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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계절걷기 08화

계절 걷기

새콤달콤 딸기맛, 땅콩 캐러멜

by 이애리

바람살 물러 자리에 4월이 어찬다. 늦지 않게 봄을 따르려고 모자를 눌러쓰고 나선다. 이때를 놓치면 우리 아파트의 버찌 연못가에 유일하게 피는 노란 수선화는 진다. 오늘 안 나서면 감나무집 대문 옆에 심어진 자주목련이 마지막 아린을 떨어트리며 하늘빛을 향해 솟아나는 자주 빛깔을 놓칠 것 같다. 이 따라 일주일에 두 번 가는 영어 학원이 있는 이웃 아파트는 어떻고. 매해 학원에 들르는 날이면 튤립 꽃잎은 이미 아이 얼굴만큼 벌어져 나를 잡아먹을 듯 치어다본다. 올해는 놓치지 않고 튤립 꽃봉오리가 열릴락 말락 하는 때를 반드시 보아야겠다.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이 오면 세포가 팡팡 터지는 듯한 봄기운에 몸은 눅진눅진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돌숲을 차린 후에는 더더욱 봄을 견디기 힘들어졌다. 렇게 삼월부터 오월 기억이 통째로 증발하듯 사라진다. 더위가 시작되는 유월이나 되어서야 서서히 깨어나는 의식을 올해는 좀 더 일찍 붙는다.

지하 주차에서 밖에 연한 경계에 서서 나는 지 벼락같은 햇살을 가르고 공간과 시간을 이동하는 시간 여행자가 된 것만 같다.

오른뺨으로 내리 꽂히는 햇발을 받으며 걷던 나는 돌옷을 벗은 큰 바위틈으로 뻗어 나온 가지를 무심결에 지나치다 되걸음하여 큰 바위 얼굴 앞에 다시 선다. 이태 전 즈음 바위틈을 뚫고 얄브스름한 가지가 하나 나와 살겠나 싶었는데, 올해는 물 올림까지 마친 가지다 이파리가 달리고 색 호롱 닮은 꽃봉오리가 쪼로록 달려있다. 어찌나 생명력이 강한지 꺾여 고개를 숙인 가지에도 호롱불이 켜진 듯 눈까지 밝아지는 듯하다. 무슨 꽃일까 내심 궁금해하며 억지로 발길을 돌린다. 프랜차이즈 커피숍 앞을 지나는데 모자를 대충 걸치듯 쓰고 커피를 기다리는 낯익은 인영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다.

모른 척 뒤에 서서 요리조리 장난스레 살피다 눈이 마주친다. 그녀의 눈빛이 윤슬처럼 빛난다고 생각한 찰나,

"언니! 아빠가 신장암이래요!"

왜 반짝이는 눈으로 씩씩하게 말하는 건데. 대수로운 일을 제나 이렇게 상하게 말하는 그녀가 밉다. 그래도 이번에는 보자마자 면전에 대고 이실직고한다.

자주목련 보러 갈래. 당황한 마음을 숨기며 라떼를 들고 같이 걷는다. 우리는 산책 메이트다.

부지런하지 않지만 각자 바쁜 우리는 약속을 하고 만날 일이 잘 없는데,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아파트 안을 걷다 보면 저절로 만나진다. 그러면 우리는 자연스레 그날의 걷기 동료가 된다. 지금 한창 보라색 꽃이 송아리송아리 피어야 하는 라일락나무가 사라진 화단을 보여주며 함께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연못가에 다다라 어디서 씨가 날아와 자리하게 되었는지 모를 유일한 금낭화 한 떨기를 살핀다.

며칠 전에는 땅에 붙도록 허리를 수그린 채 보송보송한 서양측백나무 어린싹을 보았다. 처음에는 어린 솔인가, 편백나무 인가 하다가 몸을 일으켜 다시 길을 걷는다. 홍매화를 보고 풀또기인가 멈춰 서서 설왕설래하다가 또 걷는다. 환공포를 불러일으킬만한 진분홍 꽃망울이 다닥다닥 붙은 박태기나무를 보며 나는 왜 아무 상관도 없는 팥배나무만 떠오르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대니, 그녀가 박 씨 성을 가진 나무만 떠올리면 박태기란 이름이 금방 떠오를 거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아파트 우리 동 화단에 가득 심어져 있던 박태기나무는 이제 밑동까지 베어져 본연의 모습을 알 수 없게 되었는데, 이끼와 고사리가 잔뜩 자라는 틈에 구멍 뚫린 흔적을 더듬어 나는 상상으로 박태기나무를 기억하게 되었다.

