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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구두를 신은 Jul 08. 2024

[소설] 담장 위 하얀 찔레꽃 5화

5화 기흉     


수학 선생님은 좀 잔인한 면이 있었다. 아이들의 흥분에 결코 휘말리지 않았다. 그 느낌은 마치 키가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얕보는 것과 유사했다. 키 작고 팔 짧은 사람이 제 아무리 휘둘러봐야 어쩌지 못하는 것을 바라볼 때의 여유.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수학 선생님 앞에서는 공손하게 행동했다. 기선이 제압되었다고 보겠다. 그런 수학 선생님이 이번에 사고를 쳤다. 지난해 내내  수학선생님은 비슷한 난이도의 문제를 출제했다. 주현이도 성우도 진혁이도 그만그만한 점수를 받았다. 수학이라면 성우가 제일 잘하긴 했지만 주현이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얼추 성우와 같은 실력까지 따라잡은 상태에서 시험을 치르다 보니 점수는 엇비슷하게 나왔다. 그랬는데 이번 시험 난이도는 너무 높았다. 전체 평균이 20점가량이나 떨어지고, 90점을 넘던 아이들이 모두 60점대로 나가떨어졌다. 성우는 채점을 하다가 중간에 시험지를 구겼다. 아이들이 교무실로 달려갔다.

“선생님! 선생님! 성우가 숨이 안 쉬어진대요.”     

기흉이었다. 아이들은 수군거렸다. 승빈이만 점수가 90점대로 제자리를 지켰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늘 상위권을 차지했던 아이들 사이에 실제로는 실력 차이가 그 정도였던 것, 그동안에는 시험이 쉬워서 그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번 시험으로 실력이 명백히 드러났던 것이라고. 아이들은 자신의 점수는 새까맣게 잊고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그간 성우에게 짓눌린 열등감을 해소하는 중이었다.      


“괜찮아?”

주현이가 병문안을 왔다.

“꺼져.”

성우가 말했다.

“좋아한다는 여자애한테 할 말은 아니지.”

주현이가 말했다.

“좋아한다고 한 적 없는데”

“사귀어 볼까라는 말이 좋아한다는 말과 다른 말이구나.”

“꺼져라.”

“나도 수학 망쳤어. 승빈이 빼고는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어차피 승빈이는 다른 과목에서 우리한테 안 되잖아... 힘내.”

“너는 그걸 위로라고 하냐? 너도 참 가만 보면 공감 능력 떨어져.”

“그럼 어떡하는데?”

‘안아줘야지.’

성우는 그렇게 말할 뻔했다. 그 순간 재영이가 현승이를 안아주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던가? 안기는 것, 우는 것 이런 것을 해 본 기억이 없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했을 때, 엄마는 안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자신의 상심을 달래느라 정작 아들인 성우의 마음을 돌아보지 않았었다.      

주현이가 다가왔다. 안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냥 팔을 성우의 어깨에 두른 채 기대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성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성우는 주현에게서 모성을 느꼈다. 어쩌면 성우는 주현의 이런 면에 끌렸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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