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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구두를 신은
Jul 19. 2024
[소설] 담장 위 하얀 찔레꽃 7화
7화 이원목적분류표
그 후 재영이와 주현이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현이 곁에는 늘 성우가 있었다.
“자, 공주님, 가실까요?”
종례를 마치자 성우가 주현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주현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성우가 싹싹 비는 시늉을 한다. 성우는 주현이의 그 표정을 좋아했다. 사실 주현이는 예뻐서 웃기까지 하면 너무 화려하다. 차라리 새침한 게 더 매력적이다.
“성우야. 나 할 말 있어.”
“응?”
“우리 관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데. 나, 너랑 사귀는 거 아니야.”
“아 왜 또 선 긋고 난리지? 그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어?”
성우와 달리 주현은 농담을 모르는 아이니까 괜히 하는 말은 아닐 거라 성우는 생각했다.
돌아온 대답은 담백했다.
“응.”
“응?”
“응.”
“누구?”
“……”
성우는 저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얹었다.
‘뭐야 내 심장이 왜 이래?’
“정말 누가 있는 거야?”
주현이의 코끝이 빨갛다. 성우는 그간 자신이 주현에게 했던 고백들이 말하자면 소꿉놀이 같은 거였음을 깨달았다. 방금 가슴에서 느껴진 충격이야말로 진지한 감정의 시작이었다.
“누가 있긴 한데, 걔가 좀 이상해.”
“너를 안 좋아한대?”
“아니, 좋아한다는데 그게 고백이 아니고 사귀는 것도 안 된대.”
주현은 그런 헛소리를 한 사람이 성우라도 된 것처럼 화난 표정이 되어서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뭔 헛소리지?”
“몰라. 잊어. 나도 잊을 거야. 그래도 너는 아니니까 너도 나 잊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주현.
“좀 걷자.”
성우의 제안에 주현이도 답답한지 따라 걸었다. 둘은 같은 생각을 하되 대상이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다. 성우는 주현이를 주현이는 재영이를. 서로 선을 그어놓고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게임. 찻길을 벗어나 내리막길을 걸으니 연못에 수련이 한창 피어 있었다.
“진지하게 말할게. 걔 성적이 몇 등급인지 알아?”
“한.... 4등급 5등급?”
“그렇지? 너랑 나는 평균 등급이 1.2야. 더 잘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대학 가면 다 찢어질 걸 왜 만나냐? 괜히 네 마음만 복잡해지는 거야. 사람 그렇게 쉽게 사귀는 거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성우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음을 느꼈다. 평소에도 다습한 성우의 손이지만 거짓을 말할 때는 더 손이 축축해진다.
“그럴 수도 있지.”
주현은 수련처럼 청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름다운 것을 보는 사람도 아름다워지는가? 순간 성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첫 번째 감정인데 그렇게 점수 따라 매칭하듯 하고 싶지는 않아.”
그러고서 주현은 성우를 돌아보았다.
“너도 내가 너랑 같은 평균등급 1.2여서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말만 그렇게 하는 거지.”
졌다. 조금 전 성우는 자신이 얼마나 애틋한 마음으로 주현이를 좋아하기 시작했는지 느꼈다. 성적이나 대학 때문이 아니라. 그래서 손에서 그토록 식은땀이 흘렀던 것이다.
“대박 대박 대박 사건!”
수화가 교실로 들어오면서 소리치자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수학 시험 민원 들어왔대!”
“내 그럴 줄 알았다. 문제를 좀 어렵게 냈냐?”
“어렵게 낸다고 민원감이냐?”
“왜 아니야? 당연히 학생 수준에 맞게 내야지. 그런 거 있잖아. 정상분포곡선 뭐 이런 거”
아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 것을 중간에서 자르고 수화가 방금 전에 본교무실에 들어갔다가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 정도가 아니야. 민원을 넣은 학부모님이 수학 재시험을 요구한대.”
“문제에 오류가 없는데 재시험이 가능하냐?”
아이들은 재시험이라는 말에 격한 관심을 보였다. 망쳐버린 수학 시험을 뒤집을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재시험은 오류 문항보다 문제를 쉽게 낸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이원목적분류표 어쩌고 성취평가기준 어쩌고 교육과정, 선행학습 금지 어쩌고 하면서 이번 시험에서 여덟 문제가 재시험 대상이라고 하던데?”
“여덟 문제?”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