우리는 육교를 건너 건너편 아파트로 간다. 철제로 된 아치를 통과해 튤립 화단에 선다. 튤립은 아직 연둣빛 꽃봉오리가 단단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

아쉽지만 이제 자주목련이 있는 감나무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짙은 흙색 아린이 잔뜩 흩어진 바닥에 우뚝 자리한 나무에는 오늘따라 핏빛 같은 목련 꽃봉오리들이 하늘을 향해 뾰족뾰족 날을 가득 세운 듯하다. 그 아래 이미 꽃눈과 함께 솟아난 잎눈에서도 틈을 비집고 이파리가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어떻게 이토록 생은 떨어트리고 용 솟으며 썩고 태어나는 것인가. 녀가 커다랗고 작은 실금이 수없이 그어진 자주목련 꽃잎이 징그럽다고 한다. 툭툭 소리 내어 떨어지는 꽃잎 소리가 무섭다고 한다.

그녀가 하는 말을 어렴풋이 알 듯 해 고개를 끄덕인다. 텅텅 꽃송이째로 떨어지며 내는 덧없는 소리를 좋아했던 나는 제주도에 있는 4.3 기념관에 다녀온 뒤로는 목숨 같은 소리로 들려 더 이상 동백을 기를 수 없게 되었다.

아직 살바람이 머물며 큰 꽃잎을 떨어트리는 목련 소리에 서늘해진 우리는, 그만 돌아선다.

밥 먹자. 겨우내 성성한 서릿발에 얼렸다 햇발에 녹였다 바닷바람에 말린 시래기 안쳐 뚝배기 밥을 하는 '소요'라는 소담한 동네 밥집으로 향한다. 창가 자리로 그녀를 안내하고 자리에 앉는데 상기된 뺨 위로 눈물이 난다. 얼른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창 너머로 시선을 둔다. 이맘때 여기는 진달래꽃이 핀다. 핀 지 한참이 되었는지 분홍색이 희끄무레 바래었다. 바닥에는 땅을 뚫고 넓은 몸을 말아 튕겨 오르려는 연한 맥문동 싹이 잔뜩 보인다.

시래기 뚝배기 곱빼기와 두부찌개 곱빼기를 시켜 된장에 무친 밑동이 분홍색인 단 시금치나물과 유채나물을 야무지게 씹어 먹는다.


튤립 폈는지 보러 갈래. 그녀에게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한참 아무 말이 없다. 신경 쓸까 봐 일부러 전화하거나 문자로 재촉하지 않는다. 호롱이 쪼로록 달린 바위 앞에 서서 오늘은 유난히 이 나무 이름이 궁금해진다. 그녀라면 알지도 몰라 중얼거린다. 그때 그녀 이름이 찍힌 발신번호로 핸드폰이 울린다.

엄마와 주말 부부였던 아빠가 근처 병원에 입원하고 검사를 해야 돼서 아빠가 키우던 개를 데리고 왔다며 이미 한 바퀴를 산책한 뒤란다. 그러면서도 이름이 조이인 그 개를 들여다 놓고 따라나서겠단다. 금방 바위 앞으로 나온 그녀는 역시나, 꽃 이름을 알았다. 백화등이란다. 비싸냐고 물으니, 비싸면 이런 데 아무 데나 나겠냐며 일갈한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아무래도 여기 이 틈에 살아가는 게 신기하다. 누가 갖다 심었거나 버린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묘한 틈에 나서 우리는 한참 바위 앞에 서 있었다. 갑자기 저 바위틈에서 검은 물이 흘러나올 것 같다며 몸서리를 치자 그녀가 나보고 상태 괜찮냐며 해맑게 비웃는다.

