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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구두를 신은 Jul 09. 2024

[소설] 담장 위 하얀 찔레꽃 6화

6화 노래 그리고 와일드로즈     


일주일이 지나 성우는 다시 예전의 쿨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학교에 나타났다.

“그래서 우리 사귀는 거야?”

“아닌데.”

“젠장, 너는!”

성우가 말했다.

“재영이랑은 잘 되고 있냐? 너 재영이가 노래하는 거 보고 반했지? 1차원적인 새끼가 그래놓고 괜히 천박하네 어쩌네 나만 괴롭힌 거지?”

“재영이랑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냥 그 애 인성이 좋아서 그런 거지.”

“하긴, 좀 특별해 보이긴 하더라. 요즘 애들 같지 않고.”

“그렇지?”

“그래도 너한텐 안 어울려. 너는 나 같은 사람이 어울리지.”

그 말에 주현은 부인하지도 않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나리 일은 좀 심했어. 쪼잔하게.”

재영이를 견제하느라 나리와 같이 음악 수행평가를 한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주현은 말했다.

“아... 좀 그랬나?”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성우는 생각했다.

'송주현 손바닥에서 놀고 있는 느낌이다. 별 걸 다 꿰뚫어 보고 있네.'


그랬는데 변수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신재영. 점심시간이었다.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주현에게 재영이가 다가와 악보를 내밀었다.

“이거 내가 쓴 곡인데 네가 노랫말을 써볼래? 바쁘면 말고.”

주현은 언어의 아름다움을 잘 아는 아이다.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는지도 알고 있다. 재영이가 아니었어도 그 부탁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종례 후 성우를 먼저 보내고 주현은 잠시 교실에 남았다. 청소하는 아이들이 다 가고, 학원 숙제를 못다 한 남학생이 저쪽 한편에 앉아 있었다.

“멜로디는 이래. 들어봐.”

주현이 핸드폰으로 녹음을 시작하자 재영이가 기타를 연주하며 허밍으로 노래했다. 곡은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부담스럽지 않은 음역대였다. 고음으로 피치를 올리는 부분도 없었고 듣기 거북한 낮은 음도 없었다. 멜로디는 무난하면서도 섬세했고 아름다웠다.

“재주 좋다. 딱히 어렵지 않으면서 곡이 좋네.”

이 말 끝에 주현은 생각했다.

‘꼭 너처럼’

기타 줄에 집중하고 있던 재영이 눈을 들어 잠깐 주현을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 눈이 마주쳤으나 이번엔 주현이 눈을 피했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주현은 문득 재영이에 대해 궁금해졌다. 옷차림은 궁색하지는 않으나 딱히 부유한 흔적도 없다. 보세옷을 깔끔하게 빨아 입은 느낌이다. 옷은 늘 그만그만한 검정 후드티, 아니면 회색 후드티. 조금 덥수룩한 곱슬머리가 성우의 깔끔함과 대비된다고 할까.

‘키는 성우보다 조금 작은 듯, 어쩌면 자세 때문일 수도 있고.’

주현은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타 반주가 잘 녹음되었는지 재생해 본 후 주현이 일어서자 재영도 따라 일어서면서 말했다.

“급한 건 없어. 천천히 해. 떠오르는 대로.”

“응”     

며칠간 주현은 재영이에게 자주 말을 건넸다. 주현이는 세 편의 노랫말을 지었고 곡이랑 잘 어울리는지 맞춰보느라 재영이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도 불렀다. 세 번째 가사를 넘겼을 때 재영이가 말했다.

“이거 좋아.”

가사를 부탁했던 날 말고는 언제나 주현이 먼저 말을 건넸다.  

‘내 전화번호도 모르겠지?’

이런 생각이 드니 주현이 입장에서는 재영이가 곁을 안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차가운 남자가 잘해주면 유독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따뜻한 남자가 섭섭하게 대하면 더 냉정하게 느껴지는데 그게 재영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곡이 모두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더는 말을 건넬 일이 없겠다는 생각에 주현이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고마워. 설마 작사비를 줘야 하는 건 아니지? 저작권은 너한테 있으니까 만약 나중에 이걸로 돈 벌게 되면 저작료 받아. 그럴 일이 있겠냐만.”

