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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Nov 24. 2021

[동화] 김이 모락모락, 맛있는 떡볶이

따뜻한 겨울...

                    김이 모락모락, 맛있는 떡볶이  



  채미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엄마가 장사를 하고 있는 시장으로 갔다.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시장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엄마는 시장 골목의 한 귀퉁이에 좌판을 펴 놓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과 맛있게 보이는 떡볶이를 팔고 있었다. 엄마는 손님에게 잔돈을 거슬러주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엄마의 목에는 머플러 대신 하얀 수건이 감겨 있었다. 채미는 멀리서 엄마의 모습을 한 동안 지켜보다가 그냥 돌아서 집으로 걸어갔다. 


  엄마가 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한 지도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아빠의 사업이 망해 이곳 변두리 동네로 이사를 왔다. 채미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헤어져 다른 학교로 전학을 해야만 했다.


  아빠는 사업 실패의 충격으로 집에서 술만 마시며 엄마의 속을 태우다가 최근에야 겨우 다시 용기를 내어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엄마도 돈벌이를 해야겠다며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게 된 것이다. 


  엄마가 만들어 파는 어묵과 떡볶이는 정말 맛있었다. 이젠 시장에서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제법 많다며 엄마는 식구들에게 자랑을 하곤 했다. 


  동생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엄마에게 들러 어묵을 먹고 왔다. 채미도 이따금씩 엄마의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하지만 채미는 재빨리 떡볶이를 몇 개 먹고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혹시 친구들이 볼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채미를 바라보며 엄마는 체한다며 물컵을 내밀며 웃었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엄마를 보고 동생이 말했다.     

   "엄마, 어묵이랑 떡볶이 다 팔았어? 오늘도 빈 손이네?"


  엄마는 언제나 빈 손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떡볶이가 맛있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팔렸다고 했다. 동생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채미도 혹시 오늘은 남겨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었는데 역시 어제와 마찬가지였다.


  채미는 일기를 쓰다가 낮에 반장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번 달 말까지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모은다며 각자 회계인 수미에게 성금을 내라고 했다. 채미는 얼마를 내어야 할까 생각해보았지만 주머니에는 돈이라곤 동전 몇 닢이 전부였다. 채미는 엄마에게 말해서 받아갈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수미에게 성금을 냈다. 채미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동전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천 원짜리를 내는 아이들도 있었고, 부잣집 아이라고 알려진 원희는 만원 짜리 지폐를 내었다. 아빠가 식당을 하는 동식이는 제 아빠에게 받아왔다며 오천 원을 내었다. 동전을 내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채미는 성금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교실 밖으로 나와버렸다. 


  수돗가에서 준호가 세수를 하다가 채미와 눈이 마주쳤다. 머리카락이 덥수룩한 준호는 채미를 보고 히죽 웃었다. 채미는 별꼴이야 하는 얼굴로 돌아섰다. 


  준호의 옷차림은 그리 말끔하지는 않았다. 신발도 낡아서 언제나 끈이 풀려있곤 했다. 그렇지만 준호는 항상 반에서 일등을 했다. 학원을 몇 군데나 다니는 부반장 유진이도, 개인교사가 집에 온다는 부잣집 아이 병길이도 준호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그러나 준호에게는 친한 친구가 별로 없었다. 아이들은 비록 일등이지만 가난해 보이는 준호와는 놀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나 준호는 혼자서 책만 보았다.


  채미는 아무래도 엄마에게 말해서 성금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장으로 갔다. 마침 엄마의 좌판 앞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많이 춥지? 어묵 국물 좀 먹어봐라. 따뜻해질 거야."


  채미는 엄마가 떠 준 어묵 국물을 마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엄마는 국물을 호호 불며 마시는 채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채미야, 엄마 잠깐 다녀올 곳이 있단다. 금세 다녀올 테니 여기 좀 앉아 있거라."


  엄마는 채미를 자기 자리에 앉히고는 비닐봉지에 떡볶이를 싸서 시장 밖으로 급히 달려갔다. 채미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섰다가를 반복했다. 


  찬바람이 불어왔다. 손이 시렸다. 연탄아궁이에 손을 가져가니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채미는 혹시나 손님이라도 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도 시장에는 오늘따라 손님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채미는 엄마가 어서 오기를 바라며 시장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줌마 어디 갔어?" 


  채미는 말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린 꼬마 하나가 채미 앞에 서 있었다. 꼬마는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코를 훌쩍이며 채미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 누구니? 떡볶이 사러 왔니?"


  꼬마는 채미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누나야, 떡볶이 아줌마 어디 갔어?"


  꼬마는 채미 앞에 있는 떡볶이 푸라이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채미는 꼬마의 차림으로 보아 떡볶이를 사러 온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뭐 해? 어서 가자!"