어제 그녀를 만났던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라떼를 뽑아 걷는데, 그녀가 조이 따라다니다가 수선화 한 떨기를 더 발견했다며 저 자리라며 알려준다.

우리는 육교를 건너 다시 튤립 화단으로 간다. 아직 그대로다. 아니, 왜 기다리면 늦되고 때맞춰 가면 늦은 거냐. 내일 다시 오자며 바로 집 근처 삼대째 내려오는 순두부집으로 들어간다. 며칠 전 이곳에도 시래미 무침이 반찬으로 나왔던 게 생각이 나 그녀를 데리고 간다.

얼큰 순두부와 들깨 순두부를 시켜놓고 시래기 무침과 유채나물을 세 접시씩 비운다. 유채 나무를 보고 시금치 나물이라고 말하는 그녀가 반가워 유채나물이 자명하다고 뽐냈다. 동생이 갑자기 정말 나이가 들었는지 요새 식물 이름도 잘 까먹는다고 말한다. 정상, 이라고 말해준다.

그녀는 나보다 여섯 살 아래 동생이다. 원체 기억력이 좋은 데다 관찰력이 좋아 늘 겉잡아 말하는 나의 말을 정정해 주는 얄미운 동생이다. 언젠가 커피숍에 가자마자 직원과 손님 인상착의를 기억하며 한 켠에 면접 보고 있는 상황까지 파악한 그녀를 보고 내심 무서워한 적이 있다. 물론 나는 라떼 두 잔 주문도 어리버리하게 겨우 해서는 한숨 돌리고 있었다. 이 엄마들 세계에서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보고 선배는 있어도 후배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하자 진짜라며 놀랐다. 처음에는 물컹이로 봤다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없는 안다니 같아서 다 내뺀다는 것이다. 그 말에 마음이 풀어지며 한껏 웃어제꼈던 생각이 난다.

뚝배기에 담긴 순두부의 하얀 훈기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그제야 그녀의 아빠 이야기를 제대로 듣는다. 고성에서 단독주택을 지어 엄마가 좋아하는 감나무를 심고 그녀와 그녀의 이웃인 내가 어디선가 털어오는 온갖 식물의 씨앗을 심고 가꾸며 유유자적 사시던 아빠는 최근까지도 당뇨와 혈압관리를 하시며 살을 빼고 있었다고 한다. 아무 낌새를 못 느끼고 통상적인 건강 검진인 소변과 혈액 검사에서 신장에 이상이 있다는 게 발견이 되었단다. 2,3차 병원에서는 이미 신장암 3기라며 수술날짜를 바로 잡았다고 한다. 지난주에 병원을 가고 이번 주에는 입원을 하고 다음 주에 바로 수술이라는 상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급작스러워 조금 천천히 생각하라고 말을 건넨다. 그러고는 또 우리는 식물 이야기와 아이들 이야기로 삼천포에 빠졌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할 수 있는 일도, 할 수 있는 말도 터무니없이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들자 절망감이 든다. 나는 힘내라든지, 괜찮으실 거야 같은 말은 일절 하지 못했다. 무엇을 힘내고, 어떤 게 괜찮은지 모르겠다.

그저 지난밤에 인터넷에 검색한 데서 신장암에 명인이 만든 황칠뿌리진액이 좋다는 나름 유용한 정보가 있어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알려준다. 그랬더니 그녀가 뜬금없이

언니 우리나 먹어요. 우리 지금 사 먹을까.

진지하게 묻는데 웃음이 터졌다.

아빠가 육십 셋인데 너무 젊다. 할 수 있는 한 다 해 드려야지.

씻고 곧 출근을 해야 하는 우리는 지하 주차장에서 급히 헤어지는데, 그녀가 갑자기 밥 같이 먹어줘서 고맙다며 웅얼웅얼 댄다.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막내로 늘 이쁨 받는 그녀는 내가 무얼 주어도 먹어준다는 식으로 당연스럽게 누리는데, 저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쑥스러웠을까 생각한다.

그새 잘 참았던 눈물을 별안간 흘리며 손을 흔드는 둥 마는 둥 나는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진다.


