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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Oct 03. 2021

[동화]  괴물사냥

나의 창작동화


               괴물사냥



  어두컴컴한 골목을 헤매고 있습니다. 아무리 찾아 보아도 계속 같은 길만 나타납니다. 등 뒤에서는 아직도 괴물이 따라 오고 있습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달리고 있지만 점점 힘이 빠지는 것 같습니다. 


  나를 따라 오는 괴물이 소리를 지릅니다. 꼬불꼬불 골목길은 점점 좁아져 갑니다. 자꾸만 발걸음도 무거워 지는 것 같습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려 보지만 금방이라도 괴물이 등 뒤에서 덮칠 것만 같습니다. 


  깜깜한 하늘에는 별도, 달도 없습니다. 갚자기 눈 앞이 콱 막혀옵니다. 막다른 골목입니다. 나는 더 이상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숨을 헉헉 몰아쉬며 뒤를 돌아다 봅니다. 괴물은 내가 더는 도망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천천히 다가옵니다. 


  괴물의 쭉 찢어진 두 눈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습니다. "킬킬~"하고 기분나쁜 웃음소리가 흘러 나오는 입 안에서는 뱀 한마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습니다. 괴물의 머리에는 반사경이 매달려 있고, 한 손에는 커다란 주사기가, 다른 한 손에는 날이 시퍼런 칼이 들려져 있습니다. 괴물이 입고 있는 하얀 옷은 바람도 불지 않는데 저 혼자 펄럭이고 있습니다. 


  "우하하하! 어딜 도망가려느냐? 네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귀여운 아가야."


  괴물은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다가 옵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뒷걸음질을 쳐 보지만 등이 차가운 벽에 부딪쳐 더 이상 달아날 수가 없습니다. 괴물은 피를 뚝뚝 흘리며 점점 가까이 옵니다. 나의 얼굴에는 땀이 뻘뻘 흐르고 온 몸이 뻣뻣하게 굳어져 갑니다. 무시무시한 괴물은 코 앞까지 다가 왔습니다. 괴물은 칼을 든 손을 높이 쳐 듭니다. 괴물의 입 안에 있는 뱀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옵니다. 나는 소리를 지르려 애를 써 보지만 입만 벙긋벙긋 거릴 뿐 말소리도 공포스러운 괴물이 무서워 뱃 속으로 꼬르르 숨어 버렸는지 입 밖으로 나오질 않습니다. 괴물의 칼 든 손이 바람을 일으키며 나의 얼굴을 향해 내리 꽂히고 있습니다. 


  "아아악!"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났습니다. 나의 두 손은 저 혼자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좀 전의 어둠은 언제 사라졌는지 환한 형광등 불빛이 눈에 가득 들어왔습니다. 무서운 괴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후유, 꿈이었구나.'


  나는 그제야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옆자리의 동식이가 침대에 누운 채 나를 빤히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형아야, 왜 그래? 무서운 꿈 꿨어?" 


  나는 소매로 이마의 식은 땀을 훔치면서 동식이를 쳐다 보았습니다.  


  "으응, 꿈을 꾸었나 봐. 하마터면 괴물에게 잡아 먹힐 뻔 했어. 후유, 다행이다." 


  안도의 깊은 숨을 내 쉬며 나는 시계를 쳐다 보았습니다. 하얀 병실 벽에 붙어 있는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는지 유리창 너머는 어두웠습니다. 간호사 누나가 맞은 편 침대에서 누워 자고 있는 성진이의 혈압을 재고 있다가 나의 고함소리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괜찮니?"


  나는 멋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간호사 누나는 다시 성진이의 혈압을 재었습니다. 


  내가 있는 이 병원의 환자들은 모두 아이들입니다. 왜냐하면, 이 곳은 아동병원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비록 아픈 아이들만 모여 있지만 좀 시끄럽기도 합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많습니다. 원장님께서는 병원 복도에서 뛰어 다니면 안 된다고 자주 엄한 얼굴로 야단을 치지만 아이들은 그 때 뿐입니다. 나도 장난 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심하게는 하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병원에 있다 보면 정말 심심하거든요. 


