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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Dec 04. 2021

우리 집 강아지, 복돌이

늘 이름이 복돌이...

                             우리 집 강아지, 복돌이...



  외출 나갔다가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초등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조그만 강아지를 가슴에 품고 내게 인사를 했다. 강아지는 아이의 여린 팔에 안기어 낑낑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안쓰러운 듯 연방 강아지를 다독거렸다. 


  "해피야~~ 어서 집에 가자~~ 착하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 어릴 적 생각이 났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던 아이들에게 친구가 되어주던 우리 집 강아지... 


  엘리베이터 안에서 강아지를 안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며 나는 오래전 기억의 한 자락을 더듬어본다...  



 얼마 전인가부터 우리 집에는 나를 귀찮게 하는 존재가 생겼다. 딸아이는 "복돌아~~" 하며 귀엽게 부르지만 나는 도대체 영 아니다. 


  어릴 적에는 나도 강아지를 좋아했었지만 지금은 생활 속에서 그놈이 가져다주는 지저분함 때문에 별로다.


  복돌이가 처음 우리 집에 온 것은 아마 한 달 전쯤이다. 사무실에 자주 들르는 회원이 자기 네 집 개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는데, 아이들이 강아지를 좋아하면 한 마리

주겠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가족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아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대찬성이었다. 아이들에게 강아지에 관한 모든 청소와 밥 주기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아내는 승낙을 하였고, 그렇게 하여 강아지는 우리 집에서 기거를 하게 되었다.


  강아지를 가져오기 전날, 아들하고 딸애는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하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해피?' '스누피?' '리키?'...


  하지만, 아이들은 강아지의 모습을 보고는 그냥 복돌이라고 지어 버렸다. 이름 있는 애완견도 아니고, 잘생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그냥 길거리에서 흔히 쓰레기통이나 뒤적거릴 만한 잡종 발바리였기 때문이다. 


  약간 노르스름한 색에다가 귀 끝이 접힌 조그마한 강아지는 첫날부터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새로 이사 온 집이 낯설은지, 아직 엄마품이 그리운지 밤새 낑낑대며 나의 잠을 방해했다.


  "아빠, 복돌이가 추운가 봐..."

  "아빠, 바깥이 너무 깜깜해서 무서운가 봐, 불 켜주면 안 돼?"


  춥기는 뭐가 추워, 무섭기는 또 뭐가 무서워? 저녁에 회거리 살 때 담아주는 스치로풀 박스로 바람 하나 통하지 않는 집까지 만들어주었는데...


  시간이 좀 흘러 놈이 거처에 익숙해졌지만, 또 다른 문제로 나를 괴롭혔다.


  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현관으로 나와 보면, 어느새 놈은 나의 신발을 제집 안에 물어다 놓아 고함을 지르게 한다. 문을 닫고 집을 나서면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깽깽!!" 짖어대곤 한다. 


  그러나, 저녁에 들어올 때는 놈이 우리 집 파수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꼬리를 살랑살랑거리며 반가이 맞이한다. 


  처음 보는 사람이 들어오면 영락없이 멍멍 짖어대어 주인과 객을 구분하기도 한다. 아마 이제는 가족의 일원이 된 것 같다. 


  아, 또 하나 있다. 저녁에 아내가 밥상을 차려 들고 오면 놈은 언제 냄새를 맡았는지 저도 밥 달라고 깽깽 소리 치며 가족의 권리를 주장하기도 한다.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아내의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는 것 같다. 주위의 화분들을 몽땅 넘어뜨려 어질러 놓기가 일쑤고, 잡종개 출신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곳저곳 아무 데나 오줌 싸고 똥을 싸서 온통 지저분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처음 약속을 했던 아이들도 저희들도 귀찮았는지 차츰 청소에 소홀해졌기 때문이다.


  놈은 마당으로 추방 일보직전에 있다. 아직 어려 추운 날씨에 얼어 죽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만 없어진다면 놈은 분명 아내에게서 쫓겨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 목걸이를 하고 줄에 매여 있겠지... 또 한 번의 적응훈련 때문에 나도 다시 잠을 설치게 될 것 같다.


.

.

.

  그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서......



  아침에 일찍 눈을 떴다. 어젯밤 늦게 마신 술 탓인지 속이 쓰려왔다. 시간을 보니 새벽 5시가 조금 넘었다. 창밖은 이미 훤하게 밝아 있었다. 


  화장실에 가서 면도를 하고, 칫솔에 치약 묻혀 치카치카를 하는데 갑자기 뚝!  칫솔이 부러져 버렸다.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이가 빠지는 꿈을 꾼다든지, 양치하다 칫솔이 부러지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하던데...


  부러진 칫솔을 휴지통에 버리고 다른 칫솔을 꺼내 다시 치약을 묻혀 이를 닦으면서 내내 머릿속의 야릇한 생각은 영 가시질 않았다. 


  전날 시골에서 오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깨어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모닝커피를 같이 마셨다. 어머니가 차려온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나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난간에 걸터앉아 상쾌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셨다. 대문간에서 복돌이가 나를 보고 낑낑대며 아는 척을 했다. 


