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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계절걷기 06화

계절 걷기

아줌마와 동거인

by 이애리

먹장구름이 곁에서 내내 쫓아다니더니 결국 비가 내린다. 우산 없이 아침 걷기를 하던 나는 가방 속에 든 노트북이 젖을까 봐 비를 피해 땅이 젖지 않은 때죽나무 아래에 선다. 얼마 전 j의 아빠가 야산에 올랐다가 나처럼 비를 피해 나무 아래 섰는데 급작스런 비로 온갖 곤충까지 함께 피했던지, 숨어있던 말벌이 아빠의 정수리를 몇 방 쏘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이리저리 나무를 살핀다. 우산대처럼 펼쳐진 가지가지마다 쪼로록 달린 미색의 종들이 나를 축복해 주듯 감싸준다. 그 아래 서서 하얗게 벌린 꽃이파리 다섯 장, 닭발처럼 오므린 노란 수술 열 개, 그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온 하얀 암술 한 개 중얼거리며 꽃을 요모조모 뜯어본다.

헛!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들며 큰 바위 얼굴에 핀 백화등을 떠올린다. 큰 바위 얼굴을 비집고 나온 가지와 꽃은, 백화등이 아니었다. 제일 어리고 똑똑한 j가 알려준 건데, 나도 네이버로 검색을 하고 2년을 백화등이라고 확신했는데. 때죽나무 아래에서야 백화등은 때죽나무였음을 불현듯 알아차린다. 나는 이 나무를 소재로 글을 썼고, 온 동네 사람들에게 소문을 낸 데다가, 지난주 밤에는 또 어땠고.

오랜만에 중학생 자녀와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 s와 ss를 어린이날 겸, 어버이날 겸, 겸사겸사가 되어야 만날 수 있었다. 첫째와 둘째를 감시하느라 소파에 누워 책을 보다가 졸던 나는 나오라는 전화에 다른 날 보자고 눈을 감았다가 요새 죽고 싶다고 말한 s가 떠올라 육중한 몸을 다시 일으켰다. 지난해에는 봄꽃을 보러 아침나절에 행궁동에 같이 다녀왔는데, 올해는 밤에만 만나게 된다. 그러면 맨날 술이야, 술도 불러야 한다. 잠을 자고 나와서인지 술이 잘 들어간다. 우리는 술김에 아이들 흉을 본다. 나는 원래 술에 취한 듯 늘 우리 아이들 흉을 보지만, 세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s는 술이 들어가야 아이들과 그녀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낼 수가 있다. s의 막내가 오고 싶어 한다는 전화에 이제 들어간다고 오지 말라고 손사래 쳤다.

우리들의 첫 아이는 셋 다 동갑이다. 그래서 비교도 이해도 쉽다. 서로에 대해 말하기가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진짜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터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 중에 하나다. 우리는 가느다란 신뢰를 여러 겹으로 꼬아 줄타기하는 내 마음을 틈틈이 잘 단속해야 한다. s는 요새 큰 아이가 엄마 앞에서 네 하고 돌아서자마자 바로 아니오가 돼버린단다. 혼내면 그 순간뿐. 매번 뒤통수 맞는 기분이 든단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정상”. 어쩌면 비정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엄마 앞에서 고분고분했기 때문이다. 어디 중2 아들이 엄마 아프다고 계란 후라이를 해서 밥을 차려오고 막내 밥을 차려준단 말인가. 너무 착한 s의 아들은 앞에서는 네, 뒤에서는 딴짓을 해야만 사춘기다. 물론 반대도 가능하다.

지금 우리 첫째 정이는 내게 아줌마라고 부른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이것이 지지를 않는다. 어물쩍 눈물이라도 글썽이면 내가 봐주고 싶은데, 지난밤에는 동생 율에게 이 아줌마 때문에(이 아줌마는 단연 나인데, 내가 뭘 어쨌다고.) 혈압 오른다고 했다고 율이 고자질을 한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말랑말랑해지려는 마음에 심지를 당겼다. 이 아줌마는 절대 먼저 수그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줌마 사건의 발단은 중간고사를 치고 마음이 풀어진 정이 내게 일언반구도 없이 학원 선생님들께 못 간다고 일일이 연락하고는 역시나 내 허락 없이 친구를 데려와 집에서 놀고 있었다. 기타 선생님 방문 날이라 기타는 치고 싶으니 선생님께 양해 없이 친구랑 같이 기타 수업을 했단다. 내가 퇴근하기 전에 친구는 가고 없었다. 나는 이 모든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여기에 내가 끼어들 틈은 전혀 없었다. 돈은 내가 내는데 말이다. 이럴 거면 엄마는 왜 있나요.

