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을 걸어가는 연약한 것들을 위해
눈보라 속을 걷는다.
어린 시절 경상도에서 살았던 나는, 눈이라면 끔뻑 죽었다. 붉은 뺨을 할퀴는 바람과 쨍한 추위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던지, 폭설이 내려 돌아오지 못하고 겨우내 한라산에 갇혀 지내는 상상을 하고는 했다.
올 겨울에는 흰'에 천착하는 한강 작가의 전작을 보는 데다, 어느 날 밤새 내린 폭설부터 난생처음 눈보라까지 경험한 나는 눈이라면 지긋지긋해야는데 여태 남은 잔설을 밟으며 아직 눈을 기다린다.
새벽 회사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남편으로부터 눈보라가 친다며 아침 산책을 나가지 말라고 연락이 온다. 베란다 앞에 서니, 짙은 흑색 대기에서 점점 오렌지 빛으로 번지는 하늘이 보인다.
박명에 길을 나선다. 완전무장을 하고 지하 주차장 안으로 밀어닥치는 눈바람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며 바람을 밀며 한 발 내딛는다. 어디든 초입 바람이 가장 거센 걸까. 막상 길에 나왔더니 완전 무장을 한 덕분인지 공기가 쾌청하고 개운하다.
초록 트랙에 올라탄다. 갑자기 흔들리는 스노볼 세상 안에 스티로폼볼이 무리 지어 날리듯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앞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오늘, 걷는 마음은 무리일까. 어떻게 이렇게 작은 가루가 모여서 휘몰아치고, 소용돌이를 만드는 걸까.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 날아가던 박새가 들어와 내 오른 어깨를 스치며 바람에 휘이잉 길을 잃는다. 얼굴에 부딪힐까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으며 왼팔로 얼굴을 가린다. 그러나 새는 눈 깜짝할 새 제 갈길로 알아서 사라졌다.
겨울이 깊어지면, 바짝 말라 희끗한 연못 위로 나와서 바위 곁에 쪼로록 햇볕을 쬐던 고양이 무리들은 어딨나. 다리 아래도 추울 텐데. 사방을 둘러보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관리 사무실과 경비실에서 동원된 직원과 미화원은 빗자루와 넉가래로 힘겹게 눈을 쓰는데, 길 위로 사륜구동 제설 오토바이가 등장한다. 눈 오는 아침마다 쓸린 길을 걸었던 나는, 많은 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눈을 쓸고 밀며 고생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본다. 계속 눈은 쌓이고 얼음 칼 같은 폭풍이 몰아친다.
눈길 속에 반이나 걸었으면서도 이대로 걸어도 괜찮은 마음과 괜찮지 않은 마음이 자꾸 교차한다.
그때 내 옆으로 돕바 모자를 덮어쓰고 스카프를 칭칭 둘러 붉고 둥근 광대만 빼꼼히 나온, 하얀 비닐 부츠를 신은 다리로 개선장군처럼 전진 전진 걷던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당당히 툭 치며, 인사도 없이 지나간다. 그렇다. 오늘 내가 쫓아야 할 걷기 동료는 한 눈에도 범상치 않은 이 여성이다. 뒤돌아서서 이 여성을 따라간다. 우리는 눈보라 속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다. 얼음처럼 쨍한 가루눈이 내 뺨 위로 계속 쏟아진다.
동료를 따라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에 서는데, 금요일마다 열리는 7일장이 이 틈 사이로 알록달록하게 선다. 해장국을 판매하는 포장마차에서 연신 뽀얀 김이 오른다. 은색 알루미늄 가마솥 안에는 시뻘겋고 기름진 육개장이 한가득 펄펄 끓고 있을 것이다.
이런 데 저런 데 살피며 걷는 나는 어느 순간 걷기 동료를 잃기 마련인데, 아까 그 동료가 눈을 내게 박고 레이저를 쏠 듯 맞은편에서 걸어오는데, 순간 숨을 참았다 내뿜었다. 그녀가 나를 스쳐 지나간다. 이제 우리는 반대편으로 걷는다.
소용돌이치는 눈보라 속에 키가 큰 y가 보였다 사라진다. 진심은 언젠가는 전해질 거라는 나의 최선이 어긋났던 y. 그녀는 늘 떠날 준비를 하는 듯 초조해 보였다. 나는 이별을 연습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y가 택한 이별 방식은 나에게 꽤 충격적이었다. 떠나간 뒤에도 우리 문제가 아니라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 문제니까 시간을 가지면 다시 괜찮아질 거라고. 가끔씩 그래, 잘 지내냐고 한 번씩 묻고 싶은 마음을 거두며 y의 마음을 다시 기다렸다. 이 좁은 동네에 어떻게 한 번을 안 마주치냐고 생각할 즈음, 소문을 전해 들으며 이 사람은 절대 내 앞에 나타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내가 먼저 그녀를 알아볼 일도 없을 것이다. 큰 소나무 속에 숨어든 작은 새 오목눈이를 참 잘 찾던 그 눈으로 나를 발견하면, 그녀는 가던 길을 계속 돌릴 테니까.
