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 담장 위 하얀 찔레꽃 8화

by 향기로울형

8화. 이원목적분류표

“대박 대박 대박 사건!”

수화가 교실로 들어오면서 소리치자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수학 시험 민원 들어왔대!”

“내 그럴 줄 알았다. 문제를 좀 어렵게 냈냐?”

“어렵게 낸다고 민원감이냐?”

“왜 아니야? 당연히 학생 수준에 맞게 내야지. 그런 거 있잖아. 정상분포곡선 뭐 이런 거”

아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 것을 중간에서 자르고 수화가 방금 전에 본교무실에 들어갔다가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 정도가 아니야. 민원을 넣은 학부모님이 수학 재시험을 요구했대.”

“문제에 오류가 없는데 재시험이 가능하냐?”

아이들은 재시험이라는 말에 격한 관심을 보였다. 망쳐버린 수학 시험을 뒤집을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재시험은 오류 문항보다 문제를 쉽게 낸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이원목적분류표 어쩌고 성취평가기준 어쩌고 교육과정, 선행학습 금지 어쩌고 하면서 이번 시험에서 여덟 문제가 재시험 대상이라고 하던데?”

“여덟 문제?”


“엄마! 엄마가 학교에 수학 시험 민원 넣었어?”

성우가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던져놓고 거칠게 걸어오며 말했다. 미연은 성우의 책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응. 너는 모른 척하고 있어. 아이들도 누가 민원 넣었는지 모르니까 신경 꺼.”

“교육과정에 안 맞다고 재시험이 가당키나 해?”

“관례적으로 허용되던 것도 법적으로 따지고 들면 문제가 되는 거 많아. 이번에 컨설팅해주신 분이 누군지 알아? 고등학교 수학 교육과정 수립한 데 참여했던 교수님이야. 그 교수님이 의견서를 줬는데 안 될 것 같아? 이번뿐만 아니라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문제 내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줘야 해.”

“엄마!”

성우는 숨도 쉬지 않고 밀리지 않는 태도로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숨이 콱 막혔다. 엄마는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 명랑하고 사회성이 돋보이는 고상한 모습, 그리고 갈등 상황이 되면 절대 지지 않는 무서운 모습.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거야. 엄마가 맨날 말했잖아. 선생님들한테 잘못 보이면 안 된다고. 나 선생님들 얼굴 어떻게 보냐고. 아이들 사이에도 벌써 소문이 쫙 퍼졌는데 민원 누가 넣었는지 아이들이 아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지금이라도 전화해. 민원 철회 한다고.”

성우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담임선생님 전화번호를 검색하면서 말했다. 그러자 엄마가 성우의 휴대폰을 비틀 듯 빼앗았다.

“야! 그럼 시험을 잘 보든가! 나라고 이러고 싶겠어? 이거 컨설팅받는다고 내가 돈을 얼마나 썼는지 알아? 너 한 마디만 더 하면 엄마 화낼 거야. 너 기흉으로 병원 가 있는 동안 네 간병도 못하고 엄마가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엄마는 눈이 벌겋게 되어 휴지로 코를 푼 다음 방문을 쿵 닫고 갔다.

“엄마가 싸워야 할 대상이 얼마나 많은데, 아들하고도 싸워야겠어? 내가 누구 좋으라고 이러는 건데?”

성우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성우는 안방으로 들어가는 엄마를 따라가면서 말했다.

“제발 엄마! 엄마, 나 병원에 있을 때 담임 선생님이 뭐라 그랬는지 알아? 진인사대천명이래. 과정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지만 결과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래.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경험을 통해서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면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고. 물론 선생님이 나 달래려고 하는 말인 거 알아.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 옳다고 봐. 문제에 오류가 없는데 이렇게 억지로 해서 재시험 보고 그렇게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고 싶지 않아. 제발 내 말 좀 들어줘.”

엄마는 성우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이미 늦었어. 엄마는 한번 시작하면 지는 법이 없어.”

“아아아!”

성우가 소리를 지르며 방문을 쾅 하고 닫았다. 대문 밖으로 나가는데 주황색 탐스러운 장미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치 모양의 철제를 타고 올라가던 장미 넝쿨이 문득 성우의 머리카락을 찔렀다.

“아!”

유럽에서 들여왔다는 주황색, 노란색 장미는 꽃송이가 어른 손바닥만하게 커다랬는데 그것을 지키는 가시도 위협적이었다. 머리카락에 걸린 가지를 손으로 휘두르자 장미 한 송이가 뎅강 떨어졌다. 가시에 찔린 성우의 손에서는 피…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keyword
이전 06화[소설] 담장 위 하얀 찔레꽃 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