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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계절걷기 04화

계절 걷기

열매가 자란다.

by 이애리

인간의 한 생은 ‘생’ 일 수밖에 없다. 익지 않거나 익히지 않은, 엉뚱하고 공연한, 본디 그대로의, 지독하거나 혹독한 것일 수밖에 없는.

-<<한 글자 사전>> 김소연, 223쪽


대추나무에 꽃이 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을에 붉어지는 대추는 이제야 꽃이 핀다. 감나무 아래에 감똑이 떨어져 수북이 쌓인다. 돌숲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왼손으로 바지 호주머니에 조심스레 넣는다. 할머니의 굽은 손가락을 닮은 맨들하고 마른 포도나무 가지에 핀 꽃이 큼직한 수국 이파리 위로 떨어져 별이 된다. 별은 하늘 가득 연둣빛 단단한 송알송알 포도알이 되었다. 알면서도 설익은 포도 한 알을 따서 입안에 넣는다. 교복을 입은 채 포도나무 아래 평상에 벌러덩 누워 한 알씩 따먹은 포도맛이다. 한동안 떠나 살다 다시 할머니댁으로 돌아왔을 때 여름이 무료해 견딜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포도나무 잎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야속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초록 대문을 덮은 노란 장미 넝쿨 너머 골목길 한편에 심어진 대추나무 작은 잎이 무수히 반짝이며 박수를 치던 한여름이 지금, 입안에 들어찼다. 그때 나는 이 신 포도알을 닮았다. 내 앞에 좌악 펼쳐진 시절을 어찌할 바를 몰라 두 눈가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즈음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가. 살고 싶어 막막했고 살고 싶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가.

장에 간 할머니가 돌아와 수도에서 물을 길어 마당에 좌악 뿌렸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오른쪽 두 번째 굽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쓸어주면 다 괜찮아질 텐데.

2년째 아이들은 남편이 직구해서 50권을 잘못 산 검은색 캠퍼스 노트에 매일 일기를 쓴다. 365일 중에 360일만 써도 생물 빼고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 작년에는 한 줄을 쓰고 올해는 한 바닥을 쓴다. 어떤 내용을 쓰든 나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에 불시검문은 항상 필요하기에 반년쯤 되었으니 한 번 보겠다고 일기장을 들고 오라고 했다. 아이들은 일기장을 들고 오는데 왜 한 시간이나 걸리는 것이냐. 괴발개발 날려 한 바닥을 어찌 되었든 채운 것은 좋은데, 비밀이 많은 둘째가 유난히 일기장에 예민하다. 잠깐 둘째가 없는 사이에 노트를 빠르게 훑는다. 일기에 표정이 있다면, 그녀의 일기장은 다 화가 나 있다. 학교도 노잼 학원도 노잼 인생도 노잼이라는 문장을 보고 노래 라임인가 싶었다. 아, 요즘 노래 가사가 엉망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 아래 이어진 생경한 문장에 시선이 박힌다.

죽고 싶다. 노트를 다급히 앞으로 넘기며 한 달 전 상황을 되짚기 위해 머릿속에 한 달 전 상황을 빠르게 그려본다. 무척 바빴던 나날이었으리라. 두 번 더 죽고 싶다는 글이 있었다. 앞 뒤로 상황 없이 심정만 담은 일기라 어떤 일인지 전혀 추측할 수가 없다. 아이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일기를 돌려주는데 마음이 요동친다. 평소에 말이 엄청 많지만 결정적 일 때 말을 않는 둘째가 언제나 신경이 쓰였다. 아이의 표현에 따르면 나는 착하다. 늘 자신에게 노는 게 우선이라고 말하는 엄마는 착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기장 속에 엄마는 늘 자신을 혼내고 언니를 편애한다고 되어있다. 일기장 속 밤이는 내게 늘 화가 나 있었다. 밤이는 지쳐 보였다. 이 많은 것을 품고 너는 그동안 대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냐.

조심스레 물었다. 아이는 기억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즘 거짓말이 능숙한 둘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감이 없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나는 원망과 자책을 쏟아냈다. 밤새 남편과 나는 길게 쳐진 서로의 눈꼬리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수다스러운 밤이가 결정적으로 자신의 감정 표현을 않는게 걱정되니 전문기관에 상담을 받자고 뜻을 모았다. 어느 부분에서 어긋난 것일까. 우리는 잘 맞춰갈 수 있을까. 여전히 불안한 채로.

