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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구두를 신은 Jul 07. 2024

[소설] 축대 위 하얀 찔레꽃 4화

4화 승부수     


마당이 있는 고급 주택가, 그 뒤로 서울을 대표하는 산이 보였다. 그 산자락에 폭 안긴 것 같은 동네에 성우네 집이 있다. 재개발하면서 개성 넘치는 한옥들과 양옥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풍광이 좋고 공기가 신선하여 아파트에 신물 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매매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방송에서 매력적인 주택들로 소개가 되고 중간중간 들어선 게스트하우스들이 홍보를 하게 되면서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정원을 아름답게 꾸몄고 멀리에서 구경온 사람들은 그 꽃을 배경 삼아 인생샷을 건졌다. 주황색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있는 그 집이다. 그러나 성우는 장미가 피었는지를 살펴본 적도 없다. 그러나 장미 향이 등교하는 성우를 기분 좋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뿐이고 성우는 다시 기분이 나빠진다. 바로 그 학교 때문이다. 성우가 지원했다가 떨어진 학교. 그 학교가 집 앞이어서 좋다고 중학교 때는 노래를 했었다. 그 학교에 가게 될 줄 알고. 그러나 떨어지고 보니 이건 매일 아침마다 쓴맛을 맛보아야 한다. 그래서 집에서 버스로 5분이면 가는 학교에 가서도 마음의 절반은 그 학교에 가 있다.

‘그 학교에 못 간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모로 가도 서울로만 하면 된다고.’

이때 서울은 서울대를 의미한다. 성우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마음은 늘 상대를 알 수 없는 경쟁심에 불타올랐다.      

재영의 자리가 비었다. 아이들과 어울려 놀던 성우는 재영의 자리에 갔다. 책상에는 오선지가 그려진 공책이 놓여있었다. 공책에는 빼곡히 악보가 그려있었다. 노랫말이 달려 있는 것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성우는 공책을 척, 들어 올리더니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가뜩이나 크고 또랑또랑한 목소리인데 일부러 옛날 무성 영화의 변사처럼 우스꽝스럽게 읽어 내려갔다. 그러자 듣고 있던 아이들이 낄낄낄 웃었다.

“뭐야, 신재영이 쓴 거야, 원래 있는 노래야?”

“지가 쓴 걸걸?”

그러자 성우가 말했다.

“신재영, 중2병 걸렸냐? 가사가 왜 이래?”

그러는 사이에 신재영이 들어왔다. 성우는 빠르게 악보를 내려놓았다.

“야, 너 장래희망이 싱어송라이터였어? 사인 좀 받아놔야겠다.”

농담으로 시작했는데 어째 말투 끝이 싸해지면서 냉소로 흘렀다. 수업 시작 종이 흘렀고 성우는 자리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우선 나래인지 나리인지 주변 정리부터.’     

“나래?”

그러자 여자애는 얼굴을 붉혔다.

“나리…”

“아, 미안 미안 나리! 나리야 음악 수행평가 나랑 할래? 같이할 사람이 없어서 그래.”

성우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자애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표정은 누가 보면 성우에게 고백이라도 받았다고 여길 지경이었다. 성우가 같이 할 여자애가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반에서 성우의 제안을 거절할 여학생은 없었다. 심지어 저 냉정한 성주현도 사귀는 것은 거절했어도 음악 수행평가를 같이 하자는 제안은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성주현과 했거나 아니면 노래를 잘하는 애 중에서 골랐을 것이다. 음악 가창 수행평가는 남녀 듀엣곡이었다. 그런데 노래를 잘하는지 잘 못하는지도 모르는 나리인지 나래인지에게 제안을 했던 이유는 딱 한 가지 신재영과 친하게 지내기 때문이었다.

“좋아! 근데 나 노래 잘 못해.”

“괜찮아, 이 오빠만 믿어.”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어깨에 팔을 척 걸쳤다. 깜짝 놀란 여자애는 어깨를 움찔했다. 성우는 재영을 슬쩍 바라보았다.

‘어때, 약이 좀 오르냐?’     

다행히 나리는 노래를 잘하는 아이였다. 목소리가 가늘고 섬세한 것이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미성이었다.

‘마이너리그에 이런 재원이?’

성우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엄지를 세우며 나리에게 칭찬을 건넸다.

“다음은 신재영 나와. 누구랑 한다고 했지?”

신재영이 걸어 나왔다.

“선생님, 짝을 못 구했는데 저 혼자 해도 될까요?”

음악 선생님은 감점된다는 사실을 알린 후에 부르라고 했다. 재영은 기타를 준비했다. 반주는 피아노 반주이거나 기타 반주였는데 부르는 사람이 알아서 준비하는 방식이었다.

딱 저처럼 불렀다. 기교는 없으나 향기를 품은 것처럼 가슴에 무엇이 스며들었다.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잊은 듯, 음유 시인처럼 조용히 읊조리는 재영의 노래는 어수선한 음악실을 순식간에 어느 고급진 콘서트홀로 만들었다. 노래가 끝났을 때 아이들은 뭔가 마법에서 깬 듯, 꿈에서 깬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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