“그동안 한 말 중 제일 기네.”

재영이 피식 웃고 나서 부끄러운 듯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문을 나서서 나란히 학교 담장을 따라 걸었다. 찔레꽃 향기가 훅 들어왔다. 주현은 순간 설렌다. 향기 때문인가?

“아무리 그래도 밥 한 번은 사야 하는 거 아니니? 이 염치없는 님아?”

앞서가던 재영이가 돌아보더니 주현에게 바짝 다가왔다.

“그럼 내일 저녁 6시 반에 이리로 올래?”

준비된 대본을 읽듯이 재영이가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여준다.

‘라이브 카페?’     


‘이런 데가 있었구나.’

6시가 좀 지나 재영이가 알려준 카페에 도착한 주현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카페는 바닥이 마루 재질로 되어 있어서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늑했다. 카페 앞자리는 소규모 공연도 하는지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의 라이브입니다. 오늘 라이브를 신청해 주신 분은 김지주, 류기원, 한스완, 그리고 신재영 씨입니다. 자신의 순서가 되면 자연스럽게 나와서 하시면 됩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카페에 계신 분들 조금 목소리를 낮추어 대화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페 사장인 듯한 사람의 인사말이 끝나자 출연자들은 익숙한 듯, 어색한 듯 노래를 했다. 드디어 재영이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오늘 저는 자작곡을 들고 나왔는데요. 곡은 제가 쓰고 노랫말은 어느 여학생이 써줬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학생이요.”

사람들이 가볍게 탄성을 지르며 웃는다.

노을이 지고 재영이가 노래를 한다.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평범한 음률로 너무 진하지도 너무 흐리지도 않은 가사들이 가슴에 스며든다. 배경에 구름과 노을이 아름답다.

‘내 가사가 저런 느낌이었나. 슬픈데?’    

 

잠시 딴생각을 했던지 어느 사이에 재영이가 앞에 와서 앉았다.

“뭐야, 네가 좋아하는 여학생이야? 내가?”

주현이 웃지 않고 말했다.

“응. 이거 먹을래?”

재영은 응, 이라는 의미를 희석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메뉴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현도 재영이 가리킨 메뉴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이었다.  

“그럼 아까 그 멘트는 고백인 건가? 사귀기라도 할 거야?”

이렇게 질문하고 주현은 이런 답을 예상했다. ‘그건 너한테 달렸지.’ 하지만 대답은 이랬다.

“아니.”

재영은 이렇게 말하고서 서빙하는 직원에게 메뉴를 주문했다. 직원이 조금 멀어졌을 때 주현이 웃으면서 말했다. 속으로 재영에게도 이렇게 눙치는 면이 있는가, 생각하면서.

“뭐가 아니라는 거야? 고백이 아닌 거야, 사귀는 게 아닌 거야?”

그러자 재영이 가볍게 한숨을 쉰 다음 주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둘 다 아니야. 나는 너한테 고백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사귀는 것도 아니야.”

재영은 이어 말했다.

“아까 내가 한 말은 혼잣말이야. 나라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하지만 너한테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야.”

그 순간 주현은 깨달았다. 처음 성우에게 말했던 ‘천박하지 않은 아이’의 사례인 재영이, 품성이 괜찮아 보이는 재영이...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음을. 방과 후에 학교를 나서서 골목길을 같이 걸을 때 이미 주현은 그것을 느꼈던 것 같다. 높은 축대 위로 하얀 찔레꽃이 피어있었고 주현이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향기가 진할 텐데.”

주현이가 말하는 순간 재영이 뛰어올랐다. 재영의 손에는 하얀 꽃이 들려있었다. 향기가 진해서인지 호흡이 그윽하게 차올랐다. 주현은 재영이 건넨 꽃의 향기를 맡다가 깜짝 놀랐다.

“피 나!”

꽃을 꺾다가 재영이의 손가락이 가시에 찔린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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