어느 날 밤, 우리는 수학 학원에 다녀오는 첫째를 마중 나간다. 남편이 아이 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준다. 이런 남편을 볼 때면, 아이들이 잘 크고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쪼그라진 마음 한편이 조금 펴졌다. 오랜만에 넷이 된 우리는 교회의 포도나무 아래에 선다. 낮에 보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다 보면, 지금 이 작고 신 포도알을 놓칠 것 같아서 우리 가족 다 모이는 밤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엄마는 매일 아침 포도나무에 싹이 나는 순간부터 포도꽃이 낮별이 되는 때에도 꽃이 떨어져 이 열매가 송아리송아리 맺는 순간까지 다 지켜보면서 너희를 생각했다고 말해주었다. 너무 늦으면 못 보여줄 것 같아서, 같이 이 아래 서고 싶었다고. 어쩔 수 없이 포도꽃은 내년에 함께 보자고 씩씩하게 말했다. 포도나무 옆에 둘째를 닮은 둥글고 큰 보라 수국 한 숭어리 피어나고 있다.

벌써 3주 전, 일본에서 아침마다 보았던 푸른 수국이 떠올랐다. 요즘 남편과 아이 둘은 일본에 다시 가고 싶은 향수병에 걸렸다. 나는 다음 일본 여행은 내가 계획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제일 심하게 흔드는 남편은 밤이를 아기띠 하고 반야사 둘레길을 걸으면서 여기도 못 걸으면 세상 어떻게 살 거냐고 말하던 니 엄마가 뭔가 계획하면, 뭐든 고난의 행군이라고 말한다. 그 아기띠 속에 밤이는 괌에서도 엄마는 다른 가족은 다 수영하는데, 뙤약볕에 트레킹 프로그램을 신청한 유일한 한국 사람이었다고,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빨아먹으며 성토한다. 우리가 다 알아서 할게, 한 마디씩 다 거든다.

그래, 일본 수국이나 수원 수국이나 거기도 피고 여기도 피는 거, 어차피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지. 나는 한 여름 뙤약볕에 땀 흘리며 화서문 장안문 화홍문 창룡문 팔달문 수원화성 성곽길이나 또 한 번 걷자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제일 비실비실한 한 알만 달린 모과나무를 지나, 이제 꽃이 피기 시작하는 대추나무와 이제 이파리를 달고 나오는 대추나무도 지난다. 나무마다 다, 때가 다르구나. 같은 나무도 이렇게 다 다른데 말야. 홍홍 흔들리는 홍단풍나무 씨앗을 보며 너희랑 보고 싶었다고 말하자, 자기들은 학원 갈 때 이미 실컷 봤단다. 나보다 낫군. 어쩌면 내가 염려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놀이터를 지나 버찌 연못 다리를 지나는데, 둘째가 말한다. 엄마! 청개구리가 울어.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있던 나는 아이가 말하기 전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개굴개굴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큰 아이도 거든다. 우리 집에서도 들리잖아. 몰랐어?

엄마는 귀가 먹었잖아. 요샌 새소리도 잘 안 들려. 둘째의 어깨에는 손을 올리고 첫째의 팔짱을 끼고 남편을 뒤따라 걷는다. 정말, 개굴개굴 개굴 소리가 온 밤에 우리를 에워싼다.


장마다. 장마철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더 걷는다. 오늘 아침 우산을 쓰고 초록 트랙 위에 선다. 우산을 들고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으며 실내화를 손에 들고 뛰어가는 중학생을 지나쳐간다. 손 하나가 더 필요해 보이는데, 양손으로 되겠나 싶은 게 내가 아는 아이인가 싶어 다시 뒤를 돌아 쳐다보며 긴가민가한다. 비가 오는데 오래된 바닥 공사를 시작했는 모양이다. 나무뿌리가 올라와 울퉁불퉁한 보도블록과 부서지고 뽑힌 보도블록은 다 파헤쳐져 깊은 구덩이를 내었다. 파쇄석과 흙으로 기초작업을 다진 후 벽돌을 다시 까는가 보다.

향긋한 풀 냄새가 코로 새어 들어와 고개를 드니, 장마 전에 벌초한 뒤로 또 한가득 화단을 채운 풀이 서슴없이 잘려 나가고 있었다. 이제 꽃이 피기 시작하는 어느 과일나무에는 크고 작은 처음 보는 벌들이 파고든다. 나는 조심하며 가까이 다가가는데, 숨어있던 박새 열쭝이 한 마리가 다른 나무로 푸드덕 날아간다. 파닥이는 날갯짓 소리에 괜스레 마음이 부푼다.

