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넷 - 가난 속에서도 삶의 꽃을 피우는 사람들
마더 테레사 수녀는
굶주린 이웃에게 나눠줄 식량을 챙겼습니다. 자녀가 여덟이나 되는 힌두교 가족이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쁜 걸음으로 힌두교 가족의 집에 도착한 '마더 테레사 수녀'(이하, 마더)는 가난에 지친 여인에게 식량을 건넸습니다. 여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더니 건네받은 식량의 절반을 들고는 잠깐 다녀올 때가 있다면서 집 밖으로 나섰습니다. 집을 나선 여인은 며칠 굶은 탓에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마더는 집으로 돌아온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디를 그렇게 급히 다녀오십니까?”
“우리처럼 굶고 있는 이웃에게 다녀왔습니다.”
마더는 여인이 들려준 이야기에 가슴이 울컥거렸습니다. 힌두교 여인이 마더가 준 쌀의 절반을 나눈 이웃은 이슬람교 인이었습니다. 그 이웃 또한 여덟 명의 자녀가 있는데 돈이 떨어지면서 자신들처럼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입니다. 그녀는 굶주림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특히,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먹이지 못하는 어머니의 고통과 슬픔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굶주린 소식을 알고도 모른 척할 수 없어서 쌀의 절반을 나눈 것입니다.
마더의 가슴이 미어진 것은 힌두교 여인의 행동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녀의 어린 자녀들은 몹시 야위어 있었습니다. 야윈 얼굴에는 굶주림에 지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움푹 팬 퀭한 눈빛으로 무엇인가 말하는 굶주린 아이들, 고통 속에서도 빛나는 무엇인가를 발산하는 아이들을 보고 돌아온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예수가 한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나는 어린 자녀들의 얼굴을 도무지 형용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야윈 얼굴에는 고통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은 배고픔 때문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떠나올 때, 그들의 눈은 기쁨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와 자녀들이 자신들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밤하늘 별보다
더 반짝이던 누나의 눈물
밤하늘의 별과 달리 사람의 눈은 아무 때나 반짝이는 것 같지 않습니다. 탐욕에 찌든 사람의 눈은 반짝이지 않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람의 눈 또한 반짝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눈은 어떤 때 기쁨으로 반짝일까요?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눌 때,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때, 내 부모 형제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질 때…. 가난한 부모 형제를 위해 희생한 누나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생각납니다. 이름 모를 그 누나는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70년에 만난 109번 상마운수 버스 차장이었습니다. 그 누나가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몇 학년이니?”
“저, 3학년입니다.”
“너 참, 착하게 생겼구나!”
“…….”
“시골에 있는 내 동생하고 많이 닮았구나!”
“…….”
“이름이 뭐니?”
“네…, 호진이라고 합니다!”
버스는 영등포 로터리와 양남동을 지나 오목교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몇 정거장만 더 가면 109번 상마운수의 종점인 신정동 차부(車部)에 도착합니다. 승객들은 거의 다 내렸습니다. 자주색 베레모를 쓴 차장 누나는 순진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했고 어리바리한 저는 더듬거리면서 겨우 대답을 했습니다. 그 누나가 제 상고머리를 쓰다듬어주었습니다. 버스가 종점에 도착하자 차장 누나는 제 손을 잡고 내린 뒤에 제 앞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호진아, 누나가 용돈 줄게!”
“…….”
“내 동생 같아서 주는 거니까 괜찮아! 어서 받아!”
“감, 감사…합니다!”
“다음에 누나 버스 타면 차비 내지 말고 그냥 타~!”
차장 누나는 용돈(얼마를 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을 주면서 저를 동생처럼 꼭 안아주었습니다. 누나의 따뜻한 품에 안겼던 저는 수줍은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섰습니다. 돌아섰다가 다시 돌아보고 돌아보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누나는 고향 동생과 헤어지는 것처럼 저에게 손을 흔들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저도 눈물 흘릴 뻔했습니다.
그 이후, 그 누나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날은 노점상 아버지가 영등포시장에서 냉면을 사주신 뒤 버스 타고 집에 가라면서 차비를 주어서 특별하게 버스를 탄 날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제가 살던 안양천 둑 판자촌에서 4km가량 떨어진 서울영남초등학교까지 걸어 다녔습니다.
차장 누나는 가난 때문에
상경했을 것입니다.
차장으로 일해서 번 돈을 시골의 가난한 부모님에게 부쳤을 것입니다. 차장 누나가 남루한 옷차림의 저를 안아주면서 용돈을 준 것은 가난한 동생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내 또래의 어린 동생이 그리워 눈물 적신 날이 몇 날 며칠이었을까요. 타관객지 모진 설움을 사무친 그리움으로 달랜 날이 얼마였을까요.
이름도 성도 모르는 차장 누나는
가난한 가족을 위해 희생했습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그것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기쁨으로 감내한
그 누나의 눈물은 밤하늘 별빛보다 더 반짝였습니다.
그 누나는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요?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빛나는 행복한 별에게
삶의 짐은 무겁습니다.
잘 진다고 해도 무겁습니다.
나의 짐도 이리 무거운데 어떻게 이웃의 짐까지
나눠질 수 있을까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나만 살면 된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척박한 땅에서 아픈 삶을 나누고,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그대는 아픈 사람, 살림이 넉넉지 못해 일당벌이로 자식을 키우는
한 부모인데도 미혼모의 손을 잡아주는 그대의 가슴은 옥토(沃土)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거기에 렙돈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가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저 사람들은 넉넉한 가운데서 자기들의 헌금을 넣었지만, 이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
그대는 일당벌이가 끊겼는데도 후원금을 보내셨지요. 미혼모의 딱한 사정을 보고 모른 척할 수 없었던 거지요.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그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자기도 아프면서 아픈 미혼모의 손을 잡아주시는 그대, 자기도 살기 힘들면서 더 힘든 미혼모를 위해 후원금을 증액해주신 그대여 고맙고 미안합니다. 삶의 캄캄한 밤길을 걸으면서도 슬픔과 고통에 끌려가지 아니하고 고난 중에 행복한 별이 되어 밤길 비추어주는 그대로 인해 남루한 인생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그래서 그대의 거룩한 일당 앞에 시 한 편 바칩니다.
자신도 아프면서
아픈 이웃을 위해
사랑을 주시는 그대
자신도 살기 힘들면서
더 힘든 미혼모를 위해
일당을 떼어주시는 그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삶의
무거운 십자가 고통 때문에
심신의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아픔 대신 사랑을 나누는 그대
그대로 인해 척박한 자갈밭이
인생 꽃 피울만한 옥토가 됩니다
사랑했으므로
행복한 별 하나
반짝반짝 빛납니다
(조호진 시인의 ‘거룩한 일당’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