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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③

2023년 나의 첫 대만 여행 / 계획에 없던 곳, 인생 여행지가 되다

by 대미녀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 不能說哦的秘密 (2007)>의 촬영지이자, 연출과 주연을 맡았던 대만 배우 주걸륜(周杰倫)의 고향. 그리고 한때 한국까지 열풍을 일으켰던 ‘대왕 카스테라’ 본점이 있는 곳.


애초에 계획에 없었지만, 타이베이를 둘러보다 시간이 남아 들르게 된 단수이(淡水)였다.


타이베이에서 레드라인 MRT를 타고 도착한 단수이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코로나 시기라서 인지,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만 보였다. 역에서 버스를 타고 단수이 라오지에(淡水老街)로 향했다. 아쉽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 촬영지인 담강대학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시원하고 아름다운 강변을 따라 걸었다. 타이베이나 예스진지 투어에서 느낀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여길 안 왔으면 정말 후회했겠다"


오빠와 나는 연신 감탄했다. 강변 옆으로는 아기자기한 식당과 카페가 줄지어 있었고, 곳곳에서 서로 다른 공연이 이어졌다. 한쪽에서는 불꽃을 능숙하게 다루는 불쇼가 펼쳐지고, 다른 쪽에서는 화가가 음악에 맞춰 거침없이 그림을 그렸다. 마지막 순간, 캔버스를 휙 하고 뒤집자 관객석에 앉아 있던 꼬마의 초상화가 완성됐다. 우리는 '예술의 도시 같다'며 박수를 보냈다.


이런 멋진 곳에서 사니, 주걸륜 같은 천재가 나오는 것 아닐까?


‘여기가 대만이 맞아?’ 같은 나라 안에서도 이렇게 다른 풍경과 분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강변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상점들을 구경하고, 말차를 직접 저어 만드는 카페에 들어갔다. 부드럽고 쌉싸래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자, 일본에서 맛봤던 말차가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망고빙수가 먹고 싶어졌다.

대만 하면 망고 아닌가!... 물론 우리가 간 시기는 겨울이었지만, 너무나도 맛보고 싶었다. 강변을 한참이나 걸어 다니며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마침 타이베이에 예약해 둔 마사지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기에, 우리는 결국 ‘그냥 돌아가자’고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MRT역으로 향하는 길목에 망고빙수 가게가 딱! 나타났다.



입 압에 넣자마자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달콤한 망고 빙수. 냉동망고라니, 믿기지 않을 만큼 신선하고 맛있었다. 머리가 띵할 정도로 시원했고, 가게 아주머니의 친절함까지 망고 빙수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단수이에서 페리를 타면 빠리(八里)로 갈 수 있지만, 시간 관계상 우리는 타이베이로 돌아가야 했다. 다음엔 빠리(八里)와 연인의 다리가 있는 위런마토우(漁人碼頭)도 가야지 하고 마음속에 남기며 MRT에 올랐다.



타이베이로 돌아와 tvN 예능 ‘꽃보다 할배’에 나왔던 재춘관 마사지숍에 갔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그런지 직원들의 한국어가 능숙했다. 우리는 전신 오일 마사지를 받았는데, 정말 끝내주게 시원했다.

그런데 마사지 도중 몸이 점점 차가워지자, 직원이 나를 수건으로 감싸며 몇 번이나 괜찮냐고 물어봤다. 괜히 놀라게 한 것 같아 조금 미안했다. 평소 수족냉증이 있는 나는 문제 되지 않았다. 뭉친 근육이 풀리니 온몸이 나른해지고, 편안한 기분만 들었을 뿐이다.

마사지가 끝난 후에는 당장 누워서 자고 싶었지만, 호텔과 거리가 있어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가 있는 완화까지 이동했다.


저녁도 먹지 않아 근처 식당을 찾았지만, 모두 문을 닫았다. 결국 까르푸에서 즉석식품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우리가 산 것은 대만식 닭구이였다. 얼굴만 한 닭다리를 보고 '맛있겠다'며 기대하고 뜯었는데... 식어서인지 비린내가 훅! 순간 당황했다.


대만 음식이 대부분 입맛에 잘 맞아, 고추장 같은 한국 제품을 따로 준비해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대만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작은 고추장이 나왔었다. 그때는 고추장을 먹지 않아서, 혹시 몰라하고 챙겨두었는데... 여행 마지막 날, 이 작은 비빔밥용 고추장이 우리를 구해줄 줄이야!


결국 우리는 고추장을 듬뿍 뿌려 닭다리를 무사히 먹었다. 조금 짜긴 했지만, 그 비릿한 맛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리고 그날의 닭다리 맛과 코 끝을 스치는 비릿한 냄새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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