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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계절걷기 01화

계절 걷기

봄의 영향력

by 이애리

이 싫다. 아이들 방학이 끝나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해방을 알리며 카카오톡 프로필이 바뀐 사진에는 노란 산수유 사진이 많이 올라온다. 아직 동장군 끄트머리에 엎드려있는 나는 겨우내 한껏 준비한 매화 꽃봉오리도 놓치고, 어쩌다 켠 인스타에 책방과 북큐레이터들의 독서 피드를 보며 젊은 날 읽지 않은 내가 한심해지고, 중국 라마라도 볼까 싶어 드라마를 시청한 리뷰 블로그를 보다 보면 그동안 수많은 중드를 보며 시청자에 불과한 나를 탓하게 되고, 브런치 스토리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을 보며 나는 어디 언저리인가, 아이들 학교 총회에 가더라도 저 엄마, 저 아이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책한다.

물론 나 역시 3월이 시작되면서 놓칠세라 신청한 이미나 작가님의 드로잉 수업에서 그림을 그려오는 숙제를 하지 않은 나는 작가님의 누런 얼굴에 대고 무기력한 3월에 대해 성토했다.

겨우내 잠들었던 튤립 구근에서는 어찌하여 그토록 뾰족한 이파리를 희끄무레한 땅 위로 밀어내는지. 자줏빛 원추리 줄기가 딱딱한 땅을 뚫고 무더기로 솟아나는지. 모과나무 미끈한 옹두리에서 틈을 비집고 연둣빛 싹은 터져 나오는지. 눈을 찌를 듯 삼지창 같은 갈매나무 겨울눈에 몸서리를 치며 3월의 엄중한 질서 앞에 나는 해마다 속절없이 스러진다.

2월, 3월을 제일 싫어한다는 작가님 말에 불현듯 정신을 차리며 다음에는 꼭 숙제를 해오겠다고 부러 큰 소리 내본다.

초봄이면 나는 살이 찌는 것과 별개로 입맛을 잃고 말랑해진 정신으로 시선은 둘 데를 몰라 곧잘 방황하고 밥을 다 먹어가는 끝에는 수마가 덮쳐와 눈꺼풀이 덮인다.

읽을 책과 읽지 못한 카카오톡, 체크해야 할 주간 계획, 월간 계획, 연간 계획이 쌓이다 밤을 넘기며 잊어버리기 일쑤다. 이 틈 속에서 어떻게든 눈을 떠보려고 패드로 중드를 틀어보지만 시작과 함께 잠이 들어 허연 거실등이 켜진 채 일출을 맞이한다.


주말마다 시름시름 봄을 앓는 나를 끌어내는 것은 아이들이다. 한 번 집에 들어오면 소파 위로 직행해 잠이 드는 나를 아이들은 학원 보강을 핑계로 데려다 달라고 하거나, 출장 간 아빠를 대신해 간식을 같이 만들자고 하거나, 빛보다 빠른 자로 닌텐도에서 빨리 죽는 역할로 활약하기를 바란다. 나는 단연 모든 일을 억지로 해내고 있다.

어제는 안샘 수업이 끝나고 첫째 정이를 수학 학원에 데려다준 사이에 화서 시장에서 장을 보느라 잠시 걸었다. 거미줄 같은 허연 털이 덥수룩한 쑥과 자줏빛 아랫줄기가 통통한 돌미나리를, 아이들 먹을 샛노란 천혜향을 샀다. 두 손 가득 장을 보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랗게 물든 남의 집 담벼락에 문득 걸음이 멈춘다. 분명 갈 때는 보이지도 않던 노란색이 돌아올 때에서야 눈에 들어오고, 조화인가 싶어 가까이 가서 보다가 흐드러지게 핀 영춘화를 대충 묶은 멋스러운 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봄기운에 녹는 듯한 기력으로 되는대로 돌아다던 수고가 다섯 꽃잎이 담장에 수놓은 노란 별빛 무리를 보자 발부터 정수리까지 물올림이 되는 듯 노곤해진다.


봄빛에 한껏 일으킨 마음으로 아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월 저수지로 향한다. 지난겨울 깡깡 언 저수지에 고개를 수그리고 잠이 든 수십 마리 큰고니들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풀린 날씨에 해 질 녘 저수지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우리는 물가 벤치에 앉아 뿔논 병아리 한 쌍이 둥지를 짓는 모습을 바라본다. 곧 암컷은 포란을 하고, 알은 부화해, 한 달이 지나면 부부는 등에 어린 유조들을 업고 육추를 시작하겠지. 우리는 누런 부들 사이에 한껏 흰빛을 뽐내는 중대백로와 물풀을 물고 서호천 끝 축만제를 향해 비상하는 매끈한 흑빛 민물가마우지를 눈으로 좇는다.

나는 정이가 쓰레기라고 말하는 폐허 같은 덤불을 가리키며 낮고 작은 새들이 둥지를 틀기도 하고 천적을 피해 숨어있기도 하는, 보이지 않게 끊임없이 생동하는 숲이라고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불현듯 나는 저 덤불 깊은 곳 어느 즈음에 숨어 잔뜩 웅크린 게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덤불 안이 따스하다고 느낀다. 이내 깨어나기만 하면 생기가 돌고 우리 아이들도 알아차릴 만큼 순식간에 연둣빛 점은 번져 녹음이 작되겠지. 지금 여기서 보이지 않을 뿐.

