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쌀밥, 국, 김치가 있는 정통 한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밥'이 먹고 싶었다. 가는 길에 있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자 하고 길을 나섰다.
꽤 오래되었다는 생선구이집 앞에서 서성 거렸다.
- 한 명도 돼요?
- 네 들어오세요.
삼치구이 하나를 시켰다.
낡은 벽에는 코팅된 연예인 싸인이 빼곡히 붙어 있고 벽과 천장이 마주하는 코너에는 선풍기가 곧 떨어질 것처럼 매달려 있었다.
배추김치, 데친 미역과 초장, 오이소박이. 정말 오랜만에 마주하는 반찬이다.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옆 테이블에 무거워 보이는 큰 솥을 놓으시더니 자리를 잡고 갓 지은 밥을 주걱으로 휙휙 젓고 산처럼 쌓인 밥공기에 본격적으로 밥을 하나 둘 담으신다.
- 제일 먼저 줄게.
가장 먼저 담은 밥을 주셨다. 악의 축으로 규정한 정제된 탄수화물인 하얀 쌀밥이다. 이렇게 갓 지은 쌀밥을 먹어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주머니는 빛의 속도로 밥공기들을 바삐 채웠다. 오랫동안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던 나의 엄마도 하루 종일 저렇게 일을 했겠지. 가난 속에서 자식새끼들 먹여 살리겠다고 그랬겠지. 저렇게 떨어질 것 같은 선풍기 밑에서.
- 그러게 뭐하러 그런 데를 끼어가서 그런데. 하여튼 극성이야 극성.
- 꼭 남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해외를 그렇게 끼어들 가지. 쯧쯧.
헝가리에서 발생한 대형 인명 사고 뉴스를 보며 나누는 아주머니들의 대화에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불쾌한 기분에 사로잡혀 하루를 그르치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 반박도 했겠지만 이젠 더 이상 화도 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 고등어는 1인분에 한 마리인데 삼치는 반 마리에요.
꾸덕꾸덕하게 구워진 삼치가 길게 반토막이 되어 나왔다.
- 잘라 드릴까요?
- 네
공손히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생선이 다 잘라지기를 기다렸다.
유독 생선 요리를 많이 했던 나의 엄마의 영향으로 생선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다른 육고기 보단 소화하기에 부담이 덜하고 그 특유의 비릿함이 고소하다. 껍질만 먹어도 고소하고 대가리 살을 바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방문을 여니 침대 위에 슬픔이 누워 있었다는 9와 숫자들의 평정심을 무한 반복하며 길을 나섰다. 건강식만 들어가던 위 속에 김치, 쌀밥, 삼치가 두둑이 채워졌다. 왠지 오늘은 커피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따로 오메가 3도 안 먹어도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