 함께 크루 내 대회 준비 챌린지에 참가해서 주간 미션 도장을 성실히 깨다 보니 명백하게 글을 쓸 여유도 러닝을 하면서 글감을 생각할 여유도 없어졌다. 


드디어 이번 주 토요일은 서른일곱 해를 살아온 내 인생 처음으로 21.0975km, 마라톤 하프 거리 대회에 도전하는 날이다. 이제 꾸준히 뛴 지 일 년 반 남짓 지난 시간이지만 대회라는 것을 좀 진지하게 나가보는 건 처음이다. 인생의 특별한 이벤트라고 생각하니 좀 더 화려한 날로 만들어 보려고 뇌가 열일을 하는 건지 갖가지 더 특별할 이유들이 떠오른다. 예를 들자면 

1. 10월 말이면 지금껏 10년 가까이해오던 직장 생활을 관두고 큰맘 먹고 용기 내서 퇴사한 지 딱 반년이 되는 순간이다. 회사를 관두고도 게을러지기는 싫어서 더 악착같이 새벽에 일어나서 꾸준히 뛰어왔는데 반년이 되는 시점에 인생 첫 하프라니 하는 뭉클한 날. 

2. 다리 통증으로 10년 넘게 힘들어왔는데 딱 10개월 정도 전에 내 다리를 위해 해 볼 수 있는 마지막 시도로 

맘먹고 큰 병원에 가서 CT를 찍었더랬다. 그리고 결과는 또다시 아무런 뚜렷한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무리하게 뛰거나 자극을 주는 것은 통증을 더 심하게 할 수밖에 없으니 요가 같은 스트레칭, 이완 운동 외에는 다리에 무리를 주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사 선생님의 마지막 말과 함께. 그리고 나는 마음을 먹었다. 큰일이 없는 한 다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내 다리 통증으로 병원을 찾아가서 의지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냥 한번 내 마음과 의지로 정말 답 없이 밤낮으로 나를 괴롭히는 이 통증에 도전장을 내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통증을 잊기 위해 뛰기 시작했고 조금 더 강해져서 하프에 도전하는 대견한 날.

3. 앞으로 똑같은 직장인이 아닌 꿈만 꿔보던 일들을 현실로 이뤄볼 예정인데 반년이란 시간을 현타도 맞으면서 다시 마음도 돌이켜 보면서 꾸역꾸역 나를 관찰하고 돌려본 셀프 훈련기간에 대한 나름 '준'마침표를 찍어보는 그리고 시작의 느낌표도 찍어보는 그런 날. 

뭐 그렇다. 


혼자 뛸 때는 그래도 혼자서 너무 힘들지 않으면서 두려운 생각도 없으면서 안정적으로 뛸 수 있는 거리가 10km 라 몸이 너무 피곤하지 않고 시간적 여유가 조금 있으면 10km-12km 정도는 몇 번 뛰었다. 그리고 마라톤 준비 챌린지 반 미션으로 2번 정도 15-17km 정도를 뛰어봤었다. 하지만 20km 이상은 단 한 번도 뛰어보지 않았고 17km 뛸 때도 마지막 4km 정도는 경련이 나서 난리부르스인 옆구리를 행주처럼 두 손으로 꽉 쥐어짜고 부여잡고 꾸역꾸역 뛰었던 터라 20km 이상에 대한 겁이 오히려 생기기 시작했다. 당장 이번주인데 어떡하나 할 수 있을까, 뭣도 모르고 신청서를 넣었을 때와는 다르게 겁이 많아져서 대회를 생각만 해도 위가 왠지 불편해 오기도 했는데 마침 크루에 정말 선수처럼 잘 뛰시는 분이 기꺼이 도와주시겠다고 손을 내밀어 주셔서 감사히 처음으로 20km 이상 연습을 실전처럼 해 보기로 했다. 

어느 정도 페이스도 생각해서 조절하면서, 추천 해주신 대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에너지젤도 필요한 순간에 조금씩 나눠서 먹어보기도 하면서, 

혼자 무식하게 냅다 뛸 땐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17km를 뛰었는데 

겁먹지 않고 급수도 하면서. 

정말 아기가 한 발 한 발 걸음마를 배우듯이, 보조 바퀴를 떼고 두 발 자전거로 갈아타는 순간처럼, 그리고 이제 면허를 막 따서 깜빡이 20번 이상 깜빡깜빡거리기를 기다리면서 조마조마 차선 변경을 하던 그 순간처럼, 그렇게 차근 차근 실전 연습을 했다.

결국 성공적으로 20km+ 거리를 안전하게 큰 무리 없이 달려볼 수 있었고 문제가 생기거나 퍼지는 경우가 생겨도 어쨌든 나를 버리지 않고 갈 사부님이 옆에 계시니 두려움이 반 아래로 줄어들어서 그런지 마음도 조금 편하게 나름 즐겁게 달렸다. 

나이가 들면서 정말 겁보가 되고 있는 것 같다. 확실하게. 

그리고 한땐 정말 겁이라곤 새끼손가락만큼도 없었던 왈가닥 소녀였던 사람이 마흔을 바라보는 겁보 여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엔 매번 놀랍다. 


삶의 매 순간 나의 부족함은 있는 그대로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에 적당히 실토하고 고백하고 진심과 열정과 함께 도움을 부탁하고 그리고 배우고 인정하고 감사하고 그렇게 산다면 얼마나 잘 사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평소 자존심도 세고 지기도 싫어하며 특히 나의 약한 부분, 단점,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부분은 내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까지 절대 오픈 하기 싫어하는 지독한 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이가 들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책을 보고 여행을 하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요가를 하면서 많이 무너지고 부서지고 깎이고 다듬어지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인품을 갖추긴 한참 멀었다. 한 번도 뛰어보지 않은 거리를 달리면서 내가 뛰어보면서 약했던 구간, 힘들었던 부분, 지금 느끼는 통증, 호흡이 차서 죽을 것 같은 순간 등등을 얘기하고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넘길 수 있을지를 듣고 참고하면서 앞으로 남은 며칠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대한 팁들도 듣고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어떻게 이것들을 접목시켜서 잘 한번 해 볼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이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생각과 마음 그리고 태도의 유연함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자존심이 센 것, 내 약한 부분, 부족한 부분은 들어내지 않고 아닌 척 괜찮은 척 강한 부분, 잘하는 것만 들어내는 것이 과연 나한테는 도움이 되었던가. 단언컨대 진심으로 그리고 오랫동안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나를 내려놓고 인정하고 그리고 불필요한 힘은 좀 더 빼고 필요한 에너지들은 먹어보지 못했던 에너지젤도 추천으로 먹어보면서 그렇게 나이 불문한 여러 방면에서 존재하고 있을 선배님들에게 도움도 받으면서 그렇게 도전하면서 사는 것이 안전하고 즐거운 인생 장거리 러닝을 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유연하자. 그리고 힘을 빼자. 

마음을 열고 배우고. 나도 베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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