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일차
2016. 12. 12.
영화 <광해>를 보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잠깐 멈춰놓고 볶음밥을 했다. 굴소스는 적당히 넣었는데 손을 부들부들대다가 간장을 콸콸 쏟아버려서 밥을 한 덩어리 더 넣어서 볶았다. 장작이 불에 타듯 밥알이 타닥 소리를 낼 쯤 불에서 꺼내 넓은 그릇에 담았다. 담고도 아직 수북한 밥을 보니 점심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밥을 먹으며 영화를 마저 보다가 산책을 다녀왔다. 산책길엔 콜라비와 무우가 굉장히 많다. 이 동네에서 유명한 거란다. 콜라비는 양배추와 무를 교배시킨 식물이라는데 정말 엄마, 아빠를 골고루 닮은 것 같다. 오늘도 산책길엔 드문드문 '하하호호허허' 들이 쌩하고 지나갈 뿐 사람을 찾아보긴 힘들다. 언덕위엔 올라가지 않고 잠시 바다만 보고 서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낮잠을 자는데 어떤 아줌마가 나를 깨운다. 들어오시는 소리도 못 듣고 잠에 취해있다가 힘겹게 눈을 떴다. 자신의 몸 만한 배낭을 업고 계신 아줌마는 당장이라도 한라산에 가실 수 있을 것 같다. 하루 묵겠다고 하시면서 방이 어디냐고 묻는다. 저희는 방이 아니라 텐트에서 주무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텐트 문을 열어 안을 스윽 둘러보시더니 매트리스도 없냐며 한숨 쉬신다. 매트를 깔아놓긴 하지만 침대에서 주무시는 느낌은 아니실 거라고 이야기 했다. 아줌마는 돌아서서 나가셨고 30분 뒤에 다시 오셨다.
이번엔 여긴 옷걸이 없냐고 말씀하시길래 '잠시만요' 라고 말씀드리고 옷걸이를 가지러 간다. 가지러 가고 있는데 무슨 옷걸이도 없냐면서 등 뒤에다 말씀하신다. 아니 옷걸이 가지러 가고 있는데!!! 왜왜왜!!! 라고 하려다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조금 침착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쉽지 않은 상대가 나타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