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트 힐링센터 (3)

단편소설

by 선명이와 지덕이

그 친구는 자기 부모님과 외삼촌도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1년 이상 살지 못하고 말이다. 친구가 말할 당시에는 암에 대하여 관심이 없어서 돌아가신 분들이 무슨 암으로 몇 기였는지 친구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친구는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암 선고라고 표현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었다.


‘암은 곧 죽음? 암 선고?’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요즘은 의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는데, 아직 1기일 뿐인데, 죽을병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꽤 있던데’와 같은 여러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을 검색했다.

암은 부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현대 의료의 발전으로 5년 생존율이 과거에 비해 많이 높아졌으며, 요즈음 암 선고라는 말 대신 암 진단이라고 말한다고 나와 있었다.


‘다행이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현대 의료가 많이 발전했다는 기사를 보고 약간의 안도감은 들었지만, 내심 아내와 어떻게 상의해야 할지 걱정이 들었다. 그녀와 통화했다. 그녀의 반응은 덤덤했다. 체념한 듯한 목소리였다. 그녀가 그렇게 말은 하지만 병원 가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검사 결과에 대해 무척 당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나는 딱히 다른 결정을 하지 못했다. 암에 걸리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일반적 치료의 정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이런저런 방법을 소개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도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검증되지 않은 방법으로 치료하다가 잘못되면 몸이 더 망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집에서 좀 멀지만 국내에서 암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국립중앙병원의 암센터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녀에게 진단을 내린 암센터의 주치의는 그녀에게 수술은 잘 되었으나 보이지 않는 암세포가 있을 수도 있으니 항암치료를 하자고 말했다. 그녀는 치료받기 싫었으나 별다른 대안이 없어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항암치료를 받는 중 그녀의 일상은 엉망이었다. 탈모로 대머리가 되고 치료를 받은 날은 자다 말다 일어나 구토도 자주 하였다. 백혈구 수치가 너무 떨어져 가까운 의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회복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주요 수입원인 초등학교 강의는 이어갈 수 있었다. 그녀가 출강하는 학교는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인해 강의할 영상을 만들어 동영상으로 제출하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암환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기 싫었다. 그래서 감쪽같이 가발과 화장으로 분장을 하고 힘겹게 수업할 영상을 만들었다. 학교에서는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항암치료를 견디지 못했다. 4차 항암치료를 받고 집에 온 날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항암치료에 백기를 들었다고 봐야 할까. 몸이 망가지고 무리가 너무 와서 견디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뉴스타트 힐링센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