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맘을 아시나요.
돼지 맘의 정의.
교육열이 매우 높고 사교육에 대한 정보에 정통하여 다른 엄마들을 이끄는 엄마를 이르는 말. 주로 학원가에서 어미 돼지가 새끼를 데리고 다니듯이 다른 엄마들을 몰고 다니는 모양새를 일컬어 나오게 된 말이기도 하다.
사교육의 1번지.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이 곳 대치동이다.
바로 그 현장에서 얼마 전 나에게 있었던 일을 한 번 적어볼까 한다.
3월의 어느 아침,
작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을 정리하려던 찰라, 카톡이 울린다.
-OO엄마! 점심에 잠깐 볼 수 있어? 이번 학년에 새로 알게 된 XX엄마인데.. 소개 좀 시켜주려고.
잠시 망설여 진다. 분명 학원 얘기가 주를 이룰 게 분명하다.
내가 그녀들과 비슷한 속도가 아니라면, 분명 ‘불안감’만 한아름 어깨에 이고 들어 올 텐데. 그래서, 왠만하면 피하려고 한다. 그래도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엄마 마음인가 보다.
점심의 한 고급 레스토랑.
원래 이런 곳에서 안모인다. 그런데 오늘은 좀 특별 한가? 이 곳은 내가 특별한 날에만 오는 양재천 변에 있는 프랑스 식당이다. 거의 엄마들을 만날 때는 집 근처 카페나 분식집에 간다. 아이들 하교 전에 모든 잡다한 일들을 끝마쳐야 하므로 늘 그녀들은 분주하다. 그래서, 잠시 그리고 빨리 만날 수 있는 집 앞이 참새 방앗간이 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교 하고 나면 엄마들은 모조리 잠수를 탄다. 이것이 대략의 대치동 풍경이다.
“요즘은 황소도 예전 같지 않다더라”(황소는 대치동에서 공부 잘한다는 아이들이 거쳐가는 수학 학원 임)
“안 그래도 진도를 너무 늦게 빼더라고요.. 그래서 개별 진도 빼는 곳으로 몰려 간다 하던데. 그 앞에 **로드 거기로 많이들 간 데요.”
“빨라 지긴 오지게 빨라 졌어. 초1에 중등 나간 다니..”
어머랏!
황소는 이 곳 대치동에선 2월과 11월 레벨테스트가 있는 달에는 ‘황소의 난’이라 불릴 만큼 그 테스트 통과를 위해 엄마들과 아이들이 바쁘다. 그만큼 이 곳에선 유명한 학원이라서 주변에 황소 다니는 둘째 친구들을 보면, 다시 쳐다보게 되었었는데, 벌써 흐름이 바뀌었나 보다.
“영어는 다* 강쌤이 새로 차린 학원. 거기로 보내 봐. 아직 실력을 꼼꼼히 다져야 할 처지면. 내가 링크 보내 줄게.”
역시나 학원 정보가 넘쳐나는 모임이었고, 그 곳에서 새로 만난 그녀는 예상한 대로 학원 정보에 빠삭한 빠꼼이였다. 잘 나가는 학원 선생들과 친분이 있었고, 독립해서 차려 나간 학원까지 모두 꿰뚫고 있었다. 게다가 소위 이름난 일타 강사에게 팀별 수업을 받기 위해 엄마들을 주도하는 돼지맘이 분명해 보였다.
얼마 전, 학원가에 새로 생겨난 ‘초등 의대반’소식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의대가 최고라는 인식으로 대치동 부모의 선행학습 욕심에 발맞춰 학원이 불안 마케팅을 조성하여 나온 창작물.
초등 5학년부터 입시 준비를 해야한다고 떠들던 학원가가 이제는 그 시기를 앞당겨 초등 3학년에 시작해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의대를 가려면 말이다. 점입가경인 형국이다. 그러나 이 곳 아이들은 엄마와 학원의 쿵짝에 맞춰 이 어려운 공부를 순종적으로 따라 간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사교육비는 2007년 사교육비 조사가 시작된 후 사상 최대 규모인 26조원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인’ 한 달 가구 소득이 512만원으로 가정 할 때, ‘평균적인’ 사교육비가 144만원. 그렇다면 평균 30%에 해당 되는 금액이 사교육비로 나가고 있고, 이는 절대적인 평균 값일 뿐, 이 곳 대치동에선 과목당 66만원~70만원에 해당되는 사교육비(좀 유명하다고 하는 학원들)를 고려해 본다면, 이보다 훨씬 많은 금액들이 지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아이가 2명 이상이라면.. 물론, 이 곳은 고소득자 전문직들이 많이 살고 있기는 하다.
‘에듀푸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사실, 이 곳에선 너도 나도 학원을 보내다 보니, 정말 안 보내면 우리 아이만 뒤쳐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들 뿐더러, 괜히 내 아이에게 죄인이 되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물론, 부모가 제대로 주관을 갖고 사교육을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배짱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교육 환경이긴 하다.
유해 시설은 찾아보기 힘들고, 아이들 또한 수수한 차림에 거리에서 단어장이나 문제집을 읽으며 걸어가는 모습을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본인이 필요로 하는 과목이나 챕터를 공부하기 위해 입맛에 맞게끔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학원들이 근처 곳곳에 널려 있으니, 더 말해 뭣 하겠나.
문제는 입시에 대한 학원가의 불안 마케팅 조성. 이에 발맞추는 학부모들의 과열된 선행 집착. 이 모든 것들이 들어 맞는 탓에 사교육이 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 큰 아이는 해외트랙으로 입시를 마쳤고, 둘째 아이는 초등 고학년이다.
이 곳 분위기라면, 입시 준비를 해야할 시점이기도 해서 지난 겨울, 참 생각이 많아졌었다. 그래서 이 학원 저 학원 전전 긍긍하며 시행착오를 많이 겪기도 했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돼지맘’이라 불리는 그녀들과 조금은 다른 노선으로 가볼까 하고 감히 생각하고 있다.
큰 아이가 한국 트랙은 아니었지만, 해외 트랙으로 공부를 어떻게 해 왔고, 또 어떤 전략으로 성공했는지 경험해 봤기 때문에 핵심 근본은 같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모티베이션을 제공해 주고, 때가 되어 아이가 맘을 먹고 공부하기 시작한다면 ‘게임오버’라는 아주 추상적이면서도 단순한 원리를 적용하기로 말이다.
물론 한국트랙에선 안먹힐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성공했던 경험으로 나를 믿고, 또한 아이를 믿고 한 번 해 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무엇이든 본질이 중요한 것이니까. 물론, 아이가 맘 먹을 때까지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어야 하는 것이 관건일 수 있겠다. 마음을 먹고 시작할 때 불편하지 않도록 학습을 소홀히 시키지는 않을 예정이다. 단지, 불안 마케팅을 조성하는 학원가의 행태에 불응하겠다는 것이고, 어려운 공부 교재로 아이들을 질리게 하는 그런 방법으로는 공부를 안 시키겠다는 말이다.
그날엔 모처럼 멋진 레스토랑에 갔으니, 오랜만에 프랑스식을 먹고 온전히 즐겼다. 음식 앞에서 이런 고민은 예의가 아니니까. 나의 인생도 중요한 것이니, Carpe diem!!
p.s. 사실은 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마음 저 밑 구석에선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점심이었다는 건 안비밀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