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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고 Mar 26. 2023

학총룩이 뭐길래

대치동 엄마 학총룩

바야흐로 3월. 봄이 왔고 신학기가 시작 되었다.

코로나 발발 이후 3년간 멈췄었던 학부모 총회도 개최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론 대치동으로 흘러들어온지 만 3년이 지났으니, 이 곳에서 처음으로 가는 총회이기도 했다.

아침 저녁으로 큰 일교차에 지난 주와 확연히 다른 기온의 변덕으로 어떠한 구색을 맞추고 총회에 갈지 내심 신경이 쓰였던 건 당연한 일일지도..




지난 주 평일 저녁,

작은 아이와 문구점에 함께 다녀오면서 아이가 조용히 내게 건낸 한 마디의 말.


-엄마! 난 엄마가 꾸미고 다녔음 좋겠어.


초등 고학년의 딸아이. 한창 외모에 관심이 갈 나이이기도 하다.

더불어 지 또래의 엄마들보다 평균 5년이상(아주 최소로 잡은 캡일게다) 더 많은 나이를 먹은 엄마가 신경쓰이고 있을 게 분명했다.


퇴직 후, 어디 가서 타인의 '룩'을 굳이 볼 환경이 아니다 보니 더더욱 외모나 의상에 신경 쓸 이유를 찾지 못했었다. 아니 나는 원래 게으른 성격이라 말하는 편이 더 솔직하겠다. 멋도 사실 부지런해야 부릴 수 있는 게 아닌가.


아이의 갑작스런 그 한 마디는 근 몇 개월 만에 거울에 비친 나를 찬찬히 들여다 보게끔 만든 자극이 되었다. 날마다 거울은 보았지만, 거울에 비친 나를 제대로 관심있게 쳐다 본 기억은 없다.


오늘 보니, 머리는 뿌리 염색을 몇 개월 동안 안해서인지 반백의 새치들이 흉하게 올라오고 있었고, 양 볼 옆으로 올라오는 기미는 봄철 자외선 탓으로 색의 농도가 심하게 짙어지고 있었다.

화장을 안한 푸석푸석한 피부며, 질끈 하나로 묶은 헤어, 우중충한 색의 점퍼와 바지를 입은 내 모습이 오늘따라 참 낯설어 보인다.


당장 뿌리 염색부터 해야할 판이다.

요즘 뉴스에서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대고 있는 '학총룩'이란 것도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적어도 남들만큼은 하고 가야 딸아이에게나 나 자신에게 당당하지 않을까.


염색은 미용실을 예약해 두었고, 옷장을 열어 가지런히 걸려있는 옷들을 찬찬히 스캔해 보기 시작했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옷을 찾아야 한다. 몇 번이고 옷들을 훑어 봤지만, 선뜻 손이 가는 옷이 없다. 옷 가지 하나 하나는 참 좋은 옷들인데, 상의가 괜찮으면 매칭이 되는 하의를 못찾겠고, 괜찮은 하의를 집으면 그에 어울리는 상의를 골라내지 못하고 있으니, 뭘 입어야할지 참으로 고민스러웠다.


그렇다고 회사 다닐 때 입던 정장을 입고 가는 건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가는 것보다 더 어색할 것 같았다.


결국 몇 종류의 매치한 의상을 결정하지 못한 채 고민만 하다가 당일에 다시 선택하기로 하고 옷장을 닫았다.



학부모 총회 당일,


뿌리 염색은 며칠 전 했어도 숱이 없고 힘없는 나의 헤어가 영 신경이 쓰였다. 여자는 머리결과 피부만 좋아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둘 다 사정이 참 쉽지가 않다. 어쩔 수 없이 가까운 미용실에 가서 드라이를 하고 가기로 했다.


오늘따라 미용실에 드라이하는 여자들이 많다. 딱 보아도 총회에 가려는 엄마들이 분명했다.