  어느새 달려왔는지 키가 큰 아이가 꼬마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 채미는 깜짝 놀랐다. 아이도 채미를 보고 놀랐는지 어쩔 줄을 모르고 장승처럼 서 있기만 했다. 


  "형아야, 아줌마가 없어. 나 떡볶이 먹고 싶은데."


  꼬마는 아이의 손을 잡아 흔들며 재촉했다. 아이는 같은 반 준호였다. 채미는 눈길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를 몰라 당황스러웠다. 채미는 고개를 돌려 시장 입구를 쳐다보았다. 채미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얼굴도 후끈후끈거렸다. 준호도 굳은 얼굴로 잠시 서 있다가 꼬마를 데리고 갔다. 꼬마는 칭얼대며 준호의 손에 이끌려 따라갔다. 


  채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내 생각에 잠겼다. 혹시나 준호가 반 아이들에게 채미 엄마가 시장에서 떡볶이 장사를 한다고 소문이라도 내지 않을까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엄마에게는 불우이웃 돕기 성금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잊어버리고 머릿속에는 준호의 놀란 얼굴만 떠올랐다.


  다음날, 채미는 점심시간에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냈다. 밤에 돌아온 엄마를 졸라 받은 천 원짜리 두 장을 수미에게 내밀었다. 


  채미는 교실 저쪽에서 책을 보고 있는 준호가 성금을 내는 자신을 훔쳐보는 것만 같았다. 채미는 자기 자리로 돌아오면서 준호를 힐끗 보다가 준호와 눈이 마주쳤다. 준호는 채미를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채미는 마치 자기를 비웃는 것만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며칠 뒤, 담임 선생님이 조회시간에 불우이웃 돕기 성금에 대해 말했다.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모인 성금은 추운 겨울을 지내야 하는 딱한 이웃들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마침 우리와 아주 가까운 친구를 위해 여러분들의 성금이 쓰이게 되었어요.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 제게 추천을 해주었어요. 이름은 밝힐 수는 없지만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꼭 여러분들이 사는 사회를 위해 큰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의 인사를 대신 전하겠어요."


  채미는 순간 준호를 돌아보았다. 준호도 채미를 보고 있었다. 둘은 한 동안 화가 난 얼굴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채미는 준호가 선생님에게 채미 네가 시장에서 떡볶이 장사를 한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채미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제 다른 아이들도 다 알게 될 거라 생각하니 점점 고개가 숙여졌다. 


  채미는 집에 돌아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있었다 앞으로 아이들 보기가 부끄러워 어떻게 학교를 다닐까 생각하니 속이 답답하고 가슴에 뭔가 꽉 막힌 것처럼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비웃고 있는 준호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이들도 채미를 보고 호호, 깔깔, 하하 웃는 얼굴들이 떠올랐다. 준호가 더없이 얄미워졌다. 


  "누나야, 엄마가 빨리 시장으로 나오래."


  전화를 받은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채미는 시무룩한 얼굴로 시장으로 갔다. 날은 벌써 어두워져 노란 알전구들이 가게 앞을 밝히고 있었다. 점점 겨울이 다가오는지 얼굴을 스치며 부는 바람이 매서웠다. 


  "어서 와라."


  뜻밖이었다. 엄마의 떡볶이 좌판 앞에는 담임 선생님이 웃으며 서 있었다. 엄마도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채미를 쳐다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어떻게 여길?"  


  담임 선생님은 채미를 쳐다보며 그냥 웃기만 했다. 채미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 눈을 다시 뜰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분명 준호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왔을 것이다. 준호가 새삼 얄미워졌다.  


  "다 됐다. 어서 가자."


  엄마는 떡볶이 좌판을 정리하고 남은 어묵과 떡볶이를 비닐봉지에 싸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과 엄마는 이야기를 하면서 앞서 걸어갔다. 채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 있다가 급히 뒤를 따라갔다.


  채미는 허름한 동네를 지나 외딴곳에 지어진 비닐하우스 앞에 도착했다. 군데군데 구멍이 난 비닐하우스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윙윙거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엄마는 작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선생님과 채미도 뒤를 따라 들어갔다. 안에는 희미한 알전구 하나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한쪽에 누워있는 할아버지가 쿨럭쿨럭 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냄비를 사이에 두고 라면을 먹고 있던 아이 둘이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아줌마!"


  담임 선생님은 가만히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아이들만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가져온 어묵과 떡볶이를 풀어놓았다. 


  채미도 선생님 옆에서 놀란 눈으로 준호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눈이 마주친 준호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채미는 비로소 엄마가 팔다 남은 어묵이나 떡볶이를 집으로 가져오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께 준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 것도 엄마였다. 엄마는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있는 준호의 동생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생님은 준호의 손을 잡고 내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음날, 채미는 학교에서 만난 준호에게 어색한 눈인사를 건넸다. 준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너네 엄마 떡볶이, 정말 맛있어. 아마 세상에서 제일 맛있을 거야..."


  채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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