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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Oct 10. 2022

다시 한번 새가 되어 날으리

가을에 찾아온 청춘...

               다시 한번 새가 되어 날고 싶어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 하늘에 한 마리 매가 날아온다. 그다지 몸이 가벼워 보이지는 않은 거 같다. 예전의 그 날렵했던 몸매도 아니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깃털도 이제는 빛이 바래지고, 검었던 머리털이 어느새 하얗게 변색된 얼굴에는 긴 세월을 쉽지 않게 건너온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젊은 피가 뜨거워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원하면 무엇이든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절... 어쩌면 세상모르고 살았던 그 시절이 차라리 그리워지는 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지쳐서 그런 건 아닐는지...


  거리에 떨어진 낙엽처럼 작은 바람에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무게를 잃어버리고 휩쓸려가는 모습이 문득 나를 돌아보게 한다. 아, 나의 계절에도 벌써 가을이 찾아왔는가 보다...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뜻을 가지고 살려고 했다. 누구나 삶의 목표가 있을 것이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간다. 물론 뜻대로 다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세상은 그런 게 아니니...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지만, 그래도 그때는 뜻대로 될 줄 알았다. 가슴속에 열망이란 게 있었으니까...


  서른 해가 훌쩍 지나서, 이제는 장년을 지나는 60대가 되어버려 여기저기 삐거덕거리기 시작하고, 가늘어져 가는 머리에 하얀 눈발이 날리고, 팔딱거리던 심장도 이제는 툭, 툭, 툭 힘없이 느려져가고, 하나 둘 본의 아니게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가을날... 송골매가 돌아온다고... 나의 청춘 시절에 빛나게 하늘을 날아다녔던 송골매가... 늙은 송골매가 되어 날아온다고 했다.


  아마도 마지막 공연이 될지도 모르니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슬며시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아내에게도 이미 마음속에 점찍어두었던 공연이 있었는데, 나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송골매 공연 티켓값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뭐, 평소에 U-Tube에서도 자주 듣기도 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송골매 노래를 들을 수 있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제대로 노래나 할 수 있으려나... 다 늙어서 중늙은이의 모습을 보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서 가는 게 맞을는지... 사실은 매표 일까지 마음이 이 빠진 동그라미처럼 내내 덜컹거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음이 넓어지고, 생각이 대범 해지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은 가 보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 아무래도 이건 사치인 거 같아... 뭐, 공연 하나 안 본다고 사는데 지장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다른 거 보면 되지... 여우가 손이 닿지 않는 포도를 올려다보며, "저건 분명 신 맛이 나는 포도일 거야..."라고 말하듯이 우리도 핑계를 찾으며 결국 소심한 마음을 확인했다. 


  다음날, 아이들에게서 공연 티켓을 끊었다고 연락이 왔다. 역시 젊은 마음이 늙은 마음보다 더 큰가 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우리 때와는 많이 달라진 거 같다. 이런 게 세대차이라 하는가... 티켓을 두고 공연 전날까지 옥신각신 하다가 젊은이들의 힘에 밀려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된 10월의 첫 휴일에 우리는 기대에 들뜬 마음을 품고 20대의 그 시절을 찾아갔다.


  얼룩무늬 교련복에 가짜 총을 들고 운동장에서 사열하던 모습, 카세트 플레이어가 씹어 풀린 테이프를 볼펜으로 돌돌 감아 밤새 음악을 듣기도 하고, 음악다방에서 내가 신청한 노래가 언제 나오려나 DJ만 노려보았던 시간들, 디스코텍에서 잘 추지도 못하는 디스코를 막춤으로 젊음을 불살랐던 기억, 나만의 그대를 만들기 위해 대학가를 쏘다니며 혹시라도 어쩌다 마주치지나 않을까 눈을 씻고 쳐다봐도 만날 수 없었던 그녀... 인연이란 따로 있었나 보다... 그녀를 알아보는 데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열정이 젊은이들에게는 삶의 에너지원이었던 거 같다. 


  열심히, 젊은 대학생답게 청춘의 낭만을 즐기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게을리하지도 않았다. K문고나 J서적 교양 코너 책꽂이 아래 걸터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지기도 하고, 졸업 후 진로를 위해 도서관에서 코피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 부지런히 공부도 했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한창 산업이 번창할 때였으니 지금보다는 취업의 문이 넓었다. 요즘 대학생들의 삶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용돈과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직 공부를 하러 종일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고, 소위 철밥통이라 하는 공무원 시험을 위해 휴학까지 하며 노량진에서 고군분투를 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지는 것 같다.


