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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만아웃사이더 Feb 28. 2022

우리는 남이 아니라 애인 사이야

바선생을 통해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 말

 sns를 하다보면, '결혼하면 안 되는 사람의 특징'이라는 글을 볼 수 있다. 거기서 말하는 특징을 대략적으로 말하면 개인적이면서, 남에게 받은 건 다 갚아야 하고, 무엇보다 남에게 절대 기대지 않는 사람. 정말 모든 문장 하나하나가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워낙 독립적인 성격이다 보니 평소 대만 남자친구(팅이)에게도 절대 기대지 않는데, 팅이도 몇 번이나 나의 이런 부분에 대해 거리감을 느낀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도 나름대로 고치려고 노력을 했지만 이런 성격으로 너무 오래 살아온 나여서 하루 이틀 만에 이런 성격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런 내 성격을 진심으로 반성하게 된 일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바선생님'의 출현으로 시작되었다. 



 대만에서의 삶에서 가장 큰 고충은 돈도, 사람도, 음식도 아니다. 바로 '바선생님'이다. 


 당신이 몇 층에 살든, 창문 자체를 열지 않든 뭐든 상관없이 대만의 바선생님께서는 화려한 날개를 펼치며 어느 곳에서나 출현하신다. 특히 여름에 정부에서 진행하는 정기적인 하수구 소독을 한 다음날은 하수구 근처에서 누워계신 엄청난 바선생님들을 직접 뵐 수 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나는 바선생님에 대한 극도의 트라우마가 있다. 실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는 바선생님이 잔뜩 나타나는 꿈을 매번 꿀 정도로 그 트라우마가 지독하다. 그래서 현재 살고 있는 방에 가끔 바선생님 또는 그 자제분이 출현하면 나는 그야말로 멘탈이 붕괴된다. 


 평소에 감정 기복이 없기로 인정받는 나도 바선생님 앞에서는 그저 울보 1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의 남자친구의 필수조건 중 하나가 바로 나 대신 바선생님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팅이에게도 말한 적 있다) 그러나 현재 나와 내 팅이는 해외 장거리를 하고 있다 보니 지금 바선생님이 출현하면 나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이런 나를 잘 알다 보니 팅이가 출국 전에 나에게 바선생님 약을 사다 주기도 했다 (...) 


 하지만 약을 아무리 뿌린다고 한들 한계가 있는 법, 어젯밤에 집에 돌아왔는데 거실 바닥에 쓸쓸히 누워계신 바선생님을 만났다. 만약 그 선생님께서 이미 사망하셨다면 몰라도, 하필 그 바선생님은 사망하기 직전이라 움찔거리는 상태였다. 나는 바로 옆집 홍콩 이웃에게 sos를 쳤고 다행히 집에 있던 그 친구가 바로 나를 위해 잡으러 와줬다. 그리고 그 친구가 나 대신 바선생님을 변기로 고이 보내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아 결국 팅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팅이에게 정말 한참을 울면서 칭얼거리는데 팅이는 정말 인내심 있게 그 모든 칭얼거림을 다 받아주면서 나를 진정시켜주었다. 팅이의 위로를 받고 겨우 진정이 된 나는 잠에 들기 전 팅이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했다. 금방 나를 잘 위로해줘서 고맙다고, 네 목소리를 들으니까 안심이 되었다고. 그리고 난 먼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 휴대폰을 확인하니 팅이에게서 연락이 와있었다.


"沒事沒事,大家會害怕或討厭的東西不同。你跟我說的話我可以想辦法幫你處理。謝謝你和我說。晚安。愛你。”

"괜찮아, 다들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건 다 다르잖아. 네가 나한테 (바선생님 출현한 일을) 말해주면 내가 어떻게 널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해줄 수 있어. 나한테 말해줘서 고마워. 잘 자. 사랑해."


 이 메시지를 보자마자 가끔은 애인에게 기대는 것도 필요하구나, 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원래 내 성격이 남에게 절대 기대지 않으려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끔 팅이와 과한 거리감을 두곤 했다. 내가 가끔 이런 말을 할 때마다 팅이는 나에게 우리는 '남'이 아니라 '애인 사이'라는 걸 각인시키곤 했다. 하지만 20여 년을 저렇게 살아온 나로서는 하루 이틀 만에 그런 습관을 바꾸는 게 쉽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번 팅이가 나에게 말했던 '우리는 남이 아니라 애인 사이야'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남이 아니라 애인 사이, 가족이외의 완벽한 내 편이 있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끼며 이번 글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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