  내 옆자리의 동식이는 초등학교 2학년인데, 지금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모두 빠져 버렸습니다. 나도 방사선 치료를 받아 보았지만 정말 아픕니다. 나를 방 안에 혼자 두고 두꺼운 철문을 닫고 의사 선생님이랑, 간호사 누나는 방에서 나가 버렸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 누워 새파란 빛줄기가 나의 온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저 불에 나의 살이 타 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점점 치료를 받는 횟수가 늘어 가면서 나의 살은 짓물러지고, 따가운 고통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 때 내 머리카락도 몇 개씩 빠지더니 결국 소림사 중들처럼 빡빡머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병실에 있는 네 명 중 호영이 하나만 빼고 모두 빡빡머리입니다. 호영이는 아직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고 잇지만, 나는 알고 잇습니다. 머지 않아 호영이의 머리카락도 우리들처럼 빠질 거라는 것을... 동식이는 하루 종일 로봇을 가지고 놉니다. 동식이는 간호사 누나가 주사를 놓으러 올 때 마다 "잉잉~"하고 웁니다. 나도 주사를 자주 맞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참을 만 합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 동식이는 주사 맞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렇다고 주사를 맞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맞은 편 침대의 성진이는 나하고 같은 학년인 6학년입니다. 그렇다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성진이는 나보다 두 달 늦게 이 병원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같은 학년이라 금새 친구가 되었습니다. 


  성진이도 소림사 중입니다. "니 하오마?"라고 말하며 두주먹을 마주 잡고 나에게 예를 갖춥니다. 그러면 나도 같은 자세로 예를 갗추어 답을 합니다. " 쎄세!"하고 말입니다.


  우리 둘은 마음이 잘 통합니다. 간호사 누나들을 골려 먹을 때는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하기도 합니다. 성진이는 약을 먹기를 싫어합니다. 지난 번에는 간호사 누나가 주는 약을 먹지 않고 서랍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제 엄마에게 들켜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약은 왜 그리 많이 주는지 한 번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나는 약을 먹을 때 마다 물을 두 컵씩 마셔야 겨우 약이 다 넘어가곤 한답니다. 의사 선생님은 왜 약을 한 주먹씩이나 주는 지 모르겟습니다. 그냥 한 알로 만들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의사 선생님도 우리들처럼 약을 밥 먹듯이 해 보면 약 먹기 싫어하는 우리의 마음을 조금은 알 텐데... 으으, 생각만 해도 입 안이 씁니다. 


  성진이 옆자리에는 우리 병실에서 나이가 제일 적은 호영이가 있습니다. 호영이는 다섯 살인데, 백혈병에 걸려 있습니다. 우리 병실에 있는 모두가 백혈병 환자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무어라 무어라 긴 이름으로 우리들의 병명을 부르지만 사람들은 대개 우리들을 '소아암' 환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나이 어린 호영이는 혼자서 숟가락질을 하지 않습니다. 숟가락질을 할 줄 모르는 것은 아닐 텐데,  항상 제 엄마가 밥을 떠 먹여줍니다. 호영이 엄마는 호영이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줍니다. 호영이 엄마는 밥을 떠 먹여주다가도 가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기도 합니다. 우리 엄마도 전에는 자주 나를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호영이 엄마는 밤에 잠을 잘 때 호영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줍니다. 나도 잠자리에 누워 듣다가 잠이 들기도 한답니다. 착한 호영이는 간호사 누나들에게서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습니다.


  호영이가 처음 우리 병실에 들어 왔을 때가 생각납니다. 응급실에서 모든 검사를 마치고 우리 병실로 들어와서는 밤 새 우는 바람에 나와 다른 아이들은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호영이는 자기 팔에 꽂힌 주사바늘을 자꾸 빼려고 했습니다. 호영이 엄마는 호영이의 손을 붙들고 함께 밤을 새우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른 엄마들은 한 마디씩 하며 호영이 엄마를 달래기도 했습니다. 


  "호영이 엄마, 힘을 내세요. 아이 엄마가 이러면 안 돼요. 앞으로 얼마나 걸릴 지 모르는데 벌써 이렇게 힘을 빼면 어떡해요." 