  공부하기 싫은 사람, 학교 가기 싫은 사람, 직장 가기 싫은 사람 모두 모여라~ 같이 놀자~ 요즘 이런 노래를 부르면 아마도 눈총 꽤나 받았겠지만, 그래도 살면서 지치고 힘들 때나 스트레스 쌓이는 날에는 함께 모여 소리치고 큰 소리로 소위 떼창을 부르는 것도 차라리 기분전환에 좋은 방법이 아닐는지... 새로운 기분과 마음으로 다시 도전해 볼 용기가 나지 않을까? 


  추억의 시간을 찾아온 팬들은 대부분 그룹사운드 송골매와 같은 세대다. 같이 젊었었고, 같이 늙었다. 젊음과 낭만이 가득했던 대학시절이 끝나고 산업의 역군으로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느라 가슴속에 품었던 열망을 하나, 둘 접어두어야 했다.


  청계천 상가를 돌아다니며 사 모았던 빽판도 이사를 할 때마다 어딜 갔는지 점점 사라져 갔고, 가끔씩 꺼내 그 시절의 그리움을 달래 보던 통기타는 창고 방구석에서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채 기나 긴 잠에 빠져들었다. 꿈에서 깨어나 만만치 않은 현실 속에서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하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그대는 나는 가슴 뛰며 바라보던 연인이 아니라, 더 나은 생활과 자식의 교육을 위해 한 푼, 두 푼 아껴야 하는 부모가 되었다. 다들 그렇게, 별다르지 않게 살았을 게다... 보통 사람이라면 말이다...


  살다 보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자리를 빼앗길 때도 있다. IMF 시절,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거나 경제적 파탄으로 힘겹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했다. 작고 초라한 등을 타고 흐르는 빗물은 분명 가슴속에서 넘쳐흐르는 가장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역시 나이는 속일 수가 없는가 보다. 열심히 연습을 했겠지만, 20대의 힘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함께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의 귀도 역시나 20대가 아니었으니 상관없었다. 무대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가수나 객석에서 "오빠~"라고 소리치며 환호하는 팬들의 마음은 벌써 젊은 20대로 돌아가 있었으니... 드럼의 웅장한 음향이 쿵쿵 심장을 울리고 있었다. 온몸의 살결이 부르르 떨리는 듯했다.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를 젊음의 시간으로 되돌려 놓았다. 야광봉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을 타고 위로 솟구쳐 오르는 듯했다. 어느새 젊은이로 되돌아간,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로 불리는 초로의 신사, 숙녀 여러분들이 무대 앞에서 몸을 흔들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을 가리고, 일상에 지친 마음을 숨기고 여기 우리를 위해 펼쳐진 마당에서 신명 나게 한바탕 탈춤을 추고 있었다. 그동안 마음 저 밑바닥에 깊숙이 숨겨두었던 청춘의 추억과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힘겨운 삶의 현장 속에서 꾹꾹 눌러왔던 자신의 본모습을 마음껏 내뿜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한번 새가 되어 날고 싶을 게다. 저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싶을 게다. 이제는 날개에 힘이 떨어지고, 다 낡아빠진 노구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빛나는 청춘이었으니...


  비록 세 시간의 공연이었지만, 30여 년의 긴 공백을 메우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많은 공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가수와 관객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생각과 느낌이 같아진다면 그것은 분명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을 게다. 그만큼 공감이라는 것은 우리들 삶에 힘을 주고, 절망에 빠진 이에게 용기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룹 송골매가 걸어왔던 길이 우리들이 걸어온 길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알고, 모두 '그래... 나만 힘들게 산 것이 아니었어... 다들 그렇게 질곡의 세월을 살아왔구나...'라고 지나온 시간들을 스스로에게 위로하고, 인정해주고, 자신의 삶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이 조금은 생겨나지 않았을는지... 다시 한번 힘을 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추억의 시간이 끝나고 ,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내는 공연을 보러 오기를 잘했다고 말했다. 아직도 가슴이 뛰는 것 같다며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새장에 갇힌 새가 문을 열고 자유를 찾아 바깥세상으로 날아가려는 듯이... 나는 가만히 아내의 따뜻한 손을 꼭 잡았다.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하리~~~


  흥을 거리는 아내의 작고 따스한 노랫소리가 차갑고 어두운 가을 밤하늘로 가만가만 퍼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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