저수지 끝에서 소쿠리마다 담겨 파는 햇감자를 한 봉지 사서 돌아오는 길, 밤이 감자를 쪄서 설탕에 찍어 먹고, 강판에 갈아 감자전 부치고,

깍둑깍둑썰기해 감잣국도 먹고, 자글자글 기름에 감자튀김도 해 먹자며 재잘재잘 댄다.


어젯밤에는 분명히 봄을 즐기겠노라고 그랬는데, 오늘 나는 오롯이 휴일을 방콕 하며 지내겠다는 각오로 소파에서 계속 봄잠을 즐긴다. 그러나 밤이는 그럴 생각이 없다. 갖고 싶은 아이브 카드를 사주겠다고 한 말을 기억하고 주말 내내 나를 들볶더니, 결국 일요일 밤 8시에 나를 데리고 스타필드로 향한다. 무기력한 내 몸은 아이들 두 손에 끌려 나간다.

다 물러가지 못한 미세먼지가 머무는 대기에 가볍고 달큼한 기가 스하게 돈다. 바지 주머니 속에 양손을 찌른 채 아이들 뒤에서 터덜터덜 냉소적으로 걷고 있던 나는, 어두운 사위에 우렁차게 흐르는 검은 물소리를 들으며 걸음이 조금씩 빨라진다. 정이가 언뜻 원앙을 본 것 같단다. 나는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가 듣기 좋다고 생각하며 계단을 오른다. 두 아이에 팔짱을 끼고 붉은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서서 건물들에 가리어진 스타필드가 목전에 있음에 안도한다.

5층 영풍문고에 가려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데 만약에 신발 끈이 기계에 끼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아느냐고 첫째가 묻는다. 나는 늘 그런 순간이 오지 못하게 아이들을 단속하며 살아만 왔지, 어떻게 해야는 지는 당연히 모른다. 신발을 벗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알겠다. 딸은 신발을 벗고 얼른 올라가 왼쪽에 정지 버튼을 누르고 관계자를 부르면 된다고 한다.

인생에 무수한 질문 앞에 탁상공론만 일삼았던 나는 막상 뻔한 정답 앞에 답답했던 속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일어나면 안 된다는 일에 상상하는 것조차 피했던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미리 겁에 질려 예방만 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지 못한 틈에 일상은 계속 비집고 들어 나를 환기시키고 끊임없이 구하며 돌보는구나 어렴풋이 알아챈다. 내가 서있는 앞 뒤로 자리한 아이들 곁에서 마음 한 구석이 말랑말랑하게 퍼진다.


이제 피기 시작하는 무수한 꽃들 앞에서 하나 둘 못 본다고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다. 봄에 매화가 지나가면, 름에는 매실이 익어간다. 가을이 되면 올해 매실액이 잘 되길 바라며 매실 통을 뒤집어주고, 나무에 달린 매실 씨를 보며 겨울을 견딘다. 제때에 다 보려는 마음마저 욕심이다. 마음이 비워지면, 하나 둘 버리는 마음을 조금씩 들여야겠다.

은총 같은 산수유 꽃은 이른 봄에 피어 늦은 봄까지 노란색이 희끄무레해질 때까지 한참 간다. 아직 지난해 열매도 떨어뜨리지 않은 배롱나무는 진분홍 백일홍이 한여름에 피고 지어 가을까지 이어진다. 진분홍에 지질린 기운은 단풍나무로 이어진다. 동백은 어떻고. 겨울에 보는 동백이 있고, 봄에 피는 동백도 있다. 꽃놀이는 이제 시작인 것을 늦었다고 부러 나를 탓하지 말고, 자분자분 한 걸음씩 내디뎌야겠다.

핑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금세 뾰로통해진 자매와 주황빛 불 켜진 음식점들이 즐비한 소로를 걷는다. 겨우내 까치밥이 되어준 알감이 달려있던 감나무 심어진 담장 앞에서 켠에 심어진 목련 나무에 기웃댄다. 겨울눈을 벗기며 드러난 자줏빛이 하늘로 솟을 듯 탐스운 꽃봉오리에 감탄하며 속꽃잎은 하양일지, 연한 자주색일지 상상한다. 터질 테면 터져라, 봄! 금하여 지른다.

커피숍 앞에서 라떼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본다.

봄봄봄봄봄 봄봄이 왔어요. 커피숍 안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봄 기세에 눌리고 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바람이 분다. 귀밑 머리가 볼을 간지럽힌다. 전신을 휘감는 달큼한 꽃내에 끌려 수그린 고개를 들고 송아리송아리 뭉게뭉게 핀 매화나무 아래에 선다.

바람이 분다. 눈 날리듯 꽃잎이 날리는 매화나무 아래서 시커멓게 쪼그라든 매실 씨를 바라보며 지난여름 영롱하게 반짝였을 푸른빛 열매를 추억한다.

우듬지에 앉은 방울새 수컷이 울어대며 암컷을 부른다. 끊임없는 구애에 한 마디로 화답하는 암컷에게로 기다린 듯 반갑게 날아가는 수컷을 보며 나도 이제야 3월에 화답한다.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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