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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숟가락 Jun 05. 2021

미찌라꼬 주세요

미찌라꼬 주세요

작년 3살 아들의 말을 듣고 우리 부부는 어안이 벙벙해 쳐다보면서 무슨 말인지 서로 물었다.

간절하게 부탁하는데 도저히 해석해 낼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다시 설명을 부탁했다.
"우유하고 설탕하고 넣고 쉐키쉐키 하는 거요"

"아하~미숫가루!"

"아니요! 미찌라꼬요"

"미찌라꼬가 아니고 미숫가루라고 하는거야. 미숫가루라고 해봐"

"미찌라꼬! 미찌라꼬!!"

미숫가루 발음이 어려운지 미숫가루라고 알려줘도 미찌라꼬가 맞다고 우긴다.

미찌라고라는 말이 재밌고 귀엽기도 해서 굳이 고쳐주지 않고 우리 집에서는 미숫가루를 그 단어로 부르기로 했다.

그 후로도 몇 달동안 아들은 미찌라꼬를 외치고 다녔고, 비슷한 말인 아지랭이(=아이스크림)도 만들어냈다.




한 해가 지난 어느 봄날 아이가 미숫가루를 달라고 한다.

'미찌라꼬가 아니고 미숫가루라고?' 깜짝 놀라 다시 물었다.

“미찌라꼬 아니야?”

"아니야. 미숫가루 주세요"

이제는 "미찌라꼬 줄까?"라고 하면 큰 소리로 "미숫가루!"라고 고쳐준다.

<에밀>에서 루소가 한 말이 맞았다. 아이는 자연이 키우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혀가 길어지고 뇌가 자라면서 발음이 잘 되고 어떤 말이 맞는지 알게 되었다.

만약 발음이 안 되는 3살짜리 아이를 고쳐보겠다고 미숫가루를 수없이 가르쳤다면 어땠을까?

잘 안 되었다면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고 나는 아들에게 실망해 우리 관계가 안 좋아졌을 것이다.

잘 되었더라도 아이는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경험이 더 크게 남았을 것이고, 나는 교육의 힘을 과신해 이것저것 무리한 요구를 했을 것이다.




어느 교육 잡지에서 아이가 한글을 늦게 깨치기를 원하는 부모를 만났다.

그림책을 뜯어먹고 몸으로 놀고 그림을 보고 상상하던 시간을 지나 아이는 글자를 자연스레 읽게 되었다. 일곱 살이 되어서야 읽기 시작했으니 요즘 기준으로는 다소 늦은 나이다. 또래를 키우는 지인과 양가 부모님의 걱정을 들은 적도 있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평생 글자를 읽을 텐데 서두를 것 없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글을 읽게 되는 순간 그림을 보고 상상하는 시기가 끝날 거라 생각하니 아쉬웠다.
그러니 그 짧은 순간을 일부로 더 짧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림책을 들고 이건 이런 내용이라며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을 이야기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글자를 익힌 후 휘둥그레진 눈으로 달려와 그림책을 흔들며 자신이 그림을 보고 지어내던 이야기와 완전히 다른 내용이라면 소리치던 아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어린이 시절은 충분히 놀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가지고도 재밌게 놀아주니 고마운 일이었다. 내가 한 일은 그런 아이의 흥분에 최선을 다해 반응해주는 것, 아이가 설명하는 책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 주는 것, 그뿐이었다. _민들레 134, 115-6

                                                                                                

지금의 아이는 가장 최선의 아이다.

아이는 자연이 부여한 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고 있다.

최선의 아이를 만나는 우리가 할 일은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놀라움을 표현하면 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다.

교육보다 더 큰 이름인 '자연'이 그 일을 해줄 것이다.

자연이 가진 힘은 멀리서만 작용하지 않고 자세히 관찰하면 우리 옆에서도 볼 수 있다.

그것을 믿으며 아이를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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