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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를 반드시 찍는 사람.

나를 부지런하게 하는 사람.

by 이애리

오후 네 시, 두 시간 동안 글을 쓰고 돌아와 안 샘과 바통 터치를 한다.

안 샘은 화요일에서 목요일 3일 동안 매일 두 시간씩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돌숲지기를 대신한다.

어제부터 개수대에 놓여 탑을 쌓던 컵은 안 샘의 황금손을 거쳐 식기 건조대에 올라 반짝반짝 윤이 나고 있다. 창가에 놓인 독서 통장 진열대에는 독서통장이 깔별로 반듯반듯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열 돼 있다. 이런 순간을 맞닥뜨리면 내 동공은 정처 없이 흔들리며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를 배려해 주니 고맙기도 하고,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민망하고 나의 일을 떠넘기는 듯해서 미안하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어찌 가렸는데, 밖에서 새는 것까진 막진 못 했다.

돌숲을 열면서 불특정 다수가 내 생활 영역 안으로 자연스레 들어왔다. '슬로우 리딩'이라는 성인 독서 모임을 하면서 돌숲은 돌숲 상담소라는 별칭도 얻었다. 우울하고 외롭거나 편집증적인 사람들이나 모여 책을 읽는 거지, 우리는 스스로를 "책 읽는 사람은 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다.

돌숲을 하는 동안 하나 같이 다 이상한 우리를 내칠 수 없다면 어떻게 포용하며 함께 갈 수 있을까, 고민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다. 아직 잘은 모르지만, 우리들의 켜켜이 포개어진, 수많은 이면을 이해하게 되면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대부분은 저절로 극복이 되었다. 누구나 다 이상한 면 하나씩은 있었던 것이다.

안 샘과의 인연은 12월에 돌숲을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또래 한 분-안 샘이 씩씩하게 들어와 대관이 가능한지 조심스레 물어보며 시작되었다. 방학마다 학부모가 리더 하는 아이들 독서모임을 이곳에서 하고 싶단다. 홍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적극 독려하였고, 안 샘은 돌숲에 행사가 없는 날에 일정을 잡아 모임을 진행하였다. 어느 날 내가 지방에 있는 바람에 안 샘이 직접 문을 열고 불을 켜야 했는데, 수업이 제대로 시작했는지 궁금해서 cctv로 확인을 했다. 오, 안 샘께서 온몸으로-엄청 적극적인 제스처와 목소리로-자녀들 독서 모임을 이끌어가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거다! 적극적인 데다, 아이들이 잘 아는 누구네 엄마이고, 집이 바로 아파트 안이니 돌숲에서 독서 수업을 해주시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샘이 돌숲 문을 두드린 것처럼 나도 안 샘께 자녀 독서 모임 하듯이 이곳에 아이들한테도 확장해서 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내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안 샘이 무척 반색하며 '시켜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단다. 그리고 그녀는 성인 슬로우리딩 독서 모임에도 참여하고, 키즈 프로그램을 여럿 만들며 그렇게 우리는 함께 한 지 3년이 되었다.

처음에 안 샘은 내 기준으로 조금 '이상한 사람'이었다. 책을 좋아하는데 책방에서 자신의 책은 잘 안 사고, 아이 책을 대체해서 구매하고 수업을 할 때도 도서관에서 일일이 대여하며 번거롭게 일을 하는 듯이 보였다. 아이들 책은 대여하고 내 책은 사서 보는 나로서는 비효율적으로 보였달까.