항상 유모차를 밀며 느릿느릿 걸으시던 3층 할머니를 만난다. 어쩐 일인지 유모차 대신 백팩을 메고 숨을 가쁘게 몰아 내쉬며 엘리베이터 앞에 서 계신다. 괜찮냐고 물으니 오늘은 멀리 다녀왔다며 백팩 뒤에 손수건을 꺼내어 달란다. 얼굴과 목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시면서 힘들어도 움직여야지, 안 그러면 자식한테 폐가 될까 봐.

늦은 밤, 퇴근을 한다. 비가 멈추어 선선한 밤에 달이 떴다. 홀린 듯 달을 따라 트랙을 걷는데 문득 얼른 집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지름길인 연못 다리 위로 올라선다. 달빛이 버찌 연못에 길을 내었다. 노인향 작가는 ‘달길’이라는 단어를 지었는데, 사전에 없는 단어란다. 지금 내게도 ‘달길’을 낸다는 표현 말고는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달길에 낮에 지나다 본 올챙이들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데, 청개구리가 합창을 한다. 나도 그 속에 끼어 두 손을 오롯이 모으고 여름달에 개굴개굴 빌고 싶은 밤이다.

요즘 사람들과 오고 가는 일이 많아 생일인데도 약속을 잡지 않고, 두문불출하자 친구가 보자고 한다. 둘 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우리는 밥을 먹으며 사람들 욕을 한바탕 했다. 일도 볼 겸, 차도 마실 겸 우리는 마음이음 책방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운전을 하며 무심결에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다. 정지 신호 앞에 정차하는 순간에, 와락 눈물이 터졌다. 요새 아이들은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그 말을 듣지는 못했다. 대신에 친구는 집 근처에 있는 아동심리센터를 소개해 주었고, 나는 눈물을 뚝 그쳤다.

장맛비에 젖은 솜마냥 묵직한 몸을 일으켜 아침마다 트랙 위에 서고 출근을 하고 계단을 오르며 퇴근을 한다. 내가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친구가 내게 말했다. 불현듯 나는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던 어느 지점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남들처럼 ‘일반적으로’ 살아서는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누구나 고군분투하지만 무리하지 않고는, 그냥 살아갈 수 없는 생이었다. 점프하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는 변곡점을 번번이 꺼이꺼이 넘어왔다. 어느 순간에는 직관에 따라 냉정하게, 어느 때에는 납득할 수 없는 인정으로 지지부진하게 이어오기도 하면서 삶을 조금씩 비틀며 살았다.

이 세상에서 제일 착한 s는 매일매일 울며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 특별한 상황에는 특별한 방법으로 대처한다는 *바톨로티 부인의 말처럼, 나도 주어진 일상을 다시 조금씩 비틀며, 지금을 묵묵히 흘려보내는 중이다.

소파에 앉으니, 둘째가 내 다리를 베고 눕는다. 선풍기 바람이 불어와 딸의 앞머리를 넘긴다. 사이에 드러난 이마에는 오돌토돌 여드름이 송송 여물었다. 나는 <<사이먼 가라사대, 우리는 모두 별이다>>라는 책을 덮고 왼손은 아이의 가슴에 올린 채, 오른손으로 아이의 앞머리를 뒤로 가만히 쓸어 넘긴다. 아이는 나는 할머니는, 스스로 알 수 없는 생의 고단함을 침묵 속에서 마주했던 것은 아닐까. 멀리 세숫대야에 담긴 세숫물을 마당에 촤악- 뿌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음을 먹지만 마음은 옅어지고 자꾸만 마음이 잊혀, 슬프다. 자꾸 수그러지는 고개에 빛이 들어차 눈이 부시다. 금세 새로 깔린 보도블록 위로 흩뿌려진 하얀 모래가 눈 속에 들어와 박힌 양, 시리고 아프다. 비 내린 후 하얀 가루는 보도블록 틈마다 메꿔져 가을 즈음이면 더 단단한 길이 되겠지. 소매로 쓱쓱 눈물을 훔치다 바닥에 떨어진 어린 칠엽수 열매를 줍는다. 앉은 김에,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는 노란 채송화를 한참 바라보다 연필심 가루같이 반짝이는 채송화 씨를 채종 한다. 열매를 두 손 가득 받아 들고, 새 길 위에 하얀 모래를 포도알을 씹어 먹는 것처럼 오도독오도독 소리 내어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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