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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유배일지] 정직한 사람

43일차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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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


과속방지턱을 넘는 순간에도 비겁한 감속 따위없는 730번 버스를 타고 제주시를 떠나고 있다. 방지턱을 넘는 타이밍 맞춰 엉덩이를 들썩여야 해서 잠들새도 없이 남조로를 통과한다. ㅅㅎㅇ형이 추천해줬던 시즌박스의 고로케를 먹으려고 상원동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딱 오늘부터 11월 중순까지 휴가를 떠나셨단다. 그냥 집까지 걸어가서 점심을 먹어야하나 싶었는데 ㅂㅈ님이 알려줬던 여행자 카페가 생각나서 배부른 차를 마실 수 있길 기대하며 들어갔다.


신기하게 생긴 메뉴판에서 카레우동을 찾았다. 사장님은 고기가 안들어가는데 괜찮겠냐고 걱정스럽게 물으셨고 나는 아쉬운 티를 안내려고 최대한 노력하면서 괜찮다고 했다. 조용한 음악이 나오는 카페 안에서 차분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두리번 거리고 있다. 고양이는 난로 옆 의자 위에 올라가 꼼꼼하게 세수를 하고 있고 사장님은 우동면을 삶으면서 잠깐잠깐씩 휘파람으로 카페 안 음악에 화음을 넣고 계신다. 파프리카와 유부를 가득 품은 카레우동이 나왔다. 사장님은 내가 국물까지 남김없이 비운 걸 보시곤 밥이 있으면 한 그릇 줄텐데 다 떨어져서 아쉽다고 이야기하셨다.


'식어버린 코코아색'의 짜이가 나왔다. 한 주전자가 나와서 조금씩 덜어마셨다. 무슨 이야기로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저런이야기를 거쳐 지금은... 세상에 정직한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장님이 이야기하신 '정직한 사람'이라는 말이 내게는 적어도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람이라는 말로 들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내 삶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사람을 늘리느라 능력 이상의 힘을 빼고 있는 내게 딱 맞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달리기를 하고 씻었는데 스탭동생이 자고 있다. 오늘 밤에 알바 갔다가 아침 비행기로 육지에 며칠 다녀온다는데, 집가기 전까지 밥을 하다가 가면 서러울 것 같아서 조용히 참치김치찌개를 끓인다. 네이버 레시피대로 김치의 신맛을 잡아준다는 설탕을 한 스푼 넣었는데 흠 우리 김치는 그냥 먹어도 신 맛이 안 난다... 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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