게다가 안 샘은 여러 군데서 강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리지 않았다. 가정에 헌신하는 안 샘은 아이를 돌보며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일을 하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기후위기에 적극 동참하며 경제적인, 나와 조금 다른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안 샘의 눈에는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내가 비효율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안 샘과 나는 독서 통장이든, 택배로 온 박스든, 설거지 거리를 두고도 무척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나는 병렬 독서를 하듯이, 병렬 살림을 한다. 청소기를 밀다가 더 중요한 일이 생각나면-다시 쓸 일 없는 영감이 떠오른다든지 하는- 나는 청소기를 그대로 내려놓는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중요한 일이 생기면 후다닥 끝내는 게 아니라, 하다 말고 갑자기 떠오르는 일을 먼저 하는 편이다. 바닥에 놓인 청소기나 개수대에 담겨있는 설거지거리가 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돌숲 오픈이 계속 늦어졌다. 그나마 이틀 뒤에라도 열 수 있었던 것은 오픈 날 새벽에 널브러진 짐들을 모두 구석이라는 구석에 감출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안샘은 인원이 차지 않은 행사에 호출돼 머릿수를 채운 후에도, 끝나면 손까지 빠른 그녀는 뒤돌아서 바로 샥샥샥 설거지를 끝내고 가방과 책을 챙겨 후다닥 사라진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인사도 할 겨를이 없이 곧장 집으로 가버린다. 손이 빠르다. 설거지와 청소가 힐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절대 안 그럴 거라는 걸 알면서 나는 그 말에 매번 묻어간다. 그래서 안 샘한테는 북토크나 강연과 같은 행사를 잘 알리지 않는다. 부리는 자와 행하는 자라는 기본적으로 부담이 깔린 관계인데, 이런 일로 엮이고 겹치는 게 많으면 언젠가 감정은 상하게 된다.

쌓고 늘어뜨리며 벌이는 데 재주가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야무지게 수습하고 마무리를 지어주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독립적이라고만 생각했던 나는 안 샘을 보면서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집에서는 남편이, 돌숲에서는 안 샘이 나의 빈 부분을 꾹꾹 채워준다. 그렇지만 안 샘이 남편 대신이라든지, 두 사람이 도구로, 역할로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경계는 늘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의존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믿게 된 변화를 이제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좋은 말로는 유연해졌는데, 가끔 가스라이팅과 혼동되기도 한다. 다만 관계 사이에서 누리는 것을 당연스레 받아들이면 안 된다. 당연하게 여기는 나의 행동과 저의를 의심하고 점검해야 한다.

안 샘과 함께 만든 <슬로우리딩키즈> 수업은 매주 1회씩, 매월 3회 온 책 읽기로 진행된다. <그림책에 퐁당>과 <다독다독> 클래스까지 하면 한 달에 어린이 책만 10여 권 이상을 읽고 수업 준비를 하는 것인데, 책 선정을 안샘이 직접 할 때도 있지만 선배맘이자 사장인 내가 요구(?!)하거나 제안할 때도 있다. 내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 책에 대한 욕망을 가감 없이 전달하면, 샘은 '우선 해보죠, 뭐!' 거의 먼저 하고 보는 편이다. 내가 너무 갑질하는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한 적 있지만, 다행히 그녀는 “사장님이신데.” 로 눙치며 하고 보는 것이다.

우선 하고 보는 사람이 무서워질 때는, 계속할 때다. 그녀는 기분대로 사람을 대하거나 일정을 조율하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노고에 비해 수업료가 적고 뭔가 계속 새롭게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부담감이 있을 수 있다. 매번 새로운 책으로 수업하면서 힘든 순간이 여러 번 있었는데-비염 수술을 하거나 집안에 우환이 있어도- 수업 한 번 빠트리지 않아 늘 놀라웠다.

한 번씩 나는 안 샘보다 내가 더 힘들다고 어깃장을 놓을 때도 있다. 돌숲을 오픈하자마자 인수인을 찾은, 꾸준함이 어려운 나는 돌숲마저도 앓는 소리를 하며 억지로 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녀는 늘 뚝딱! 해낸다. 어떻게든 모든 수업을 해낸다.

안 샘이 지치지 않고 매 달 새로운 수업 준비를 할 수 있는 이유를 꽤 오랫동안 생각해 봤는데, 그저 좋아하는 일이어서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어본 적은 없지만, 가르치는 일과 책을 너. 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 꾸준함을 무엇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가끔은 내가 너무 좋아서,라고 기분 좋은 상상도 한다. 우선 하고 보는 도전 의식과 용기, 그것을 계속하는 꾸준함은 마흔이 넘은 내게 안 샘이라는 지표를 찍고 나아가는 본보기가 되었다.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게 하고 싶다.