  잠시 후, 아버지가 나오더니 마당으로 내려가며 한마디 했다.


  "저 개를 시골로 데려가야겠다. 제대로 치우지도 않아 냄새도 많이 나고 시끄러워서.."


  아버지는 익숙한 솜씨로 개집 주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집사람과는 말이 되어 있는가 보다. 요즘 들어 집사람이 아이들 보고 자주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얘들아, 복돌이 할아버지한테 갖다 주자. 너희들 개똥도 제대로 안 치우고, 개밥 갖다 주는 것도 귀찮아하고, 냄새도 나고, 컹컹 짖어대어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도 무서워 못 들어오잖아.."


  그럴 때면, 아이들은 항상 안된다고 말하곤 했다. 자기들이 잘할 거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렇다. 복돌이가 우리 집에 온 지가 벌써 몇 개월이더라... 지난겨울에 왔으니 6개월은 넘은 거 같은데... 아주 조그만 강아지가 벌써 어른 개만큼 자라 짖는 소리도 멍멍이 아니라 컹컹거리며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줄 정도로 자라 버린 것이다. 


  아이들은 나갔다가 들어오면 으레 "복돌아~~" 하고 아는 척을 했고, 그놈도 주인 발걸음을 아는지 골목 입구에서부터 낑낑거리며 아는 척을 했다. 내가 들어갈 때도 전혀 짖지를 않는다. 벌써 주인인 나의 발자국 소리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약속은 물론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그래서 아버지가 온 김에 싣고 가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마당을 내려다보면서 안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어머니의 달래는 소리도 들렸다.


  "나중에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 사 줄게... 저 개는 너무 커서 동네가 시끄럽단다. 냄새도 나고..."

  "잉잉잉... 내가 청소해줄 거야. 청소하면 되잖아. 잉잉잉"


 집사람의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들 청소한다고 해놓고 안 했잖아. 내가 처음 복돌이 데리고 올 때 분명 너희들이 청소하고 밥 주고 한다고 해서 허락했는데, 그리고 아이들이 무서워 못 들어오잖아.."


  어머니는 아이들의 울음을 달래려 여러 가지 말들을 해보지만 아이들은 이불 위에 드러누워 울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마당 한쪽에 있던 복돌이의 집을 창고에다 집어넣고, 복돌이를 싣고 갈 준비를 다 하고는 아이들을 달래는데 동참했다.


  "여긴 치울 사람도 없고 해서 시골에서 할아버지가 데리고 있을 테니 시골에 와서 봐라..."


  아들은 좀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더 이상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딸아이는 복돌이가 갈 때까지도 방에서 누워 나오지 않고 울었다. 


  차 뒷자리에 올라앉은 복돌이와 눈을 맞추며 손을 흔들고 , 잘 가라고 말하는 아들과 이층의 조카...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지 차가 멀리 갈 때까지 어린 아들은 내내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집으로 들어와서 세수를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명에 대한 정은 어느 것이나 생기게 마련이다. 학교 앞에서 사 온 노란 병아리가 며칠을 같이 살다가 죽었을 때도 마음이 아프다. 몇 개월, 몇 년을 같이 지내온 개는 더하다. 지난번의 조금은 멍청했던 복돌이가 떠날 때는 별로 가나보다 하던 태도와 달리,  이번의 복돌이는 아이들의 마음을 슬프게 만들었다. 


  참, 우리 집 강아지의 이름은 모두가 복돌이였다. 주인을 반겨 줄줄 알고, 낯선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히 짖어대던 복돌이는 한 식구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시골에 도착한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는 그래도 마음이 놓였는지 아이들은 다시 평상으로 돌아왔다.


  "아빠, 복돌이가 시골에서 밥도 잘 먹고 한데요..."


  그러나, 나는 그 복돌이가 얼마나 오래 시골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아이들이 다시 시골에 갈 때까지 거기에 있을는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복돌이는 아이들의 친구였다. 복돌이에게도 생각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을 한 번쯤은 생각하지 않을까?


  저녁에 나는 집으로 들어오면서 낑낑대며 나를 반기던 복돌이가 있던 자리를 보았다. 거기에는 채 가시지 않은 그놈의 냄새가 아직 남아있었다. 그리고 나의 기억 속의 장면이 떠올랐다. 거기에는 지난겨울 복돌이를 데리러 사무실로 들어오던 아들과 딸의 환하게 웃던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이 커서 대학생이 되었을 때, 강아지니, 고양이니 하면서 키우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나는 너희들 나중에 독립하면 키우고 싶은 애완동물 마음대로 키워보라며 찬성하지 않았다. 공부한다고 바쁜 몸들이 어떻게 강아지를 돌볼 것이냐며 손을 내저었다.


  지금은 각자 독립해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복돌이 같은 애완동물을 키우지는 못하고 있다. 글쎄다... 나중에 식구가 생기면 키우게 될는지... 아마도 족보 있는, 예쁘고 귀여운, 몸값도 적지 않은 그런 강아지를 키우게 될 거라 생각되지만... 이름도 분명 추억 속의 복돌이는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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