요즘 2~30대 젊은 애들처럼 어떻게 저 길이까지 길렀을까. 잠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드라이로 완성된 탱탱한 헤어컬은 나같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물론 저런 여자들만 오는 건 아닐거라며, 힘없는 나의 머리결을 위로했다.


결국 오늘 내가 완성시킨 학총룩은 수년 전, 내 수준에 조금 과하게 돈을 쓰며 질렀던 맞춤복 검정 정장 자켓에 하의는 아방가드르 진청 스커트였다. 너무 정장스럽지 않지만, 그렇다고 후즐건 하지 않은 패션이라 자평했다. 악세사리는 구찌 쥬얼리를 겸했다. 그런데 문제는 가방이었다. 지난 번 학총룩을 고민하면서 패션의 완성인 가방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못했던 것이었다.


얼마전 뉴스에 학총 명품 가방으로는 샤넬이 과하다면서 구찌 정도로 추천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었는데, 옷장 안에 나의 가방 중 괜찮은 명품은 죄다 유행이 지난 빅백(Big bag)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저 큰 가방을 이고 가는 것은 우스꽝스러워질 게 분명했다.

그러다가 지금 의상에 딱 맞는 가방이 생각났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엄마의 유품 중 특이한 모양의 검정색 발리 백이 딱이었다. 신발은 편한 검정색 로퍼를 꺼내 신었다. 가방을 고민하며 보낸 시간 탓에 공개 수업까지 10분 밖에 남질 않았다. 부지런히 학교를 향해 걸어가야만 했다.


아파트 이 동 저 동에서 나름 빼입은 엄마들이 나오고 있었다. '또각또각'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구두소리. 대부분 미용실에 다녀온냥 멋드러지게 모양을 한 헤어컬. 정장스러운 블랙 위주의 의상들. 그런데 집중적으로 눈이 간 건 결국 가방이었다.

샤넬, 에르메스, 디올 등등..

누가 샤넬이 과하다고 했던가 싶을 정도로 샤넬 가방이 물결쳤다.

학교 정문이 가까워져 올 수록 엄마들의 의상과 가방이 내 눈에 정신없이 들어왔다.

간혹가다 보이는 '코치' 브랜드는 오히려 눈에 띌 정도였다. 에르메스의 버킨백과 켈리백도 많이들 들고 왔다.

아까 미용실에서 부러움의 눈빛으로 쳐다봤던 그 탱탱하고 긴 머릿결의 엄마도 보였다. 제각기 한껏 신경쓰고 나온 엄마들이다.


참나. 학총룩이 뭐길래..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지역을 막론하고, 당연히 외양을 신경쓸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오감 중 80%이상이 시각에 의존한다고 하니, 당연히 외모가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다.

특히나 아이가 세상의 중심인 엄마들 입장에선 오랜만에 학교 총회에 오면서 한껏 모양을 내고 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너무 과해서 필요 이상의 소비를 지향하게 된다거나 오로지 외양으로만 평가가 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현재 본인의 상황에서 가장 최선을 다해 갖추고 오는 행태에 대해 학교 총회의 의미가 퇴색되었다느니, 엄마들의 사고 방식이 문제라느니 말하며 부정적인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곳 대치동에선 평소 지나치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검소한 편이다. 대개가 평범한 점퍼에 편한 바지를 입고 무언가 바삐 걸어가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오늘 같은 학교 총회날 이렇게 반듯하게 꾸며 차려 입은 모양새가 사뭇 신선해 보이기까지 한다. 가끔씩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 날 저녁,

딸아이는 내게 와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엄마! 난 오늘 엄마가 이세상에서 최고로 멋져보였어!


그래. 그거면 되었다.

내 아이의 눈에 자신의 엄마가 멋져 보였으면 그것으로 오늘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음을 자축했다.

올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핵이슈 '학총룩'!

나에게 학총룩은 무사히 아이의 좋은 평가로 통과된 것인가. 생각할수록 입가에 미소가 나오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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