주말에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벚꽃이 아직 만개 전인 서호천에 가기로 했다. 그녀와 걸었던 대로, 육교를 건너 아직도 피지 않은 튤립을 지나 곁에 하얗게 흐드러지게 핀 조팝나무를 본다. 아빠가 있는 병원에 다녀와서 산책을 했다는 그녀는 조이와 튤립을, 조팝나무를 보았을까. 멀리 쳐다보는데, 점점이 붉은 데가 있다. 남편 보고 저긴 무얼까 물으니 안 봐도 동백이란다. 곁에 서니 당연히 동백이 맞다. 그러나 병풍같이 한 방향으로만 붉은 조화를 꽂은 듯한 동백나무가 4월이 되도록 이 자리에 이 모습으로 있었다는 걸 처음 안 나는 놀라워 나무를 한참 치어다본다. 처음 지나는 길이다. 샛길로 나가니 귀한 흰 수선화가 피어 해를 향해 피어있다. 주말이 지나 그녀에게 얼른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물론, 그녀는 이 사실에 하나를 더 얹어 흰 민들레가 우리 아파트에 있는 걸 아느냐고 씨를 받아서 아빠네 마당에 심을 거라고 할 것이다.

왕벚나무 아래 홀로 왔다 갔다 서성인다. 나를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과 남편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더욱 느긋해진 마음으로 오르막길을 오르락 내리막길을 내리락, 같은 길을 오르락내리락 오간다. 문득 발에 채이는 씨앗 껍질을 들어 올려 이게 무엇이더라. 주목, 무궁화, 배롱나무 다 생각이 나는데, 유일하게 생각이 안 나는 나무 생각에 괴롭다. 한가득 떨어진 껍질을 보며 위로 치어다보니, 내 눈에는 유카와 주목 밖에 보이질 않는다. 갈색 씨앗을 몇 개 찾아 바지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그녀 아빠네 마당에 심으라고 해야겠다고 하는 순간, 아빠네 마당에 심어진 감나무에 불 싸지를 거라고 말하던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아빠는 이 와중에 두고 온 조이와 제 때 약을 쳐야 하는 감나무 걱정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차지가 된 조이와 자기가 먹지도 않는 감을 챙겨야 하는 게 이 와중에 화가 난단다. 그래. 그래. 감나무는 불 싸지르고, 조이는 우리 집에 데려오자며 살살 달랬다. 갑자기 반색하던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떠올리며 얼른 주말이 지나길 바란다.

바지 주머니 속에 씨앗과 껍질을 어루만지며 서호천에 발도 못 딛고 강가에 있는 어느 아파트 화단 한 켠에서 백목련 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이미 땅에는 갈변하는 이파리가 아린을 다 덮고도 계속 쌓이고 있었다.

일제히 피어나는 틈 바구니 속에서 주어진 숙명을 일찌감치 해내어 그 영광을 다시 떨구어 장엄한 생의 진실을 드러내는 나무에게서 나는 오히려 생명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내가 깨달은 무섭고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것에 대해 그녀에게 전해주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이 목련 나무 아래 서서 우듬지를 올려다본다. 고개를 숙이는 순간, 보라색 종들이 올망졸망 달려 한 떨기씩 피는 무스카리 한 무더기를 발견한다. 무더기로 해봤자 네 다섯 송이다. 이 작고 귀염성이 있는 무스카리는 그녀가 매우 좋아하는 꽃이다. 장날이면 늘 히아신스와 무스카리를 사던 그녀가 떠올랐다. 이 길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몇 번이나 훑으며, 누가 혹여나 밟지나 않겠지 염려스럽다.


어린 연둣빛을 뽐내며 수양버들이 소소리바람에 흔들리는 날. 우리는 개 조이와 함께 산책을 했다. 아빠한테 가져다 줄 이어폰과 귀마개를 사면서 내게 땅콩맛 캐러멜을 사준다. 물론 거저 사주지 않고 할매 입맛이라며 양껏 놀리며 사준다. 나도 주머니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새콤달콤 딸기맛을 꺼내 그녀에게 준다.