이제 아줌마라고 해.

알았어, 아줌마.

바로 치고 나오는 정이의 말대답에 나도 지난 1년간 다져진 사춘기 엄마의 짬밥이 있어,

그,,, 그래 동거인.

이라고 겨우 되받아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줌마와 동거인 사이가 되었다.


언니, 언니가 죽어야지. 아들이 죽으면 되겠어? 걔는 지금 살려고 말 안 듣는 거잖아. 걔가 지금 언니 말 다 잘 들으면 이 나이 돼서 병 생긴다.

첫째의 사춘기로 아파트 트랙을 새벽에 남편과 아직 걸은 적이 없는 s에게,

언니가 계속 죽어야 돼. 죽어, 죽어. 우리가 계속 죽자, 죽자. 근데, 첫째 가면 막내가 온다. 나는 작년에 땜빵 세 개 났지만 언니는 열 개 나야 돼.

남자 둘, 여자 하나, 애가 셋이니까. 말이 안 되는 악담까지 덤으로 얹어주며 미리 약을 발라준다. 착한 s와 더 착한 s의 아들은 착해서 마음에 구멍이 더 많을 것 같다.

동생인 ss에게도 언니라고 부르며 한 소리 할라치니, 자기는 첫째가 4학년 때 이미 많이 죽었다고 한다. 가장 어린 ss에게 아들의 사춘기가 너무 이르게 찾아와 가장 빨리 늙어버렸다. 갑자기 ss가 불쌍해진다. s도 안쓰럽다. 주거니 받거니 평소에 잘 안 취하던 나는 취했다. 카운터에 있는 막대 사탕 하나씩 물고 술집 밖으로 나서는데 비틀비틀 댄다. 어디선가 달큼한 내가 무뎌진 코의 점막을 건드린다. 사탕 냄새인가, 내 술내인가, 어디 과일 꽃이 피었나, 흰 이팝나무가 여기에도 있나. 푸르스름한 하늘을 향해 손짓 눈짓한다.

향기는 고깃집 앞에 심어둔 라일락에서 몽글몽글 끝물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건 찍어야 해. sss는 벌게진 얼굴로 막대 사탕을 물고 나를 부끄러워하는 눈빛을 담아 올해도 어찌어찌 봄꽃 사진을 겨우 남겼다.

아이들 말고 다른 예쁜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나는 화단을 향해 비틀비틀 부러 더 비틀대며 집으로 향한다. 얼마 전까지 오른쪽 빽빽이 희게 폈던 철쭉이 바닥 위에 동백꽃처럼 떨어진다. 조화같이 뭉텅이로 떨어진 흰 꽃에 눈물이 샘솟은 나는 죽어야 돼. 죽어야 돼. 연신 외치며 sss들을 끌고 조명이 켜진 다리로 데려간다. 이곳에서 10년은 살았을 그들을 향해 이파리가 내 얼굴만큼이나 크고 이국적인 꽃이 하늘로 솟은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sss는 모른다. 단풍나무를 지나가는 우리는 이르게 벌겋게 물든 단풍나무가 있고, 아직 연둣빛 넘실대는 단풍나무가 있고, 초록빛도 있고, 갈색빛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단풍꽃이 진 꽃자리에 날아갈 준비를 하고 매달린 야무진 단풍 씨의 정체도 모른다.

모르는 게 많은 우리는 큰 바위 얼굴 앞에 섰더랬다. 늦은 밤이라 트랙을 도는 동료가 없다. 백화등에 인사드려! 내가 합장을 하고 고개 숙여 큰 바위 얼굴을 비집고 나온 백화등에 인사를 한다. 탑돌이 하듯이 바위를 돌려고 하니 다들 아서라며 내 양팔을 잡아 물린다. 절에도 가고 교회도 가고 여기서도 기도하자. 여기에 돌도 쌓고 돈도 던지고 바위에 맨날 고민을 터놓자고 말한다. ss는 때마침 점퍼 주머니에서 동전 주머니를 꺼내 그 안에 든 100원짜리 동전을 내게 내민다. 바위 얼굴에 붙여달란다. 달빛을 받아 더욱 빛나는 큰 바위 얼굴 앞에서 우리는 그때는 백화등이었지만 지금은 때죽나무꽃인 앞에서 쪼로록 서서 아이들을 위해 빌었다. 그게 그렇다. 때죽나무라는 보장 또한 없다. 모르는 데다, 틀리기도 한다.