  같은 병을 앓고 있어서 그런지 다른 엄마들은 딱한 얼굴을 하며 호영이 엄마를 달래어 주기도 했습니다. 호영이도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생활에 적응이 되어 가는지 요즘은 떼를 쓰며 울지 않습니다. 호영이의 머리카락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호영이도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는지 호영이 엄마가 베개에서 머리카락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어서 세수하고 오너라. 밥 먹을 시간이 다 됐다." 


  엄마가 침대밑을 빗자루로 쓸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끌고 세면장으로 갔습니다. 세면장의 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나는 조용히 문 손잡이를 돌려 문을 살짝 열어 보았습니다. 안에서는 옆 병실의 혜영이가 세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혜영이는 내가 들여다 보는 줄도 모르고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놓고 빡빡머리까지 비누칠을 하고 있었습니다. 


  혜영이의 머리는 동글동글 이뻤습니다. 나는 들어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조용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여전히 혜영이는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코까지 '팽!' 하고 풀어가며 세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옆 자리의 세면대에 가서 수도꼭지를 틀고 세수를

했습니다. 


  얼굴에 비누칠을 하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갑자기 물벼락이 쏟아졌습니다. "어푸 어푸!" 나는 코로 물이 들어가서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손으로 머리와 얼굴에 흐르는 물을 걷어 내고 고개를 들며 소리쳤습니다.


  "누구야?" 


  혜영이가 머리에 수건을 감고 잔뜩 골이 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혜영이는 씩씩거리며 소리쳤습니다.


  "누가 들어 오라고 했어?"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멍청히 혜영이의 얼굴만 바라 보았습니다.


  "흥! 돌대가리, 꼴뚜기, 말미잘, 멍게 같은 게...."


  혜영이는 이렇게 한 마디 쏘아 붙이고는 세면장을 나가 버렸습니다.


  "에잇, 얼굴만 이쁘면 뭐해? 성질은 더러워 가지고."


  나는 투덜거리며 마저 세수를 했습니다. 


  혜영이는 나보다 먼저 이 병원에 와 있었습니다. 몇 학년인지는 몰라도 아마 나하고 같은 학년이거나 한 두학년 아래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혜영이는 항상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남자얘들과는 달리 여자얘들은 모두 모자를 썼습니다. 빡빡머리를 누가 보는 것이 싫어서 일겁니다. 나도 처음에는 부끄러워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답답하기도 하고, 나만 빡빡머리가 아니란 걸 알고는 그냥 시원하게 벗어 버렸습니다. 


  나는 세수를 마치고 복도를 걸어 병실로 오는데 중환자실에서 울음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또 누군가가 하늘 나라로 갔나 봅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중환자실을 바라 보았습니다. 문이 열리고 의사 선생님이 나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뒤를 이어 간호사 누나들이 침대를 밀고 나왔습니다. 아이의 아빠, 엄마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침대를 붙들고서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엄마를 보니 죽은 아이는 2주일 전에

상태가 나빠져 중환자실로 옮겨갔던 옆방의 아이란 걸 알았습니다. 


  나는 침대가 지나 가도록 복도 벽으로 바싹 붙어 섰습니다. 얼굴에 하얀 천을 덮은 아이는 내 앞을 지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갔습니다. 나는 아이의 침대가 지나간 뒤에도 한참 동안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었지만 오늘도 역시 기분이 이상해졌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속이 텅 비어 버리는 것 같고, 가슴이 답답해 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죽은 아이가 사라진 쪽을 멍 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엄마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거기서 뭐 하고 있는거니? 빨리 밥 먹으러 와라."


  엄마가 병실 앞에서 나를 보며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려 병실로 갔습니다. 


  오후에 반 친구인 민제가 제 엄마하고 면회를 왔습니다. 민제 엄마와 우리 엄마는 한 동네 살아서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입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과 반장, 부반장들이 면회를 왔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모은 성금이라며 봉투를 엄마에게 건네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곧 퇴원을 하여 학교에 다시 갈 것이라고 말했었지만  아직 의사 선생님이 학교에 가도 된다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민제는 얼마전 수학여행을 다녀 온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서울에 갔었는데, 남산케이블카도 타 보았고, 국립중앙박물관, 경복궁,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사당에도 가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민제가 부러웠습니다. 나는 하루종일 의사 선생님, 간호사 누나, 주사기,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약병들만 보고, 소독약 냄새만 맡고 있는 것이 너무 너무 지겹고 재미 없습니다. 


