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탁 진 Dec 08. 2021

동전 소쿠리에 담긴 사랑

마음에 남겨진 짐...

                     동전 소쿠리에 담긴 사랑   



  연말이 가까워져 간다. 모두가 힘들었던 시간도 어느덧 마지막 달을 지나고 있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아내와 둘이서 시내에 있는 한정식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모처럼 시내 거리를 걸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연말이라, 아니,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 그런 건지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즐겁고 바쁜 발걸음을 하고 있었다. 


  이맘때면 으레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거리를 메우고 있어야 마땅하거늘, 요즘은 예전에 듣던 캐럴 음악이 길거리에 흘러나오질 않는 거 같다. 아마도 저작권이니 뭐니 해서 함부로 캐럴을 틀지 못하는 가 보다. 


  거리를 걷다가 아내는 뭘 보았는지, 내게 천 원짜리 있냐고 물었다. 주머니를 뒤질 것도 없이 나는 없다고 대답하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저기 거리 한쪽에 엎드려있는 사람에게 주려고..."


  요즘 대부분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을 것이고, 내게도 지갑에 만 원짜리만 있었으니... 


  아내는 연방 뒤를 돌아보며 겨울 찬바람 속에서 길 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바라는 걸인에게 돈 한 푼 주고 오지 못한 것에 미련을 가졌다. 어쩌겠나... 지금은 마음만 줄 수밖에... 


  "다음에는 잔돈 좀 가지고 다녀야겠다..." 


  나는 따스한 아내의 손을 꼭 붙들고 길을 걸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내 젊은 시절, 시내 제일극장 앞에는 육교가 있었다. 아, 그 극장도 없어졌다. 책을 사러 나오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나올 때면 버스에서 내려 그 육교를 건너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육교 위에는 갖가지 물건들을 펼쳐놓고 호객을 하는 잡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이 파는 물건들은 대부분 사소한 잡동사니였지만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육교를 내려가는 계단 중간에도 신문팔이가 서 있거나 반짝이 구둣솔을 파는 장사치가 지나는 사람들의 구두를 닦아주며 물건을 팔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들 옆에 아기를 안은 아주머니가 앉아있었다. 그 앞에는 작은 소쿠리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행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동정을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바삐 그 앞을 지나쳤다. 나도 장사치들 속에 있던 그녀를 의식하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다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또렷이 보게 된 것은 비가 오는 어느 날이었다. 우산을 쓰고 육교를 건너갔다. 육교 위에는 비가 와서인지 매일같이 북적대던 잡상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우산장수 한 사람만이 서성거리며 비닐우산을 팔고 있었다. 


  육교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섞여 아기의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바라보았다. 


  계단 밑 구석진 곳에서 아기를 달래며 젖을 먹이는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누더기에 감싸인 아기는 제 엄마의 젖을 빨면서도 칭얼거리고 있었다. 머리는 산발해 있었고, 햇볕에 그을렸는지 제대로 씻지 못해서인지 얼굴은 거무튀튀했다. 


  그녀는 두터운 겨울 옷을 입고 있었다. 한 마디로 영락없는 거지 꼴이었다. 추적추적 비 오는 날에 보는 그들의 모습은 더욱더 가련하고 측은해 보였다. 그런데 젖꼭지를 빨고 있는 아기를 내려다보고 있던 아주머니의 눈동자를 보고  서 나는 더는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두 눈은 마치 천사를 바라보는 듯 환히 웃고 있었다. 비록 거리에서 남에게 동냥을 해서 먹고살지라도, 세상의 온갖 시름 속에서도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그녀도 한 아이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나는 그녀가 눈치 채지 않도록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옆에는 사람들에게 동전을 받던 소쿠리가 놓여 있었다. 


  나는 갈등했다. 주머니에 든 지폐를 손으로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쉽사리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있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돈을 넣고 지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내가 돈을 소쿠리에 넣는다면 분명히 그녀는 내 얼굴을 쳐다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내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망설이다가 끝내 소쿠리에 돈을 넣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다음날, 나는 일부러 시내로 나가 그 육교 위에 앉아있는 아주머니의 소쿠리에 돈을 넣고 왔다. 물론 육교 위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 아주머니는 내 발끝만 보고 머리를 숙였다. 괜히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빠르게 육교를 내려왔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길을 가다가 소쿠리를 앞에 놓고 엎드려 있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만날 때마다 주머니를 털 수는 없는 일이니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갈 때도 적지 않았다. 그럴 때는 기분이 그리 개운치가 않았다. 그러다 도저히 마음이 불편해서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돌아가 한 푼이라도 넣고 왔다. 


  내가 적선하는 돈 한 푼이 그에게 도움되기도 하겠지만 달리 생각하면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남을 돕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닐는지... 


  아내는 마음이 시키는 일을 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가졌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았다. 발걸음이 무거운 걸 보니, 아마도 짐이 얹힌 아내 마음의 크기가 적지 않은가 보다......


  바람결에 문득 크리스마스 캐럴이 작게 들려왔다.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몰라도, 음악을 들으니, 조금은 기분이 가벼워지는 거 같았다. 


  온 세상에 평화를... 온 세상에 사랑을...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 강아지, 복돌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