작은 오목눈이를 발견했다고 명랑하게 이야기하던 y얼굴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그녀의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을까. 눈보라 속에서 어쩌면 실제였을지도 모를 그녀의 환영을 기억하며 불현듯 알아차린다. 나는 y를 다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 사랑하는 건데, 그녀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을.
최선을 다했다는 나의 당당한 자세와 많은 사람을 등에 업은 나의 시선은 그녀를 옭아맸을 것이다. 나의 말과 시선은 y에게 족쇄였을 것이다. 내가 아는 방식대로 물으며 다그치고, 나의 잣대로 해결하려고 했다. 나는 당시에 왜 온통 해결하려고만 했을까. 나는 다 안다는 듯, 강하게 무장한 y의 말투 속에 연한 데를 찾아 헤집어 놓았던 것은 아닐까. y는 내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당연한 이별 수순이었다.
내 생각에 빠져 고개를 박고 무심히 걷는 동안, 내 머리 위로 내려온 소나무 가지에 앉은 멧비둘기 한 마리가 언니 같은 매서운 눈길로 내 시선을 잡아채고는 구구구구구 운다. 어이구야, 깜짝아! 내 영혼의 단짝, 멧비둘기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는 굴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다, 먼 데로 날아가 버린다. 내 곁에 잠시 머무다 사라진 당신. 맨날 어디서 갑자기 그렇게 툭 나타나는지. 언제나 너를 보고 있다고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째려보고는 미련 없이 사라진다. 눈물이 눈에 가득 차오른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 다독인다. 비로소 y와 지낸 시간과 화해하고 싶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잠잠해지고 대기는 금세 봄날 같다. 제설 오토바이가 지나간 자리에 눈이 다 쓸리고 다시 가루눈이 솔솔 덮인다.
여름 길가에 그토록 아름다운 흰 무더기 꽃을 피웠던 수국이 마르고 시들어 잠자리 날개 같은 잎맥으로 내게 손짓한다.
지난 폭설에 꺾이고 부러진 소나무 나뭇가지는 비스듬히 잘려 , 단면에 눈이 소복이 쌓인다. 해를 받아 반짝이는 눈이 하이파이브!라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반팔에 반바지를 입은 미친 남성이 자전거를 타고 간다. 어쩌면 생의 일부는 미쳐야만 삶이 계속 지속될 수 있는 것 아닌가. 타인의 눈에는 무모할지언정, 나는 괜찮고 즐거운 것을 따를 때 생은 살만 한 것 아닌가.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사라지는 또 다른 현자의 뒷모습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응시한다. 물론, 오늘 나의 또 다른 걷기 동료를 하기에는 너무 벅찬 상대다.
대신, 나는 뛴다. 요즘 러닝이 유행이라서가 아니라, 언젠가부터 걷다가 뛰는 게 쉬워졌다. 걸으면서 5층, 10층, 15층 우리 집까지 계단을 오르는 일이 가뿐해졌다. 예전에는 극한의 지경으로 몰며 무리해서 뛰는 달리기를 혐오했다면, 지금은 천천히 달릴 수 있다. 어쩌면 10년 뒤에 나는, 마라톤 피니쉬 라인을 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계속 눈보라만 치는 것은 아니다. 눈과 바람이 멈추고 새소리가 쏟아진다. 먹이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스스스스 소리를 내는 풀빛 죽밭 틈새로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간다. 겨울이 깊어지면, 봄이 슬쩍 다가온다.
늘 그늘만 드는 자리를 지나가며, 나무 선이 드러난 그림자가 나타난다. 더듬거리며 동쪽을 헤아려 보니, 아파트 두 건물 사이로 드러난 해가 강렬한 빛을 내쏜다. 다른 지대에 있는 벚나무보다 볼품없이 개화하고, 듬성듬성 버찌가 열리지만, 그 나무는 오래 그곳을 지킬 것이다.
상가 앞에서 고장 난 외등을 손보려고, 눈 속에 사다리를 박고 올라가는 직원을 올려다보며 걷는다. 뜯은 종이박스를 머리 위로 쓰고 고꾸라질 듯 고꾸라질 듯 뛰어가는 어른을 뒤따르며 걷는다.
눈길에 미끄러진 배달 오토바이 기사님이 탈탈 털고 일어나 되돌아간다. 내가 어젯밤에 분리 배출한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집게차에서 육중한 집게가 내려와 쓰레기를 한가득 들어 올린다. 벌건 국물이 흘러내리고 플라스틱과 비닐들이 나뒹구는 길 위로 작고 흰 눈이 내린다.
과오가 나를 돌보며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다시 눈보라 속을 걷는다. 눈보라 속을 난다. 눈보라 속을 뛴다. 눈보라 속에서 자전거를 탄다. 눈보라 속에서 지킨다.
빈 새 모이통이 계속 흔들린다. 오늘도 우리는 겨울을 걸으면서 일상을 경험하고 판타지를 꿈꾼다. 남은 겨울을 마음껏 누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