주말에 걸었던 대로 그녀와 걸으며 병풍 같은 동백과 흰 수선화를 보여준다. 흰 수선화는 비싸다고 한다. 유카 아래로 가 씨앗 껍질을 건네며 뭔지 알겠냐고 하니, 배롱나무 씨앗 아니냐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다가 유카와 주목 사이로 자라는 가지에서 이 열매껍질이 달린 것을 보고는 이파리를 찾아내 사철나무를 맞춘다. 맞다. 사철나무 이름을 듣는 순간, 우리 할머니집 마당에 심어져 있던 나무로 주황빛 반짝이는 열매 몇 알이 껍질 안에 안성맞춤으로 들어찬 모습이 떠올라 개안한 기분이 든다.

호들갑스레 그녀의 어깨를 사정없이 후려치며 드디어 나는 그녀를 백목련과 무스카리로 안내한다. 길치인 나는 몇 번이나 헤매서야 백목련이 있는 자리에 다다랐고, 그녀는 쓸쓸한 나무 아래에서 무스카리를 내려다보며 희미하게 웃는다. 이내 그녀는 올망졸망한 점 같은 것들이 물망초처럼 필 줄 몰랐다며 호들갑스러워한다.

냄새를 맡고 영역 표시를 하던 조이는 바위들 틈 사이에 핀 돌단풍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우리를 기다려준 조이를 생각해 그가 움직일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 걸으며 서로의 보폭에 적응한다. 덕분에 우리는 점심을 할 수 없었고, 조이를 두고 온 다음 날 주꾸미 볶음을 먹었다.


오늘은 커피숍이 아닌 집에서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 큰 바위를 지나가다 다시 되걸음질 하여 바위 앞에 섰다. 백화등 꽃이 피었다. 아, 작년에도 봤던 꽃이다. 꽃은 볼품없다던 그녀의 말이 진짜구나 싶어 입안이 까끌까끌해진다.

지난날 부러져 꺾인 가지에 흰 꽃이 잔뜩 달린 게 아까워 조심스레 나뭇가지를 펼쳐 두었던 나는, 문득 묘목과 바위 사이가 미묘하게 달라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별 같은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늘어지자 가지가 더 꺾이지 말라고, 누군가 제 때에 안성맞춤으로 공구어 놓은 돌 두어 개가 보인다. 눈을 비볐다. 돌 두 개가 나무와 바위틈을 메꾸어 백화등 꽃이 당당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것을 보려고 나는 이 바위 앞에 그토록 섰었던 거구나. 극적인 오늘 한 순간을 위해 나는 그토록 백화등 앞에 끌렸던 거구나. 돌 두 개. 누구일까. 그녀에게 묻고 싶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가 이내 멈춘다. 이번만은 호들갑스럽지 않게 끌끌한 마음으로, 함부로 발설하지 않고 정언처럼 지켜내고 싶다. 단지 우리는 감히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무수한 보살핌과 관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커다란 바위 앞에서 열렬히 깨닫는다.

조이를 산책하며 돌아가는 길이라며 만난 그녀는 개따라 다니다가 수선화 한 떨기를 새로 발견했다며 해사하게 웃는다. 아빠의 수술이 미뤄져 아빠의 회복을 위해 조이를 좀 더 맡아야 할 것 같단다. 이제 내가 아는 맛집 밑천은 다 드러났는데, 내일은 차를 타고 가서 조이와 셋이 브런치를 먹을까 생각한다. 우리 집에서 조이를 돌보는 것은 한 번의 산책으로 단박에 포기했지만 나는 여전히 조이와 함께 하기를 고대한다. 그녀와 그 모두를 만족시킬 내일 점심 메뉴를 잠시 생각하는데, 그녀가 아직도 튤립이 벌어지지 않았다며 성토한다. 우리를 마냥 안달복달 기다리게 하는 별스러운 튤립이 되우 얄미운 데다가 이미 지쳐서 나는 그냥 단풍에 지질린 어느 늦은 가을날에 봄을 기다리며 우리 아파트 화단에 튤립 구근을 몰래 심자고 말한다.

명지바람이 불어와 사월 하오의 햇살만큼이나 나를 다사롭게 째려보던 그녀가 장날에 구근을 사자며 뒤늦게 장단을 맞춰준다. 우리 셋은 이번 주 장날을 기약하며 각자의 일상을 위해 다시 어두운 지하로 함께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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