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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Nov 23. 2021

햇살 좋은 날이면 그리운 마당

마당에서는...


          햇살 좋은 날이면 그리운 마당  



  햇살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따사롭게 느껴진다. 베란다 간이 의자에 걸터앉아 바깥을 내다본다. 이렇게 화창한 날에는 마당이 그리워진다. 어린아이 손바닥처럼 작더라도 마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파트에도 마당이란 게 있기는 하다. 


  갑갑한 기분에 밖으로 나가보면 자동차들이 마당을 차지하고 있어 서 있을 자리조차 찾기 어렵다. 몇 발자국 걷다가는 쫓기듯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오고 만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에는 크지는 않아도 언제나 마당이 있었다. 꽃과 나무 가꾸기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마당 한쪽에 벽돌을 쌓아 꽃밭을 만드셨다. 빨간 꽃잎을 따서 쪽쪽 단물을 빨아먹던 샐비어가 피어나고, 저녁에 오므려있던 나팔꽃들이 아침 이슬을 맞으며 활짝 피어났다. 


  가을이 오면 정말로 인물 없는 모과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그리고 대문간에는 똥개가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왕왕 짖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개밥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찌그러진 밥그릇에 밥을 부어주면, 그놈은 마치 내가 제 밥그릇을 넘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주인도 몰라보는 멍청한 놈에게 주먹감자로 으름장을 놓으면 그제야 꼬리를 내렸다. 


  개가 밥을 먹는 동안 삽을 찾아들고 개집 옆에 한 무더기 싸 놓은 똥을 퍼서 구석진 곳에다 파묻었다. 냄새나는 개똥이 나무의 그름이 된다고 했지만 그 더러운 개똥 치우는 일은 정말 하기 싫었다.


  마당 구석에 토끼장도 있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매일같이 마대자루와 낫을 들고 풀을 뜯으러 나가야 했다. 토끼들은 신천 방둑을 넘어가 베어온 풀을 오물오물 잘도 먹었다. 가끔씩 새끼도 낳았다. 아버지는 새끼를 자꾸 들여다보면 어미가 물어 죽인다고 주의를 주었지만 나는 풀을 준다는 핑계로 털이 뽀송뽀송하게 난 새끼들을 신기한 눈길로 들여다보았다. 어미 품에서 꼬물거리던 새끼들을 밤새 쥐가 물어가 버려 나를 슬프게 만들기도 했다. 


  나의 생일 아침, 어머니가 고깃국을 끓여주셨다. 오랜만에 먹어서인지 정말 맛있었다. 학교를 다녀와서 토끼풀을 뜯으려 낫을 찾다가 모과나무 밑에 하얀 털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뭇가지에는 나일론 끈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풀을 뜯으러 나갔다. 


  토끼장에 풀을 넣어주다가 한 마리가 없어진 걸 알았다. 나는 얼른 모과나무 밑으로 가 보았다. 땅바닥에 하얀 토끼털이 몇 점 보였다. 검은 핏자국도 드문드문 남아있었다. 아침에 먹었던 고깃국이 바로 애지중지 키우던 토끼였던 것이다. 


  내가 자고 있던 지난밤에 아버지가 토끼를 잡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날 나는 밤늦도록 울었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눈앞에 죽은 토끼가 어른거려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다시는 토끼풀을 뜯으러 가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몇 번씩이나 다짐을 했다. 그러나, 다음날도 여전히 토끼에게 먹일 풀을 뜯으러 나가야 했고, 다른 토끼들은 친구의 죽음도 모른 채 열심히 내가 뜯어온 풀을 먹었다.


  수많은 별빛이 우리 집 하늘에서 반짝였다. 마당에 놓인 평상에 드러누워 내가 

아는 별자리를 찾아보기도 하고, 윤 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을 외우다가 가을밤의 별들보다 훨씬 적은 시구마저 다 기억하지 못하는 내 머리를 쥐어박기도 했다. 빨간 불빛이 별들 사이로 지나가고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에 불을 밝히고 날아가는 것은 비행기였다. 나는 깊어가는 가을밤에 마당에 누워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마당에 곡괭이질을 하셨다. 김장독을 묻을 구덩이를 파는 것이었다. 꽁꽁 어는 한겨울에도 땅 속에 묻힌 김치는 천연 김치냉장고에서 맛있게 익어갔다. 하지만, 겨우내 먹어야 하는 김치는 정말 지겨운 반찬이었다. 


  김장독 뚜껑에 흰 눈이 쌓이던 날, 자형의 친구들이 함을 지고 와서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골목 어귀에서부터 함진아비의 발 밑에 몇 장의 돈봉투를 놓아주고서야 우리 집 마당으로 함을 들여놓았다. 그렇게 해서 누이는 스무여섯 해를 밟고 다니던 우리 집 마당을 떠나 남의 집 마당으로 시집을 갔다. 곱게 키운 딸을 남의 집으로 보내 서운해하던 어머니는 이듬해 외손주를 품에 안고 온 사위를 보고는 얼굴에 환하게 웃음꽃을 피웠다. 몇 년 후, 우리 형제들도 차례차례 결혼을 했다. 마당에는 아버지의 손자, 손녀들이 봄날의 병아리 마냥 장난을 치며 뛰어다녔다.   


  아파트로 이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 저녁을 먹고 나면 마당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곤 했다. 비록 마당이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흙을 밟을 수도 없었고, 그리 넓지도 않았지만 혼자 왔다 갔다 하며 나만의 휴식공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비록 작기는 했지만, 빗방울도 떨어지고 가끔은 이름 모를 새들도 날아와 기분 좋은 아침을 맞기도 했다. 탁 트인 하늘은 답답한 가슴을 달래주기도 했다. 그런 내 작은 기쁨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생활이 편리한 아파트가 좋기는 했지만 거기에 마당이 없다는 게 내게는 늘 아쉬운 부분이었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볕이 화분들 위에 머무르고 있다. 시들해진 화초들이 게으른 주인을 탓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하늘이 있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마당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좋은 날이면, 친구를 불러 마당에서 삼겹살이라도 구워 소주라도 한 잔 하면서 세상 사는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잠시라도 모든 것을 잊게 해 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당이 그립다. 


  나는 지금도 마당을 꿈꾸고 있다. 언젠가는 나의 고향처럼 여겨지는 마당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화분에 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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