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예절과 규범까지 배울 수 있는
우리나라 추억의 도시락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양푼 도시락에 밥, 계란 프라이, 김치, 소시지 등을 넣고 뚜껑을 덮은 다음 열심히 흔드는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대만에도 이와 비슷한 밥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원주민들이 이처럼 먹는 전통 음식이 있다. 바로 야오야오판(搖搖飯)이다. 직역하면 흔들밥이라고 할 수 있다. 야오야오판은 산지밥이란 뜻의 산디판(山地飯) 혹은 산지죽이란 뜻의 산디저우(山地粥)로 불리기도 한다. 대만의 파이완족(排灣族)과 루카이족(魯凱族) 등 원주민의 음식이다. 조, 제철 산나물, 고구마, 산마, 붉은 퀴노아 등을 넣어 큰 솥에 끓여 만든 것이다. 한국의 도시락처럼 흔들어서 먹는다고 하여 야오야오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야오야오판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첫 번째는 만드는 방식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다. 조가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긴 나무 막대를 잡고 온몸의 힘을 써서 계속 저어야 한다. 이 모습이 춤추면서 몸을 흔드는 것처럼 보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다. 밥을 할 때의 냄새가 퍼져 옆에서 기다리던 가족들이 설레어 숟가락을 흔들며 밥을 기다렸다고 한다.
조리법 및 모양새는 단순한 편이지만 만들 때 손이 많이 간다. 큰 냄비에 물을 끓이고 조를 넣어 젓다가 어느 정도 익으면 각종 재료를 넣고 계속 저으며 끓인다. 마지막에 잎채소를 넣어 숨이 죽을 때까지 서서히 졸이면 완성이다. 조리의 시간이 곧 인내의 시간이다. 전통적인 야오야오판에는 소금을 넣지 않고 먹는다. 대신 짭조름한 맛을 반찬에서 채운다. 소금으로 양념한 생선, 발효 두부, 짠 생강 따위의 반찬 말이다. 요즘에는 입맛에 따라 동물성 기름이나 소금을 살짝 넣어 풍미를 더한다고도 한다.
야오야오판을 먹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예절과 규범을 배울 수 있다. 전통적인 방식에 의하면 큰 솥을 상에 올려놓고 가족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각자 자기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이때 각자 자기 앞에 있는 부분만 떠먹어야 한다. 숟가락을 멀리 뻗어 다른 사람 쪽을 먹거나 가운데를 깊게 파헤치면 안 된다. 가운데 부분은 아직 자리하지 못한 가족을 위해 일부러 남겨 두기도 한다. 남을 배려하며 나눠 먹는 공동체 규범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요즘에는 위생과 건강 때문에 큰 솥에서 각자의 그릇에 덜어 먹기도 한다. 그럼에도 본인에게 가까운 쪽부터 먹고, 가운데를 난잡하게 파헤치지 않는 등의 전통 예절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야오야오판은 세대를 잇는 기억의 음식이자 가족과 부족을 하나로 이어 주는 상징적인 밥상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밥이 단순한 식량이 아닌 가족을 하나로 모아 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