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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②

2023년 나의 첫 대만 여행 / 예류 빠진 스.진.지 투어

by 대미녀


우리 숙소는 용산사 근처, 완화구에 위치한 어느 호텔이었다.

완화구에서 버스를 타고 루이팡역에 도착한 후, 다시 기차를 타고 스펀역으로 향하는 루트였다. 보통은 택시투어나 버스투어를 많이 선택하지만, 우리는 대만을 몸소 느끼고 싶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루이팡에서 스펀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밖을 구경했다. 녹음이 우거진 나무 그리고 새파란 하늘, 대만 특유의 건물들까지. 모든 게 아름다워보였다.


<예류 빠진 첫 번째 코스는 스펀입니다>

스펀(十份)에 도착하자마자 천등을 날리고 사진도 잔뜩 찍었다. 다른 여행자들처럼 유명한 천등집에 갔는데, 사장님이 한국어를 어쩜 그렇게 잘하시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스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닭날개 볶음밥도 먹고, 어느 골목 가게에 들어가 우육면과 샤오롱바오도 먹어줬다. 망고 스무디까지 야무지게 구매해서, 스펀역으로 다시 향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스펀역에 도착 했을 때, 갑자기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 깜짝 놀라 옆을 봤는데 역무원분이셨다.

나는 순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았다.


근데 알고 보니 번역기에 적힌 한국어가 맞냐며 물어보는 거였다. 나는 한참을 들여다본 뒤, 맞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몇 초 뒤, 내가 확인했던 그 문장이 기계음(TTS)으로 스펀역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루이팡역에 가실 승객분들께서는, 1번 플랫폼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드립니다....루이팡...”


그렇게 나도 1번 플랫폼을 이용해 루이팡으로 향했다.


<황금 덩이가 있는 아름다운 진과스>

루이팡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진과스(金瓜石)로 이동했다. 진과스는 20세기 초중반에 광부들이 정말 금광을 캤던 곳이라고 한다. 황금이 고갈되면서 마을 분위기가 침체되었지만, 지금은 그때의 유산을 활용한 관광지로 변해, 북적이고 있다.


220kg짜리 황금 덩이를 직접 만질 수 있고, 갱도 체험까지 할 수 있다는 말에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내가 갔을 땐 코로나 시기라 그런지 갱도 체험은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은 곳이었다.


박물관에 적힌 설명을 읽고, 220kg의 황금 덩이도 직접 만져보고, 자연과 어우러진 진과스를 천천히 여유롭게 살폈다. 한참을 돌아다녀서 그런가 슬슬 배가 고파왔다. 그래서 우리는 진과스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원조 광부 도시락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갔을 땐 영업종료 직전이라 사람이 없었다.

도시락 통이 탐나서, 도시락 통이 포함된 세트를 2개 주문했다. 하지만 라스트 오더가 이미 끝나서 주문이 어렵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식당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주인분이 우리를 불러 세우더니, 라스트 오더가 끝났지만 특별히 도시락을 만들어주시겠다고 말했다.


덥고, 배가 너무 고파서 동과차까지 시켜 맛있게 먹었다. 예쁜 통도 받고, 맛있는 도시락도 먹고, 시원하고 달달한 동과차까지 들어가니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감사 인사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와 지우펀(九份)으로 향한다.


<지우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배경지가 아니야!>

많은 한국인들이 ‘지우펀(九份)’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곳은 전혀 다른 영화의 무대다.


지우펀은 1989년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의 주요 배경지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직후의 대만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영화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비정성시>의 장소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코로나 시기라 관광객이 많지 않았지만, 아메이차루 앞은 여전히 인파로 북적였다. 그 풍경을 보니, 왜 ‘지옥펀’이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잠깐 사진을 찍고, 지우펀 골목을 누비며 걷기 시작했다. 지우펀 최초의 공연장인 ‘승평희원(昇平戲院)’도 들렀고, 전망대에 올라 지우펀의 풍경을 감상했다.

시간이 늦어 우리는 다시 완화구로 돌아가야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게 웬걸!

승객들로 꽉 찬 버스가 도착했고, 단 2명만이 더 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나 포함 다섯 명.


다음 버스를 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되는데, 이미 하루 2만 보를 넘게 걸은 우리는 너무 지쳐 있었다. 그 순간 버스 기사님이 갑자기 소리치셨다.


“가위바위보 해요!!”


그렇게 우리는 팀을 나눠 승부를 겨루게 됐다.

나와 오빠는 한 팀, 나머지 현지인 3명은 또 다른 한 팀.

당황스러웠지만, 어떻게든 이 버스를 타야 했다.


평소 가위바위보를 정말 못하는 내가,

그 순간만큼은 하늘이 도운 듯 첫판에 승리했다.


우리는 그렇게 만차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고,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기쁨 때문인지, 하루의 피로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렇게 그날도 우리의 하루는 유쾌하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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