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에 피아가 괴물밴드로 자리매김했다면 2010년대에는 다른 동료 밴드들과 협업하는 일이 많았다. 피아의 음악을 보고 듣고 자란 많은 신예 뮤지션들이 협업 콜을 했고 피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후배들의 사운드를 기꺼이 채우고 있었다.
특히 2012년부터 본인들이 주최한 공연 'A.B.B.D'에서 동료 뮤지션과 무대를 공유하고 공연 수익금으로 연습실을 무료로 대여해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본인들과 함께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사실 나도 잠깐 이 무대에 서는 터무니없는 꿈을 꿨.....)
올해 10월, 클럽 브이홀에서 마지막 단독 공연이 있을 예정이었다. 그동안 어디 숨어 있었는지 해체 소식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마지막 공연은 더 큰 곳에서 해야 하지 않냐는 우려가 있었다. 사실 나는 최근의 공연을 생각하면 브이홀도 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날 비웃듯 그들은 더 큰 곳에서 무려 이틀간 마지막 공연을 하기로 결정했고 이미 대관해둔 브이홀에선 마지막 ABBD를 열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 이틀간의 마지막 공연은 모두 매진이 되어 나의 우려는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었음이 증명됐다)
이승환, 더베인, 에브리 싱글데이, 코인 클래식, 로맨틱 펀치, 크라잉넛이 함께했다. 특히 피아와 비슷한 시기에 부산에서 시작한 팀인 에브리 싱글데이를 보니 너무 반가웠다. 촛불 집회 때 광화문에서 노래하는 것을 본 이후 처음이니 꼭 3년 만이다. 명절날 만난 어렸을 때 친한 삼촌 같았다. 함께 탑밴드에서 결승을 겨루던 밴드 로맨틱 펀치의 보컬 배인혁은 노래를 부르다 뜬금없이 눈물을 흘렸고 20여 년을 같이 달려온 크라잉넛은 서로가 서로를 외국 밴드로 여겼을지 모를, 피아를 처음 봤던 그때를 회상했다. 본인을 '홍대에서 활동하는 최고령 가수'라고 소개한 이승환은 자진해서 오프닝을 하며 이렇게 일침 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보여줬던 한국 록씬과 밴드 씬의 헌신, 노력을 모두 가상히 여기고 또 안타깝게 여기고. 어쩔 수 없는 우리네 음악 씬.. 제 노래도 엄청난 돈을 들여서 앨범을 만들었지만 저 지금 멜론 차트 250위.. 요즘 뭘 할 수가 없어요. 이 가요 씬에서는 아무리 음악이 훌륭해도 오히려 차트에 오르지 못하면 음악을 못하는 놈으로 취급을 받기 때문에, 제가 30년을 하는데도 이렇게 늘 가슴 한켠이 무겁고 언제라도 은퇴를 생각하는 매일매일을 지내고 있는데 록음악을 그렇게 외롭게.. 그것도 이렇게 너무 잘하면 표시가 잘 안 나요. 대충 잘해야지. 더더욱 안타깝지만 여러분들은 그들을 놓아주어야 합니다....(중략)... 여러분들도 보아하니 거의 우리 팬들 연령대와 다르지 않아 보여서 분명 두 시간쯤 지나면 골골거리기 시작하면서 아이고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
출처 : 인스타그램 계정 'pia_gram_'
https://instagram.com/pia_gram_?igshid=nku1tps9rghu
동료들 뿐 아니라 각종 페스티벌에선 피아에게 헤드라이너로써 마지막 무대를 장식할 수 있는 영광을 선물했다.
- 강원 록 페스티벌 메인 무대 헤드라이너
- 펜타포트 서브 무대 헤드라이너
- 그린플러그드 경주 서브 무대 헤드라이너
- 부산 사상인디스테이션에서 주최한 'Adiue PIA‘
이외의 많은 페스티벌을 종횡무진하며 다신 없을 무대들을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참고로 2000년에 1회를 시작으로 하여 올해 20회를 맞이한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에는 올해를 포함하여 총 8회 출연, 역대 최다 출연 아티스트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공연 ONLY THE YOUTH BURNS. 그동안 봐온 피아의 무대 중 정말로 최고였다. 이 말 밖에 할 게 없다. 말 그대로 내일이 없는 공연을 완벽하게 마치고 그들은 무대를 떠났다.
"우리가 과정을 살아오면서 그 누구도 성공한 인생이고 그 누구도 실패한 인생이라고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결과, 오늘 공연이 피아의 어떤 모습이다 라고 절대 얘기할 수 없고 그동안 여러분과 같이 이뤄왔던 그 과정, 그 순간들이 결과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 라는 것을 이번에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중략)... 지금 우리 인생 이 과정 중에 있는 이 순간을 닥치고 즐깁시다. (중략)... ONLY THE YOUTH BURNS는 지금 당장 오늘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 청춘들을 위한 마지막 공연 일진 몰라도 우리 인생을 살고 있는 한 과정입니다. (중략)... 우리 강물이 흐르듯이 그대로 내버려 둡시다."
- 보컬 옥요한의 멘트 중 -
"올해 이렇게 해체를 발표하고 이렇게 여러분들과 얘기도 하고.. 갑자기 어떤 사고로 우리가 그만하게 됐을 때, 만약에 심지(F.X, 건반)가 노상방뇨로 경찰서로 잡혀가서 활동을 못한다던지 이런 일이 있었던 것보다는 슬프지만 이걸 교감하고 올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 베이시스트 김기범의 멘트 중 -
맞다. 가장 슬프지만 또 기뻤던 점은 일찌감치 해체를 알리고 9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할 기회를 나누었던 것. 또 각종 공연에서 내일이 없는 라이브를 여한 없이 즐길 수 있게 한 이들의 행보가 존경스러웠다. 막상 마지막 무대가 끝나니 너무 허망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옥요한의 말처럼 강물이 흐르듯 그 아픔도 그냥 내버려 두며 지난 시간들을 곱씹으며 조용히 버텼다.
독보적인 인지도를 가진 한 명의 프런트맨이 이끄는 팀이 아닌, 다섯 명이 각자 맡은 포지션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 말 그대로 피아(너, 나, 우리)였던 밴드. 이제는 과거형이 되었다.
얼마 전 1990년대에 전 세계에 R&B열풍을 불게 한 미국의 보컬 팀 보이즈 투맨이 내한했다. 공연 중 한 멤버가 관객들의 플래시 이벤트에 울고 말았다.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들의 사랑 노래를 듣길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반겨주니 감격이 복받쳤다고 한다. R&B열풍이 지나가자 그들은 라스베이거스 등지의 클럽을 전전하며 계속해서 공연을 해왔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홍대 클럽 이상의 규모겠지만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퇴물 취급을 받으면서도 버텼고 이제 다시 희망을 얻었다고 한다.
사회는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고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내가 살고 있는 이 방식, 강물이 흐르는 대로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것. 이것을 피아의 해체와 맞물려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잘 버텨왔고 정말 잘 살아왔다고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칭찬해주고 싶었다.
피아는 물론, 너도 나도 우리도.
출처 : 유튜브 채널 'SOUTH KOREA R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