봄비가 여러 번 내렸다. 땅 위로 후드득 떨어진 선홍빛 불그스름한 버찌와 털이 복숭복숭한 어린 매실을 아까워하며 톡톡 밟아본다. 뽀드득뽀드득. 이렇게 혼자 듣기에는 아까운 소리가 들려온다. 까맣게 다 익어서 새 먹이로 들어가나, 초록빛 열매가 다 익어서 떨어지나, 익었으나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매달려 해를 넘기나, 열매로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한다. 수많은 열매 중에 겨우 한 알이 싹을 틔울까 말까. 열매가 되지 않은 삶은 어떻고. 혼자서 열매 되기는 얼마나 어렵나. 다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돌아와 묻는다.


떨어진다. 바야흐로 송충이가 득실거리는 시기다. 송충이가 내 등 뒤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옆에서 함께 걷던 j가 소리 지르며 달아난다. 나도 소리 지르며 달아나고 싶은데 내 몸이다. 몸서리치며 꼼짝 못 하는 나를 그래도 j가 돌아와 오만상을 찌푸리며 떼준다.

모자를 쓰고 걷는 우리는 둥지에서 이소를 했지만 잘 날지 못하는 새끼에게 연둣빛 송충이를 물어다 주는 박새 부부를 본다. 더 걷는데 산수유나무에 얹힌 둥지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새끼들에게 송충이를 물어다 주는 또 다른 박새를 본다. 말벌에 쏘일 정도의 야생은 아니지만, 작은 야생의 세계인 이곳에 곧 수목 소독이 시작될 것이다. 새들이 얼른 송충이들 많이 잡아먹었으면 좋겠다는 내 말에 j는 얼른 소독이나 해서 송충이가 싹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흐흐흐 웃는다. 우리는 우리대로, 모자나 쓰고 걸어야지 뭐.

쇠뜨기도 틀리고 백화등도 틀리고 최근에는 만첩홍도도 틀린 j이지만 여전히 나는 고개를 치어들고 이 종자는 뭐냐고 그녀에게 묻는다. 또 틀릴 텐데 왜 자꾸 물어요. 맞고 틀린 게 뭐가 중요해. 보는 게 재미지 뭐.

묻고 답하고 고개를 끄덕이다 탓하고 웃다가, 도돌이표처럼 같이 걸으면 재밌겠지 뭐.

벚꽃만큼이나 아름답고 향기도 달달했던 이팝나무꽃도 봄비에 다 떨어진 이제는 가을에 열매를 맺는 감나무잎이 반짝이며 손바닥만큼 커지고 감꽃봉오리가 주렁주렁 열렸다. 연둣빛 꽃봉오리가 벌어지며 미색 별꽃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면 감나무의 청년 시절이 시작된다. 작년에는 벌레가 감나무 잎을 다 파먹어 한 알도 겨우 볼 수 있었던 해였다. 겨울에 감 파먹는데 무아지경이던 까치 모습은 보지 못했다. 한 해 걸렀으니, 올 겨울에는 상가 앞에 실크로드처럼 펼쳐진 오르막길에서 파란빛이 쨍한 하늘을 배경으로 감나무 우듬지에 앉아 고개를 박고 누런 감 파먹는 청딱따구리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줌마와 동거인은 왠지 입에 착착 달라붙는 호칭으로 쿨한 척하는 사이가 되었다. 꾀꼬리를 종추할 때 역시나 아무렇지 않은 척 내가 먼저 사과했다. 동거인이라고 부른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유치했다. 그랬더니 딸도 마음대로 학원 안 가고 친구 데려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둘째가 물었다. 이제 나도 언니라고 불러도 돼? 너는 너지, 엄마 눈치를 왜 보니. 둘째도 그동안 언니를 언니라고 못 부르고 있었나 보다.

여전히 나는 수정하는 삶을 반복한다. 지난 나의 과오를 탓하는 이 없어도, 스스로 속으로 되물으며 낯 뜨거워한다. 어제는 틀렸고, 오늘도 틀렸을지 모른다. 무수히 고치는 삶을 살아야 하기에, 모른다고 말한다. 나도 그럴진대, 아직 스물도 채 되지 않은 아이에게 정답을 요구하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나는 그래도 우리는 재밌어야지.

겨울에 청딱따구리를 볼 때 즈음 우리 여자 셋은 또 무슨 일로 싸우고 있을까. 사이가 좋지 않을 거라는 것만 미리 아는 나는 왠지 올 겨울이 괜스레 기다려진다.

물론, s에게서는 그 뒤로도 내가 죽어야지? 묻고 내가 죽어야지. 답하는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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