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기하학이 아니다

당신의 연주는 반응인가, 예측인가?

by TAFO

피아노를 친 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 작곡도 한다. 나는 완성된 곡을 사랑하지만, 정교한 기계 장치로서의 악기 그 자체도 사랑한다. 작곡은 그 둘 사이의 틈에서 태어난다. 누군가 음악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묻는다면, 나는 여기서부터 설명을 시작하겠다.


음악은 흔히 감정의 언어로 포장된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보면 그것은 철저한 ‘음정의 논리’다. 주파수와 주파수 사이, 그 비율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물리학이다.


사람들은 음감을 ‘있다/없다’의 이분법적 재능으로 취급한다. 음 하나를 툭 쳐서 이름을 맞히면 재능이 있고, 못 하면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음악적 구조는 ‘절대 음감’이 아닌 ‘상대 음감’으로 작동한다. 음의 이름이 아니라 음과 음 사이의 거리를 듣는 것이다. 이것은 타고나는 초능력이 아니다. 훈련할 수 있는 감각이다.


문제는 우리가 쓰는 도구가 이 훈련을 너무 쉽게 회피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표준 악보는 음높이를 수직으로 나열한 그래프다. 주파수를 선 위에 대응시킨다. 피아노에게 이것은 매우 효율적인 좌표계다. 선 위의 검은 점은 건반 위의 손가락 위치가 된다. 이 효율성은 연주자가 귀를 완전히 끄고도 연주할 수 있게 만든다. 시각적 해독과 근육 기억만으로도 복잡한 곡을 쳐낼 수 있다. 마치 뜻을 모르는 외국어 문장을 키보드로 타이핑하는 것과 같다.


기타도 논리는 다르지만 함정은 같다. 기타는 형태의 악기다. 코드 구조는 손가락 모양을 유지한 채 위치만 이동하면 된다. 이 구조는 상대 음감 훈련에 유리하다. 그러나 ‘타브 악보’는 이것을 다시 시각적 격자로 구겨 넣는다. 타브는 줄 번호와 프렛 숫자를 제공한다. 소리가 아니라 좌표를 준다.


두 경우 모두, 시각 데이터는 뇌가 게으름을 피우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듣는 노력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눈은 귀보다 빠르다. 그래서 뇌는 시각적 경로를 기본값으로 설정한다. 회로는 단락되고, 정보는 눈에서 손으로 직행한다. 귀는 소외된다.


물론 당신은 “난 귀로 들으면서 치는데?”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틀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듣는 것과 연주를 이끌기 위해 듣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전자는 피드백이고, 후자는 예측이다. 이 전환이 일어날 때, 비로소 기계적인 타건은 음악적인 연주가 된다.


시각적 경로는 음악을 공간적 지시사항으로 취급한다. 손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좌표를 찍어준다. 반면 청각적 경로는 중력을 다룬다. 긴장과 이완의 무게를 느낀다.


악보 위에서 도미넌트 세븐스와 토닉 사이의 간격은 그저 몇 밀리미터의 수직적 틈일 뿐이다. 눈에게 그것은 정적인 기하학이다. 하지만 귀에게 그 간격은 강력한 인력이다. 도미넌트는 토닉으로 쏟아지려 한다. 해결을 요구한다. 눈이 이끌면 우리는 좌표를 연주하고, 귀가 이끌면 우리는 중력을 연주한다. 겉보기에 손가락의 움직임은 비슷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의도의 차이는 절대적이다.


이것이 반응과 예측의 차이다. 시각적 연주는 반응적이다. 신호가 나타나면 손이 즉각적으로 따른다. 청각적 연주는 예측적이다. 뇌가 내면에서 소리를 먼저 듣는다. 손이 건반을 누르기 수 밀리초 전에, 뇌는 이미 질감과 음높이를 시뮬레이션한다.


그 아주 미세한 시간의 틈. 음악이 실제로 발생하는 곳은 악보 위가 아니라 바로 그 지점이다. 악보는 지시 사항을 저장할 뿐, 긴장감까지 저장할 수는 없다. 음악의 논리는 기호 안에 살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그 짧은 예감의 순간에만 존재한다.


현이 진동하기, 바로 직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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