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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숟가락 Nov 23. 2022

다섯 번째 아이와 개울: 자유학교와 아이들

“자유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하교할 때 편의점에서 군것질거리를 잔뜩 사서 버스 정류장에서 먹어 치웠어요. 초등학생 때 못 먹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할까? 그랬던 것 같아요”

 

  2022년 모꼬지 때 졸업생과의 대화 시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기억에 의존해 정확하지 않을지도 몰라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였습니다. 가볍게 웃는 분위기에서 나온 솔직한 이야기였지만 마음에 뭔가가 걸렸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학창 시절 두발 규제가 심해 강제적으로 이발을 당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조건 머리를 기르고 색을 입혔습니다. 선택한 머리 모양이 나와 어울리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길이가 길어야 했고, 검은색이 아니어야 했습니다. 그때 사진을 지금 보면 태워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멋보다는 반항이었습니다.


  공교육의 두발 규제와 대안교육의 먹거리 교육을 같은 층위에서 비교할 수 없지만, 공통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학생에게 설명하지 않고 어른들이 정한 ‘규칙’을 적용한 것입니다. 대안교육 20년을 정리한 책에서 답이 될만한 사례를 찾았습니다.     


  대안적 교육 공간을 꾸려가는 데 학생들이 얼마나 동등한 주체로 서 있는지 자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공간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건 교사와 부모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아이들이 이러한 가치를 품고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교사와 부모의 신념 속 대상으로 위치하기 쉽다. 학생들의 형용모순과 같은 증언들 속에 실천을 점검할 수 있는 지점들이 등장한다.
‘자발성을 강요받는다.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의식이 우리에겐 폭력적이다’ 등 가치의 주인공이 아닌 가치 실현의 대상이 된 학생들이 (교사나 부모가 올바르다고 여기는) 가치에 질식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교사나 부모, 그리고 학생 사이에서 쉽게 해소될 수 없는 입장 차이를 청소년 인권의 관점에서 깊이 사유하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그 공간은 그토록 비판해 마지않던 ‘학교’와 그다지 다르지 않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_대안교육 20년을 말하다, 49~50쪽

   

  가치를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그 가치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구하고,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냐’만큼 ‘어떤 방법으로 그 가치를 전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강요나 억압을 통해서 행동을 통제할 수 있어도 마음을 변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뇌가 성장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인 자유, 생명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계속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말은 그럴싸하게 말했지만 저도 처음 우리 학교에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딸아이에게 “노는 학교 갈래? 공부하는 학교 갈래?”라고 선택을 강요했습니다. 다행히 입학하고 학교 다니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있지만, 아직도 학년 말에 우리 학교에 계속 다닐지, 집 근처 초등학교에 가고 싶은지를 묻습니다.


  처음부터 아이들의 의사를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학교 입학 전형은 주로 교사, 학부모가 참여합니다. 학생이 참여하는 자리는 적은데, 학생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책 형태로 우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 활동 등을 소개하고 동의 여부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학교를 운영하는 과정에 구성원(학생, 교사, 학부모)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합니다. 우리 학교 운영의 경우 교사, 보호자의 참여는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학생은 그렇지 못합니다. 통념상 초등학생은 어리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뒤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특정한 능력을 갖춘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로워야 하고, 실행은 도와가면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의 솔직한 마음을 듣고 싶습니다. 그래야 학교 구성원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이 학교 운영에 대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보호자에게 말하거나, 교사를 찾아가거나, 학생자치회에 건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모두 아이들이 실행하기 어렵습니다. 어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거부당한 경험이 있고, 말발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생자치회에 건의하는 방식도 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선택했습니다. 글은 가장 개별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생각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몇 가지 질문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지라도 쓸 수 있게, 비밀 이야기 칸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차분히 생각하니 일리가 있었습니다. 이 질문이 1~6학년에게 적합한지, 저학년 아이들이 글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는지 등 고려해야 할 점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편한 상대에게 말로 터놓기, 그림 그리기로 자신의 생각 표현하고 이야기 만들기, 비밀 일기 쓰듯이 적어보기 등 제가 선택한 방식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대안이 많았습니다. 많은 생각과 의견이 쌓이면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그래서 좋습니다.


  마지막 아이와 개울은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마무리를 하지 못해 아쉽지만,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앞서 말했든 좋은 가치가 내면화되려면 친절히 설명하고, 의견을 구하고,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솔직한 마음을 묻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 계속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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