  다시 학교에 가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 축구도 하고, 하기 싫어 하던 청소도 열심히 할 텐데. 민제는 공부하기 싫어 죽겠다고 했습니다. 나 보고 "너는 학교도 안 가고 공부도 안 하니 좋겠다.나도 병원에 입원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내가 부러운 듯 말했습니다. 민제는 아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프면 아무 것도 할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녁에 성진이가 TV를 보다가 의식을 잃었습니다. 비상벨이 울리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누나들이 달려 왔습니다. 성진이의 입에 인공 호흡기가 물려 지고 간호사 누나가 성진이의 팔에 주사를 놓았습니다. 성진이 엄마는  옆에서 어쩔 줄을 몰라 병실 안을 왔다갔다 했습니다. 


  성진이는 가끔씩 의식을 잃어 제 엄마를 놀라게 합니다. 빨리 골수 기증자가 나타나야 할 텐데 큰일입니다.


  성진이도, 나도 골수를 이식 받으면 빨리 나을 수 있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골수 기증자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죽었던 아이도 골수 기증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다 결국 상태가 나빠져 죽고 말았다고 낮에 엄마가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 명수는 금방 골수 기증자가 나타날 거야. 우리 명수는 착하니까..."


  엄마는 웃으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미소는 웬지 어색해 보였습니다. 나도 빨리 골수 기증자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야 다시 학교에 갈수 있으니까요. 


  성진이는 한 밤중이 되어서야 깨어 났습니다. 성진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를 보고 웃었습니다. 나도 한숨을 쉬며 웃었습니다.


 그날 밤, 바깥에는 비가 많이 왔습니다. 천둥소리에 놀란 호영이가 잠에서 깨어 울었습니다. 나도 천둥소리에 쉽게 잠이 들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눈을 감아 보았지만, 꿈에서 보았던 괴물이 자꾸만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호영이 엄마의 자장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자장가 소리는 천둥소리를 잠 재우는지 점점 작아져 갔습니다. 나도 자장가에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엄마는 의사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갔다 오더니 밝은 얼굴로 돌아 왔습니다. 


  "명수야, 됐다, 됐어. 이제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너와 골수가 일치하는 기증자가 나타났대..."


  나는 드디어 기다리던 것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엄마는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입을 벙글거리다가 수술을 할 것을 생각하니 겁이 났습니다. 수술하면 많이 아플 텐데...


  "형아, 좋겠다. 형아는 이제 집에 갈 수 있게 되어서." 


  동식이가 나를 바라보며 부러운 눈으로 말했습니다. 맞은 편의 호영이 엄마도 우리 엄마에게 축하를 한다며 함께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성진이는 별로 기뻐하는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나의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누워 버렸습니다.


  나의 수술이 결정된 후부터 성진이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내가 "니 하오마?" 해도 전처럼 응답을 해 주지 않고 못 들은 척 해 버립니다. 전에는 병원 로비에 있는  컴퓨터게임기 앞에 나란히 앉아 누가 더 점수를 많이 내는지 시합도 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내가 게임을 하고 있는 성진이 옆에 가면 성진이는 하던 게임을 그만 두고 자리를 떠나버리기도 했습니다. 성진이가 왜 나와 놀지 않는지, 왜 나를 피하는지, 왜 나와 말도 않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저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성진이가 또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비상벨이 울리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누나가 달려 와 응급처치를 했습니다. 성진이는 산소 호흡기로 숨을 쉬고 있습니다. 요즘 성진이가 부쩍 자주 의식을 잃곤 합니다. 몸이 많이 안 좋은가 봅니다. 성진이 엄마는 아까부터 성진이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성진이는 아직도 깨어 나지 않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수시로 와서 성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갔습니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도록 성진이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저녁을 다 먹고 나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간호사 누나들이 와서 성진이를 이동침대에 옮겨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중환자실로 옮긴다고 했습니다. 성진이 엄마는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찍으면서 간호사 누나들을 따라 갔습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해 졌습니다. 나는 멍 하니 텅 비어 있는 성진이 침대를 바라보았습니다. 성진이의 서랍 위에는  성진이가 보다 만 만화책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나는 골수이식을 앞두고 무균병실로 옮겨졌습니다. 의사나 간호사 누나들 외에는 아무도 나의 병실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엄마도 유리창 밖에서 전화기를 들고 나와 대화를 해야 합니다. 혼자 있는 병실이 심심하고 지겹기까지 했지만, 조금 있으면 골수이식을 받아 건강해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꾹 참았습니다. 