우리의 책 선정과 욕망이 담긴 기획이 늘 성공한 것은 아니다.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인원 모집이 많든 적든) 원인을 분석하고 조율해 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 다른 우리 사이에 딱 맞았던 부분이다. 서로에게 기대가 없으므로, 안 샘과 나는 그동안 한 번도 개인적으로 만나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신 적이 없다. 안 샘이 돌숲에 오는 시간 전후로 잠깐씩이나마 서로 배려해서 묻고, 솔직하게 답하는 게 다다. 서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굳이 바쁜데 만나지 않은, 그 적당한 거리가 우리를 계속 이어가게 한 것이 아닐까.

덕분에 아직 나는 안 샘에 대해 잘 모르고, 그래서 매번 그녀를 새로이 알아가는 맛이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슬리딩키즈(슬로우리딩키즈 줄임말) 시간에 아이들이 활동지에 배운 것을 쓰고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안 샘은 아이들에게 마침표를 꼭 찍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 읽고 끄적이는 것만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수업이 끝난 후에 마침표는 왜 꼭 찍어야 하냐고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가장 기본이라서 그렇단다. 마침표를 찍는 게 가장 쉽고 기본이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 답변이 꽤 멋있어서 나는 문장의 끝에서는 꼭 안 샘을 떠올리게 된다.

돌숲에 처음 찾아와 대관을 문의했던 그녀는 용감했고, 품앗이로 자녀들의 독서 수업을 온 열의를 다해서 하는 모습에서는 책임감을 보았다. 그동안 축적한 자료와 책으로 계속 돌려 막는 수업이 아니라, 아직도 나의 요구나 아이들의 상황에 맞게 매달 새로운 책을 읽고 자료 준비를 하는 안 샘의 상황과 처지를 가끔 생각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마침표를 콕 찍으며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가끔 책방 하면서 수입이 없다고 짜는 소리를 하는 내게 사람들은 수업을 나보고 하라는 조언을 하는데, 책방을 하면서 남들 다 하는 것, 나와 맞지 않는 영역까지 하면서 수익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내 목표는 지치지 않고, 가늘고 길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서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이미 책방을 매일 열고 있다는 자체가 내게는 도전이다. 안 샘과 내가 각자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가장 기본적 자세다. 그것이 내게 감동이다.

두 시, 안 샘이 오신다. 내가 몸이 안 좋은 어느 날에는 들어가서 자라고 권유하고, 오늘은 잠을 자기엔 아까운 날씨니 글을 쓰라고 독려한다. 그러고 보면 안 샘은, 대단한 사장님이라고 추켜세우며, 글 쓰셔야 한다고 어르고 달래며 한편으로는 나를 키운 사람이다.

안 샘 말 대로 안 눕고 글을 썼더니 오늘따라 글이 잘 나와 뿌듯하게 들어온다. 뭐든 쌓기 신공을 부리는 내가 쌓아둔 상자를, 보다 못한 안 샘이 까대기(?!) 하여 문 밖에 내놓고는, 룰루랄라 들어오는 나와 바통 터치 후 그 상자와 재활용품을 챙겨 퇴근을 하신다. 설거지도 이미 끝내고, 책과 독서통장도 미리 정리했는데 이제 상자까지 미리 치워야겠다고 다짐하며, 얼마나 더 부지런해야 하는 것인가 고개를 흔든다.

창가에서 책을 읽던 한 아이가 거미를 보라며 유리창을 손짓한다. 내 손이 닿는 곳에 치는 거미줄은 빨리 제거하는데도, 거미는 어쩜 저렇게 매일 거미줄을 금세 치는지, 대단한 거미라고 아이에게 칭찬일색을 펼치다가 문득 붉은 단풍나무 사이로 따스하게 사위어가는 오후 햇살 아래 어린 아들과 총총총 집으로 향하는 안 샘을 본다. 어쩜 뒷모습이 저리 한결같이 단단한지, 변치 않는 그 안정감이 오늘도 말없이 나를 토닥여 준다. 나는 오늘도 이변 없이 계속하는 사람, 안 샘에게서 묵직한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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