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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가면을 쓴다

2023.05.06. 토로하다 제 6장

by 토로

예전에 썼던 글을 찾아보다가 차분하고도 냉정한 지금 내 시야에 이 글이 꽂혔다.


작년, 세시에서 4월 이달의 사물이 '마스크'였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이 음악이었지만 필자가 맡은 카테고리의 순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글을 쓰지 못했다.


그 음악에 대해 글을 쓰지 못한 아쉬움이 짙어 블로그에 잠시 적어본다.


헤르쯔 아날로그 - 작정하고 가면을 쓴다

작정을 하고 가면을 쓴다

울고 있는지 웃는지 모르게

아무도 나를 보지 않을 때

상처 위에 덮는다

남겨진 문도 마저 닫는다


답답함 속에 숨이 막혀도

낯설게 닿은 등이 배겨도

웃음 뒤에 숨는다


길고 긴 한숨 틈 사이로

텁텁한 미소가 섞이고

낡고 해진 가슴만 남은 날 위해, 날 위해..


작정하고 가면을 쓴다

상처 입은 내가 웃는다

머물 곳 없는 그 눈물을

다시 한번 삼키고

또 작정하고 가면을 쓴다


멀어진 날 다시 잡는다

쓰라린 빈 웃음 뒤에

흐트러진 날 거둔다


노래의 1절이다.


마스크라는 사물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가면'이었다.

가면은 편리하다.

상황에 맞게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쓰고 벗으면 된다.

가면을 쓰고 '척'을 하면 된다.​

그러나 가면은 '척'에 불구하다는 사실을 까먹곤 한다.

가면이 피부가 되어줄 수는 없다.​


최근에는 순수한 본인이 아닌 가면을 쓴 모습이 진짜 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많이 보았고, 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이 부분을 꼬집고 싶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처음 생각이 났던 건 융의 '그림자 이론'이다. 인간의 이면 속에는 항상 그림자가 있다는 이론이다. 표면적인 가면이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그림자는 더욱 진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내면에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그 그림자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따라 자신을 생각하는 가치관에 차이가 생기는 것 같다. 극단적으로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이중인격의 상황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떤 이는 내면의 상처를 가리기 위해 밝은 모습의 가면을 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연약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강한 모습의 가면을 쓰기도 한다.


헤르쯔 아날로그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상처를 가리기 위해 괜찮은 척하는 가면을 쓴다고 한다.

나 역시 몇 개의 가면을 가지고 있다.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상대에 따라 썼다 벗었다를 반복한다.


중요한 건 내 안의 그림자를 그림자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담담함이지만 내 뒤를 꼭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싫어 빛을 피해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스스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진하게 스며온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를 위해 가면 속에 항상 숨어버리는 본인을.

이제 숨좀 쉬자. 가면 뒤에 가려 답답했을 나 자신을 위해 숨통을 터주자.

내 안에 잠식되어 있는 문제에 내가 잠식되지 않길 바라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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