  오늘은 내가 수술 받는 날입니다. 


  "명수야, 아무 걱정 마. 금방 끝날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 하셨어. 우리 명수, 잘 참을 수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은 아주 무서웠습니다. 지난 번 꿈에 나타났던 괴물이 생각났습니다. 한 손에는 주사기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날이 시퍼런 칼을 들고 달려 들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왜 이 순간에 그 괴물이 떠 오르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간호사 누나가 나의 몸 위에 이불을 덮고는 침대를 밀고 갔습니다. 


  엄마는 수술실까지 따라오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천정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얗게 켜진 형광등들이 휙휙 내 눈앞을 지나 갔습니다. 심장이 조금씩 두근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드디어 나는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나를 수술대에 눕혔습니다. 천정에는 눈부신 하얀 등들이 여러개 보였습니다. 그 하얀 등들은 차츰 차츰 흐려지더니 서서히 하나, 둘 씩  꺼졌습니다.


  나는 몸을 굴려 가까스로 괴물의 칼을 피합니다. 괴물의 칼은 나의 얼굴을 아주 살짝 비켜 갑니다. 괴물은 다시 나를 향해 주사기를 '쑤욱' 하고 내 밉니다. 다시 한번 몸을 굴려 피해 보려 했지만 이번에는 피하지 못하고 주사바늘에 찔리고 맙니다. 따끔한 통증이 팔에 느껴집니다. 괴물은 "크윽, 킬킬킬" 흉칙한 소리를 내며 나에게 달려 듭니다. 


  괴물이 나의 목을 조릅니다. 나는 숨이 막혀 옵니다. 괴물을 밀어 내려 안간힘을 써 보지만 괴물은 워낙 힘이 세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점점 괴물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고, 나는 숨이 막혀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릅니다. 의식이 가물가물해 지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 괴물에게 당하고 말 것인가? 이대로 죽고 말 것인가? 


  그 때, "니 하오마?"하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굴까? "니 하오마?"하고 성진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도 큰 소리로 힘 껏 외칩니다.    


  "니 하오마?"


  그러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괴물을 '확' 하고 밀어냅니다. 괴물은 멀리 나동그라집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림사 무술 자세를 취합니다. 괴물은 다시 나에게 덤벼듭니다. 나는 발차기, 정권치기, 돌려차기를 합니다. 괴물은 나의 공격에 맥없이 나가 떨어집니다. 나는 신이 나서 괴물에게 공격을 퍼 붓습니다. 괴물은 나의 뒤돌려차기 한방을 맞고는 쭉 뻗어 버리고 맙니다.


  "하하하!"


  나는 기분좋게 웃습니다. "쎄세"하고 성진이의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성진이의 모습은 찾을 수 없습니다. 성진이의 목소리만 어두운 밤 하늘에 가득 퍼지고 있습니다.


  "명수야, 정신이 드니? 명수야, 눈 좀 떠 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눈을 떴습니다. 유리창 밖에 서 잇는 엄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괴물하고 싸울 때 힘이 다 빠져 버린 모양입니다.


  "명수야, 수술 잘 되었대. 이제 회복만 되면 다 낫는데."


  나는 잠이 쏟아져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 갔습니다. 왜 이렇게 잠이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진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성진이가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 성진이는 괴물이 나타났다며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성진이와 함께 괴물을 잡으러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괴물들을 쳐 부수는 정의의 용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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